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건반 위를 날뛰고

넘어지기 두려워서 기어다녔지

by 궁금한 민지

지난해 두 차례 연주회를 치렀다. 절실히 느낀 바는 충분한 연습만이 믿을 구석이라는 점이었다. 충분한 연습은 단순히 양적인 시간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에 대한 기민한 대처에서 나온다. 이같은 맥락에서 아라베스크와 비창 2악장을 연주한 첫 연주회는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반면, 두 번째 연주회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베토벤 소나타 7번을 연습하던 당시 나는 ‘항상 그렇듯’ 단번에 악절들을 익히고 싶어했다. 소나타 7번은 정확함이 생명인 곡이다. 프레이즈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큰 그림을 훑는 것은 좋았지만, 음 하나하나가 모여 프레이즈를 완성한다는 관점에서 디테일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나는 미흡한 대목이 안일하게 연습을 이어갔고, 디테일을 놓친 연습이란 딱 그만큼의 연주를 낳았다.




들통난 불안, 불안한 연주

베토벤 소나타 7번은 긴장감이 넘치는 곡이다. 처음엔 그저 음표의 집합체라는 인상을 받았다. 8분음표와 4분음표가 균일하게 이어지는 악보에 만만함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들을수록 약동하는 음악에 매력을 느꼈으며, 연주할수록 심장은 기분 좋은 흥분으로 두근거렸다. 그리고 연주자를 설레게 하는 곡이란, 그만큼의 아름다움과 그에 따르는 난이도를 지녔다는 뜻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모자람도 더함도 없이 정확한 길이만큼 쉬어줘야 하는 쉼표, 균일한 리듬으로 몰려오는 8분음표와 그들의 높낮이에 따라 달라지는 셈여림, 선명하되 이음새가 두드러지지 않도록 표현해야 하는 음들, 강렬함을 전달할 수 있는 파워, 오른손 위를 넘나드는 왼손의 2 옥타브 이상의 도약 등 모든 것이 거대한 미션이었다.

연주 직전까지 교정하지 못한 부분은 발목, 아니 심장을 멋대로 흔들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미흡한 부분에만 도달하면 맥박이 빨라지고, 손가락은 길들이지 못한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연주자의 불안은 손가락으로 드러나고, 급해지는 연주는 듣는 이를 불쾌하게 한다. 연습할 때처럼 겉으로는 가만 있는 왼발로 박자를 세며 마음 속 메트로놈을 가동시켜 봤지만 소용없었다.




익숙함을 포기해야 걸을 수 있다

빨라진다는 것은 ‘다음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니, 미리 준비하겠다’는 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음악의 특성이자 흥미로운 점은 ‘앞서갈 수 없음’이다. 조급하게 다음 음을 눌러봤자, 현재는 모호하게 뭉친 소리로, 이어지는 음은 다급함으로 범벅된 소리에 그친다. 모든 음은 ‘적시적소’에 있어야 한다. 박자와 리듬이 심장 소리에 동요하지 않으려면, 연습만이 유일한 요령이다.

무대는 지성을 발휘하는 공간이 아니다. 정신과 육체가 옥신각신하며 협조를 구하고 순응한, 협상의 결과물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경기에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는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다. 결국 몸과 뇌의 조율에 실패한 나의 소나타 7번은 일부는 코가 나가고, 일부는 코를 겹쳐 뜬 목도리 마냥 완성됐다.

발렌티나 리시차의 베토벤 소나타 7번을 듣는다. 맑고 명징한 소리들이 뛰노는 연주를. 여유가 가득한 그녀의 미소도 본다. 원하는 만큼 연주를 해내려면, 일어서려고 제 무릎을 찧는 아이처럼 기어다니는 익숙함을 포기해야 한다. 넘어지기 무서워 걷지 않는 아이는 없으니까. 첫걸음을 뗀 아이가 환희에 찬 얼굴로 일어서듯, 언젠가 자신감으로 충만한 나와 언젠가 연주하는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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