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됐고 시트콤이나 찍을래요
우리 중에 네가 제일 낭만적이야
영화를 평가하는 오각형 표를 떠올려보자. 스토리, 연출, 영상미, 연기, OST. 평점 아래에는 혹평이 이어진다. ‘쟁쟁한 배우들을 데려다 이런 영화 밖에 못 만드냐’, ‘줄거리에 개연성이 떨어진다’. 훌륭한 작품은 여러 요소가 중간 이상으로 짜임새 있게 엮인 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종합예술인 만큼 일부 요소에 기댄 영화는 좋은 영화가 못 된다고 생각한다.
오각형의 항목들을 애인에 빗댄다면 ‘외모, 성격, 취향, 능력, 가치관’ 정도겠다. 비교적 객관적인 잣대인 영화와 달리, 연인의 경우 ‘나’의 주관이 개입된 것으로, 인간 자체에 대한 절대평가가 아니니 불쾌해하지 말자. 한 마디로 자신과 얼마나 잘 맞는지 가늠하는 기준이라는 것! 희한하게도 헤어진 연인들은 내 성향과도, 이상형과도 거리가 멀었다.
친구에게 ‘우리 중 민지가 제일 낭만적이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연히 만난 남자와 기꺼이 사랑에 빠지는 일 자체가 그렇댄다. 확실히 소개팅도 아니고, 같은 집단에서 오래 본 관계가 아닌 이상 이런 만남은 극적인 서사로 번질 위험이 높다. 그리고, 나는 안전하고 권태로운 길과 위험하고 흥미로운 길 중 후자를 택하는 사람이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을 사랑한 천칭자리
별자리를 신봉한다. 미신을 믿냐고? 원래 믿음과 실증은 무관하다! 별자리 설명에 따르면 천칭자리는 부단히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이유가 역설적인데,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좇는 낭만주의자이기 때문이라고. 또한 사교적인 성향으로, 타인과 교류하면서 적당함을 찾는다고 한다. 비교할 상대가 있어야 중용을 추구할 수 있는 법. 양쪽에 추를 매단 저울이 그려진다.
“천칭자리들은 결코 홀로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 본인을 적절한 상태로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개성만점인 애들을 너무 좋아한다. 상대방이 극단적일수록 중간점을 찾으면서 적절한 상태를 찾을 수 있거든." (인스티즈 발, 별자리별 성격 중에서)
그간 공통점이 없는 상대와도 잘만 연애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런 연애밖에 못해 봤으니까>. 드립 코드가 통한다거나, 식성이 잘 맞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애인 진단표로 돌아가서, 앞서 본 기준에 부합하는 연애는 경험하지 못했다. 최근 헤어진 그 애와는 엇비슷한 구석조차 없었다.
쌍커풀이 없는 담백한 생김새를 선호하지만, 그는 부리부리한 눈매에 선이 굵었다. 나는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할 정도로 문학을 즐기고, 특히 공포 영화를 좋아했다. 반면 그는 문과 성향은 1도 없었다. 가끔 책을 읽으면 ‘말 잘 하는 사람들의 56가지 비결’ 같은 자기계발서였다. <성난 황소>를 보고 감동하고, <곡성>을 볼 때는 내 팔을 붙든 채 얼굴을 파묻었다. 음악 취향도 판이했다. 노래방에서 그는 <고등래퍼> 속 노래나 김진표, MC몽을 필두로 한 힙합을 불렀지만, 난 검정치마를 부르거나 90년대 발라드를 부르곤 했다.
물론 성격은 달라서 잘 맞았다. 취향과 달리 성격은 퍼즐처럼 서로 다른 모양이어야 맞춰지니까. 불같은 성격이지만 금세 잊는, 다혈질인 나와 참을성이 많지만 한 번 화나면 입을 꾹 다문 채 동굴로 들어가는 그는 보완적인 성격이었다. 내가 다짜고짜 화낼 때면 그는 차분하게 가라앉혔고, 그가 토라질 때면 나는 지치지도 않고 대화를 시도했다.
유일한 공통점은, 걷기를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동호대교와 압구정을 오가며 새벽을 지새웠다. 서로를 ‘발견했다’는 감상에 취한 나날이었다. 그렇게 눈 먼 몇 개월을 흘려 보냈다. 서른해 동안 만난 인연을 통틀어 우리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은 연애 반년이 지날 무렵 드러났다.
누구나 에피소드는 있지만, 이왕이면 시트콤이 좋겠어요
학사경고를 맞았다는 건 들어봤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생경했다. 가정형편도 달랐다. 학창시절 부모님이 한창 싸웠지만 어쨌든 가정을 유지하고 있고, 동생과도 끈끈한 나와 달리 그의 가족은 모두 흩어져 살았다. 저축액도 판이했고, 심지어 애착유형조차 대척점이었다. 사람 간에 적절한 거리를 중시하는 나와 달리 그는 전형적인 강아지형이었다. 매순간 맞닥뜨리는 차이는 그의 삶의 여정에 최대치의 상상력을 동반한 이해를 요구했다. 누적되는 피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참 전에 쓴 영화와 드라마 속 낭만을 분석한 글을 읽는다. 언급한 작품 중 하나는 <렛미인>. 뱀파이어로 누군가를 죽이며 살아가지만 오스카를 사랑을 하게 된 이엘리. 또 다른 작품은 10여년 전 헤어진 연인과 재회하는 이야기 <비포 선셋>. 과거를 후회하는 제시와 그를 바라보는 셀린 뒤로 황혼이 진다. 노을은 시시각각 덮쳐오는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급박하고 낭만적이다.
현실에 흡혈귀는 없으니, 가능한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돌싱이라거나, 7년차 고시생이거나, 나이 차가 10살이 넘는다거나, 사랑하게 된 사람이 친구의 친구라거나, 경찰에 쫓기는 마약중독자라거나. 벌써 머리가 아프다. 고등학생 때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을 열렬히 시청했고, 지금은 넥플릭스에서 <밀회>를 보며 사제 관계에 귀추를 주목하지만, 현실과 픽션은 다르다. 누구나 에피소드가 있지만, 이왕이면 시트콤이면 좋겠다. 진한 곡절이 있는 사람을 감당할 자신이 없고, 아침 드라마를 찍고 싶지도 않다.
낭만을 좇지만, 그렇기에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천칭자리의 운명. 하지만 이젠 기억하자. 나와 너무 다른 시간을 살아온 사람을 만나기엔, 남아있는 에너지가 넉넉지 않다는 것을. 맞춰나갈 수 있는 성격과 가치관, 비슷한 취향, 선호하는 외모에 근접한 연인을 만나는 상상을 한다. 아…얼마나 이상적인지! 어쩔 수 없나보다, 천칭자리는.
분명 앞뒤 재지 못하고 속절없이, 미끄러지듯 사랑에 빠지겠지. 그래도 이제부터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낯선 여행지를 탐방하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지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