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담비’와 조성진의 ‘라 캄파넬라’
*하단에 무대 영상 링크가 첨부돼있습니다
전혀 다른 장르, 그러나 같은 감동
2008년 9월, 교실 뒤편은 의자 끄는 소리와 다리를 쩍 추켜 올리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손담비는 전국 교실을 점령했다. 10년이 흘러 3월의 어느 화창한 주말, 유튜브에 게재된 손담비의 과거 무대 영상에는 “원곡이 생각나지 않아 다시 보러 왔다”라는 댓글이 쇄도했다. <전국노래자랑>에 등장한 ‘할담비’ 때문이었다.
70대인 지병수 할아버지는 손담비의 ‘미쳤어’를 선곡, 리듬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노래와 춤사위로 청중을 자지러지게 했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국민 ‘인싸’로 등극했다. 그의 한 소절, 손놀림 하나에 뒤집어 지면서 한 생각은 ‘자기 것을 해버렸네’였다. 문득 몇 주 전 접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라 캄파넬라’가 떠올랐다.
이게 이런 곡이었어?
리스트가 바이올린 비르투오소 파기니니의 연주에 감명을 받고 작곡한 ‘라 캄파넬라’를 듣는다. 예브게니 키신, 손열음, 크리스티나 리시챠의 연주를 듣는다. ‘라 캄파넬라’의 뜻이 ‘종’이기 때문일까. 이들 연주는 조금씩 다르지만, 손끝에 얼음 결정이 선뜩하게 만져지는 촉각적인 심상이 특징이다. 연주가 펼쳐지면 투명하게 변한 음표들이 처마에 매달린 풍경에 챙강-부딪친다.
그중 조성진의 연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앞선 연주들이 바람에 울리는 풍경 소리를 연상시켰다면, 그의 연주는 풍경의 마음을 상상하게 했다. 그의 손끝에서 무생물인 종은 피부를 에이는 바람에 소스라치고, 움츠렸다가, 온몸을 젖히고 바람을 견디며 우는 생물이 되었다. 조성진의 ‘라 캄파넬라’는 종의 외양을 묘사하지 않고, 아예 그에게 목소리를 불어넣었다. 연주 영상에 달린 인상적인 댓글은 “라 캄파넬라가 조성진 쳤네”였다.
지병수 할아버지가 부르는 ‘미쳤어’는 클래식 용어를 빌리자면 ‘루바토’로 요약된다. 자연스러운 선에서 앞뒤로 리듬을 빌리고(당기고), 갚는(늘리는) 빠르기말이다. 할아버지는 엇박을 정박으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단 걸 알면서도’, ‘떠떠떠떠떠나 버버버버버려’ 부분은 리듬 파괴 수준인데, 늘어짐 없이 흥껏 소화해버렸다. 마지막 소절에서는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는 듯한 안무로 깜찍하게 마무리했다.
오리지널을 자신의 ‘오리지널’로 만들다
한창 피아노를 배울 때, 연주자는 작곡가에 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1차 창작자가 아니니까, 역량을 발휘할 영역이 적다고 봤다. 이제 조성진의 연주와 할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면서 내 편협한 사고를 돌아본다. 두 사람이 작곡가가 쓰고, 가수가 소화한 오리지널 곡을 어떻게 자신만의 ‘오리지널’로 체화했는지 알 길은 없다. 난 그저 유튜브에서 그들의 무대를 재생하며 감탄할 뿐. 분명한 사실은 이분들이 좀 ‘미쳤다’는 것이다.
3월 초 어느 날 밤 우연히 조성진이 연주하는 ‘라 캄파넬라’를 접하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3월의 마지막 주말, 춤사위가 간드러지는 지병수 할아버지의 무대에 감탄했다. 자기 것을 해버렸네, 하고 무릎을 탁 쳤다. 문득 다른 무대에 대해 ‘같은’ 감상을 느낀 점을 깨닫고 펜을 들었다. 무대를 못 본 사람들이 모두 꼭 봤으면 좋겠다!
2012년 6월 프랑스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조성진 ‘라 캄파넬라’
2019년 3월 <전국노래자랑> 지병수 할아버지의 ‘미쳤어’
https://youtu.be/8JIuJApfPQ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