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만 말고 잘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렴

by 궁금한 민지

빚지는 기분은 딱 질색이야

남에게 밥을 사줄지언정, 얻어먹고 다니진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자랐다. 베풀지는 않고 얻어먹기만 하는 존재가 있다니, 그저 신기했다. 나같으면 내 돈주고 사먹고 말 텐데. 더불어 그 즈음 사귄 남자친구는 종종 자기 돈은 아깝고 남의 돈은 아랑곳 않는 일부 여자들을 비판했다. 내게 상냥하던 사람이 여자가 벼슬이냐며 난생 처음 듣는 단어를 내뱉었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의 불특정 다수의 여자를 향한 잦은 분노 덕에 밥값이든 영화표든 뭐든지 n분의 1을 하지 않으면 심기가 불편했다. “너한테 부채감 느끼기 싫어.” 자주하던 말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비난에 나는 제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매순간 나 자신이 김치녀인지(!) 따지면서 한편으론 ‘응, 너한텐 안 얻어먹거든!’ 하는 뾰족한 태도를 디폴트로 장착하게 됐다.

어느덧 나와 그는 헤어졌다. 새로 만난 사람은 넙죽 받고 또 흔쾌히 주는 사람이었다. 각자 방식은 달랐다.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나는 소위 말해 월급날이면 “갈비 산다!”며 ‘쏘는’ 유형이었다. 그는 잘 먹었다는 말 대신 쌈을 싸주는 쪽이었다. 내 것 네 것이 분명한 나와 달리 그는 자기 몫의 아이스크림을 사면 말없이 한 개를 더 사왔다. 그렇게 빚지는 기분없이 타인의 호의를 소화하는 방법을 배워갔다.




신조차도 주기만 하지 않는데요

최근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연인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의 사연을 들었다. 사정을 정확힌 알 수 없었지만,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받는 행위를 꺼림칙하게 여기는 것은 분명 어색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가까운 사람 몇 명의 애정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관심 덕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손길이 없었다면 우린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테다.

받는데 인색하더라도 베풀면 문제 없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아니다. 모두 주기만 하려는 세상에 산다고 상상해보자. 길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만만부당합니다. 할머니, 생신 축하해요. 작지만 케이크를 준비... 부담스럽다. 우리 강아지, 고모가 입학 기념으로 책가방 샀다. 핑크퐁 좋아하지? 고모, 월급도 넉넉지 않으시면서. 못 본 걸로 할게요.

이쯤되면 화가 난다. 내가 너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데, 길치인 나를 구제해줘서 감사하고, 올 한해도 건강하시라 응원하고 싶은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조카의 신학기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데 다들 거절한다. 그럼 “고맙다” 한 마디만 하자고? 이쯤되면 표현의 자유 억압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취향과 표현법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전할 능력이 있다. 능력은 쓰라고 있는 거고.



의심없이, 대가없이, 미래도 없이 주고 받을 것

한편 혹시 누군가에게 애정을 표현하면서 돌려받길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차리라고 말하고 싶다. 뿌린 만큼 거두지 못하는 게 인간이거든. 기대는 실망을 부르는 법이다. 받는 쪽도 ‘다음에 나도 이만큼 줘야겠지’하는 압박을 느낄 필요가 없다. 마음을 표현할 때는 상대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넓이와 깊이만큼 전해야 도리다.

타인에게 무엇을 받을 때면 빚지는 기분에 휩싸이던 때가 있었다. 그의 마음을 오롯이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선물을 김영란법처럼 검열하는 마음씨라니. 나의 한 시절이 얼마나 협소했는지 보여준다. 하다못해 신도 주기만 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삶을 건사하게끔 돕는다. 사람들에게 듬뿍 받은 믿음과 사랑을 자양분 삼아서 말이다.

지금 누군가가 당신에게 선물이나 편지로 애정을 전한다면, 기꺼이 받아라. (물론 ‘대답을 요구하는’ 고백은 다르다!) 애인에게 가을 재킷을 사줬더니 열어보지도 않고 사양하는 쪽과 놀란 토끼눈을 하고 옷을 입어보는 쪽 중 행복은 총량은 당연히 후자가 크다. 물건은 하나인데 잘 받는 것 만으로 행복이라는 상태까지 더불어 찾아온다. 타인의 정성을 활짝 맞이하는 것만으로 두 사람의 기쁨은 불어난다는 것을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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