누군가 전적으로 기대는 상황이 두려웠어
그는 아끼던 형을 사고로 잃었다고 말했다. 만난 지 3개월이었다. 슬픈 마음에 앞서 ‘이런 얘기를 왜 <벌써>?’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눈먼 자아는 이성적인 판단을 밀쳐냈다. 학창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도 자주 언급했다. 땡땡이를 치거나 담배를 태우고, 왕따를 시키는 친구를 합심해 혼내줬던 이야기. 과거를 추억하는 그의 눈동자는 15년 전 ‘호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 그는 바로 그 친구를 중심으로 한 사나운 일에 말려들었다. 처음에는 “네가 잘못한 일은 없잖아”하고 토닥였으나, 여파는 뒤늦게 찾아왔다. 한 달, 석 달, 반년이 흘렀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갑갑한 마음에 친구가 서로 도움이 돼야지, 수렁에 끌어들이면 어떡하냐고 소리쳤다. 친구와 절연하겠다고 했다. 나는 한발 물러섰다. “사고만 치지 마. 인연까지 끊을 필요 있냐.” 그는 오로지 내게 매진하려고 했고, 가족과도 교류가 거의 없었다. 문득 두려워졌다.
난 약한 회피형, 넌 강한 불안형
애착유형 테스트에 따르면, 나는 ‘약한 회피형’이고, 그는 ‘강한 불안형’이다. ‘회피형’은 독립성을 유지하고자 깊고 진지한 관계를 맺는 것에 부담과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 ‘불안형’의 경우 상대방의 관심과 애정을 잃을까 불안해하며, 관계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나는 평소에도 모든 일을 함께하려는 그가 거북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좋아하지도 않는 영화를 보겠다고 따라와 잠자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테스트는 두 유형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문제도 밝혔다. <커플링을 맞춘다거나, 가족이나 친구를 소개해주는 것이 부담스러운데 상대방은 이런 것들을 원하는 것 같다>. 몇 년 전 우리는 그의 고향 군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일본식 가옥과 초원사진관 등을 돌아본 뒤 향한 곳은 그의 할머니 댁이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그가 인사나 드리자고 해 겨우 들어갔는데, 급기야 숙식까지 해결했다. 숫기도 센스도 모자란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묵묵히 앉아 밥만 먹는 그에게 작은 분노를 느꼈다.
너무 짙은 외로움, 너무 잦은 가난
그는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컸다. 아버지 생일에 운동화를 선물했다고 자랑했지만, 이내 ‘고맙다’ 한 마디 없는 아버지에 서운함을 느꼈다. 붙임성이 좋았지만, 정작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에 대해서는 연결고리가 약했다. 한번은 술이 잔뜩 취한 그를 데리러 간 적이 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화목한 가정을 갖고 싶다며 울었다. 안쓰러움 반, 당황함 반에 잠시 멀뚱히 서서 바라봤다.
정서적 결핍은 경제적인 문제와도 묶여 있었다. 종종 월세를 걱정했다. 난 부모님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될까? 라고 말했지만, 뻔히 아는 사정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데이트는 포기할지언정, 연인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매번 집에서 요리를 해주거나, 외식을 제안할 정도로 이타적이진 않았다. 결국 내 속 편하자고 국밥이라도 먹으라며 푼돈을 보내곤 했다. 이는 이후 나와 그를 스트레스로 한데 몰아넣는 결정이 됐다.
네 버팀목이 될 자신이 없어
야스토시 아유무의 책 <단단한 삶>에 따르면,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의존할수록 자립할 수 있다. 이는 종속과는 다르다. 믿는 이가 한 명일 때, 그가 도움을 외면하거나 받아주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종속이 소수의 타인에게 기대는 탓에 지지 기반이 위태로운 것과 달리, 의존은 여러 사람에게 의지함으로써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다. 다양한 타인에게 의존하면 삶이 수렁으로 빠질 때 십시일반 도움을 구할 수 있다.
관계뿐 아니라 모든 상황에도 적용된다. 직업적 성공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직업을 잃거나 명예가 훼손됐을 때 자아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고, 가족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부모, 자식, 형제가 기대를 저버릴 때 추락할 수 있다. 친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던 사람이라면, 친구가 헌신하지 않을 때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그를 <겪으면서> 수많은 감정을 거쳤다. 안타까웠고, 품어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때로는 부담스러웠다. 그를 극한으로 밀어넣은 그의 친구를 원망했고, 그런 친구를 사귄 그가 답답했고, 종국에는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다. 인생은 본디 불확실하다지만, 다음엔 또 어떤 급류에 쓸려갈지 모르는 난파선에 탄 기분이었다. 불안감은 불어났고, 인생에 더는 드라마를 원치 않았다. 게다가 내 눈에 비친 나는 그에게 몇 안 되는 지지대였다.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도망가면서도, 그가 건강하게 잘 살아가길 빈다. 나를 향해 오롯이 헌신했던 그의 마음이 아프고 무겁고 여전히 고맙다. 나는 뒤늦게 슬퍼하고, 후회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는 사랑보다 부담이 더 크다. 그저 앞으로 그가 연인만이 아닌, 더 많은 지지대를 지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