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식아, 인생에 훼방 좀 놓지마

일과가 엉키면 짜증 나는 이의 푸념

by 궁금한 민지

인스타그램에서 어제 먹은 피자 사진을 올리고 낄낄대다가, 친구의 카톡에 한숨이 쏟아진다. 며칠 전 온라인 게시판에서 본 바퀴벌레를 모으는 방법에 관한 글이 떠오른다. 물에 버섯을 불려두면, 숨어있던 바퀴벌레부터 우리 집에 살지도 않았던 다른 층의 바퀴벌레까지 모두 소환할 수 있다고 한다. 네티즌들은 바 선생, 굳이 만나고 싶지 않네요, 라면서 말을 아꼈다. 어떤 연락은 마주하기 싫은 바 선생과의 만남처럼 하루를 헤집는다.

여태 몰랐냐? 눈앞의 오꼬노미야끼를 뒤적이면서 말했다. 안타까움으로 포장했지만 한심하다는 속내도 새어나간다. 친구의 애인은 제멋대로인 구석은 있지만 쾌활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친구는 내가 못나서겠지, 자리도 못 잡고, 했다. 속만 긁는 애꿎은 질문이다. 왜 했을까. 이유가 있을 리 없지. 잔뜩 엉킨 채 세면대를 막은 머리카락처럼 친구의 구질구질한 이야기에 덩달아 우울해지는 기분에 대한 화풀이일 뿐. 맥주 한 병을 더 시킨다.

느낀 감정 그대로 퍼붓는 버릇은 여전하다. 부정적인 면만 확대하는 경향도 못 버렸다. 따지고 보면 친구의 일상이 매번 재앙은 아니었다. 월요일은 무탈했고, 화요일엔 전날 산 이어폰을 잃어버려서 의기소침했고, 수요일엔 회사에 지각한 것 빼곤 괜찮았고, 목요일엔 애인이 선약이 있다는 깜찍한 거짓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가 전 남친을 만난 것 같다는 다소 불편한 진실이 문제였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샤워한 뒤 유튜브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걸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커피나 내려 마시고 싶었는데. 7시 이후 기대했던 안온한 저녁은 ‘뭐하냐’라는 친구의 연락에 하릴없이 무너졌다. 아니, 무너진 게 아니라 성사되지 못했다. 실현되지도 않았는데 무너졌다고 표현하는 자신의 오만함에 기가 찬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나조차도 뜻 모를 아리송한 말을 던진다. 얼른 침대에 몸을 묻을 생각만 가득하다.

예측할 수 있는 하루는 없다. 구색 좋게 꾸려놓은 ‘일과’라는 모듈 때문에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라고 속이고 착각한다. 하지만 사건은 모두에게 예고 없이 찾아온다. 친구와 지인을 덮친 파도는 내게도 물결을 일으킨다. 심지어 해일일 경우 미처 파도를 피하지 못해 조난된 낚시꾼처럼 듣는 사람도 당혹스럽다.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잠도 자야 하는데, 웬 태풍이람! 연락도 없이 들이닥친 쓰나미에 계획이 뒤틀리는 것이 싫다.

그러니까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누군가를 곁에 두는 것은 ‘불확실성’을 퍼뜨리는 포자와 동행하는 격이다. 오늘은 글을 써야 하는데, 오늘은 다음 주 발표할 기획안을 작성해야 하는데. 마무리 짓고 싶은 일들이 난폭한 소식에 자리를 내어준다. 훼방 좀 놓지 마, 라고 하면 가장 냉담하고 정확한 표현이겠다. 오늘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하긴 글렀다. 친구야 미안해, 포자에 비유해서. 아, 바 선생 정도는 아니니까 서운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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