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삶의 재판관이 될 수는 없다, <이레셔널 맨>
*‘시네마 아마퇴르’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철학교수 에이브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그는 현실성이 결여된 자신의 강의와 부조리한 세상, 무엇보다 진실한 삶을 사는 데에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참을 수 없다. 한 마디로 의미 없는 삶에서 환멸만 느끼는 상태.
에이브는 삶에 대한 감각을 잃은 채, 일종의 미맹 상태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는 제자 길과 한 식당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승산 없는 재판을 앞둔 여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는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 정의롭게 살고자 했던 에이브. 그녀의 이야기는 그의 내면에 파장을 일으킨다. 잠자고 있던 사명감이 깨어난다. 무채색이었던 세상은 색으로 물들고, 그는 생기를 회복한다. 그는 ‘판사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한다.
세상 안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역할을 찾고 있었던 걸까. 세상만사에 회의적이던 그의 태도는 돌변한다. 눈빛은 빛나며, 행동은 생동감이 넘친다. 염세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그는 '살인'이라는 계획에 자신을 완전히 내던진다. 그는 정의를 구현하는 '재판관'으로 거듭난다.
삶은 울퉁불퉁한 결을 지닌다. 특정 관점으로 삶을 해석하는 사상과 달리, 삶은 그런 식으로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건이 너무 쉽게 재단되고 해결된다면, 의심부터 해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상을 쫓던 일부 사람들의 행동이 거대한 피바람을 몰고 온 사례를 만나곤 한다. 결국 그는 판사를 살인으로써 단죄한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부당함이 넘치는 세상에서 정신을 붙들고 사는 방법은 불의를 심사하는 게 아니라, 무감해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무의미한 삶을 견딜 수 없어서 저지른 살인은 일순간 생의 감각을 돌려줬다. 그러나 짧은 쾌감 뒤엔 언제 잡힐지 모른다는 초조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인생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이 우리에게 던진 과제는 오직 하나다. 살아가고, 느끼라는 것. 모순이 없는 삶, 완전히 진실된 삶은 그의 몫도, 누구의 몫도 아니다.
우디 앨런, 영화 <이레셔널 맨>(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