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군>을 보고
식물원이나 유원지 같은 장소에서 약속을 잡으면 카메라를 챙기던 시절이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필름 카메라는 꼭 기억하고 싶은 장면에서만 셔터를 누르게 유도했다. 24방짜리 필름을 당일 다 쓰는 일은 드물었다. 신중해졌으니까. 출사를 자주 나가지 않았으므로 열 장 남짓 찍고 방치된 필름은 카메라 안에서 때아닌 겨울잠을 자곤 했다.
두어 달 뒤 남은 장수를 채우면 사진관을 찾았다. 3*5 사이즈로 인화해주세요. 돌아설 때면 전에 대체 뭘 찍었더라?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사진을 받으면 정답을 보기 전 힌트를 들추는 마음으로 현상된 필름부터 꺼냈다. 빛을 드리우자 피사체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거무스름한 나뭇가지와 하얀 이를 드러낸 누군가의 모습. 아, 이날 A와 이촌한강공원에 갔었지. 옆에 개도 있었네. 잊힌 풍경이 기억 저편에서 문을 두드렸다.
직접 겪은 일도 시차가 생기면 기억이 옅어지는데, 겪지 않은 사건에 다가가는 일은 어떤 노력을 요구할까. 호기심과 애정을 기반으로 한 탐구가 필요하다. <김군>은 그런 영화였다.
영화는 ‘광주 사태’를 일으킨 ‘광수’에 주목하며 시작된다. 전 육군인 지만원 씨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촬영된 사진 속 인물들을 북한 특수군으로 파악, 숫자를 붙여 ‘제1광수’, ‘제2광수’라고 부른다. 그는 이들과 북한 정치인들의 얼굴에서 유사한 기하학적 패턴을 읽어낸다. 곧 내 머릿속에는 ‘둘의 유전자가 99% 일치합니다’ 따위의 대사가 이어진다.
그러나 언뜻 과학적으로 보이는 이 방법은 일순 무너진다. 당시 광수로 주목받았던 시민은 말한다. “광주에서만 평생 살았는데요.” 자격미달인 분석법을 집요하게 보여주는 지 씨의 행보는 시민의 짧은 진술과 선명하게 대비돼 농담처럼 다가온다.
영화는 ‘김군의 정체’라는 목적지를 잊지 않지만, 불편함을 제기하는 시민을 비출 정도로 목적에 매몰되지 않는다. 반평생 5.18 진상규명에 힘썼으나 현재는 회의적인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조용히 묻을 수 있는 기억을 들춰내는 것은 아닌지 목소리를 높인다. 카메라는 그의 떨리는 눈꺼풀과 음성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는, 응시와 경청의 힘으로 가득하다.
영화의 초점은 김군의 정체가 아닌 ‘김군을 찾는 과정’이다. <김군>이 인상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봉장이었던 ‘제1광수’가 이강갑 씨로 추려지자 당시 트럭을 함께 탔던 최진수 씨는 “그가 그럴 사람은 아닌데”라며 머쓱한 미소를 짓는다. 인터뷰이의 엇갈리는 진술을 통해 김군을 좇다가 우회하는 모습은 지만원 씨가 ‘제1광수’를 지목하는 방식과는 판이하다.
지 씨의 방법론이 개개 인물을 검증하고 판결하기 위함이라면, 인터뷰는 인물들이 지닌 기억에 숨을 불어넣고, 기억 간에 고리를 잇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터뷰를 퍼즐 삼아 이를 맞출 때 일어나는 인물들의 화학작용에 주목한다. 시민들은 김군이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작금의 흉금을 터놓는다.
인물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서 좋았던 영화. 덧붙이자면, 소박해서 더 좋았다. 강상우 감독은 GV에서 좋아하는 장면에 대한 질문에 “김용인 선생님이 ‘그때 내가 참 예뻤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꼽았다. 시민의식을 선전하려는 사명감도, 눈물에 호소하는 드라마도 없었다. 그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영화 <김군>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