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의 돌림 노래

영화 <하나레이베이>를 보고

by 궁금한 민지

날 좋은 봄이면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 위해 적당한 바다를 알아본다. 관광 명소에 가면 꼭 바다 가운데 버티고 선 기암괴석이 있다.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떠났으나 돌아오지 못한 남편과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아내 이야기. 망부석 설화다. 유명한 바다마다 상실의 사연을 지닌 기암괴석이 기다린다. 무생물인 돌이 어쩜 그리 그리움이 짙을까.


영화 <하나레이베이>의 사치는 마약중독자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혼자 키운다. 어느 날 아들은 서핑을 하러 바다로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은 갈 곳을 잃는다. 아들의 유류품을 정리하던 직원이 말한다. “이 섬을 원망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원망한 만큼 상대가 괴로워해야 위안이 될 터. 자연은 원망의 대상으로 부적절하다. 가해자이지만 죄책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로 그는 매해 아들의 기일마다 일본을 나와 하와이를 찾는다. 해변용 벤치와 책 한 권, 물통 하나를 들고서 바다를 향해 고쳐 앉는 그가 인상적이었다. 바다를 응시하는 자리로는 미묘한 오차가 있다는 듯, 혹은 막연히 견딜 수 없다는 듯 자리를 초조하게 옮긴다. 그를 보며 한 자리에서 같은 행위를 하는 반복하는 마음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다가 돌이 된 망부석 설화들이 머리를 스쳤다.


제비가 따뜻한 지역을 좇아 계절을 보내듯, 연어가 강을 거슬러 회귀하듯 그는 아들의 기일만 되면 ‘그날 그 해변으로’ 돌아온다. 다른 점이 있다면 번식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어와 제비와 달리, 그는 <상실을 견디는 방식으로 귀소를 택했다는 점>이다. 상실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시 순간을 곱씹는 것뿐인지도 모르겠다. 그 기억이 밀물과 썰물에 쓸려 자갈이 모래알로 마모될 때까지.


느낌의 시간과 사유의 시간 사이를 부단히 오가는 이 분주함은 기다리는 사람의 특징으로, 꿈꾸는 새를 따라가거나(쉼) 아니면 쫓아버리려는(행동) 그의 내적 시도가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러나 쉼은 그의 의지를 거슬러 찾아오고, 지루함은 생산적이지 않으며, 몰입은 방해를 받고, 몸은 목적이나 방향도 없이 움직인다. 그는 초조하게 서성거리지만 걷고 있는 게 아니다. 그는 공식적이고 표준화된 시간의 규범과 갈등하는 한편, 내적 삶의 연속성과도 갈등한다. 그는 기다려야만 한다. 그는 그렇게 결심한다. 그는 결심을 번복한다. (54p) -해럴드 슈와이저,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中


아들의 삶이 일순 중단된 이상 그는 평소대로 시간을 소화할 수 없었다. 그가 10년간 아들의 기일에 하와이를 찾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적어도 그곳 해변의 시계는 아들의 죽음 이후로 멈춰 있으니까. 사치는 하나레이 해변에서만큼은 남들처럼 시간을 객관적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끝나지 않은 돌림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아들을 정말 보낼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정지된 시간이 외부와 같은 템포로 흘러가는 데에는 10년이 필요했다. 사치는 영화 속에 처음 나오는 말처럼 아들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부터 사치의 시간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멈췄던 그의 시계가 회복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가 바다를 응시한다. 이제 아들을 보내주겠노라고. 나는 그를 바라보고 말한다. 당신도 이만 돌아가도 된다고, 세상의 시간 속으로.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영화 <하나레이베이>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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