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처럼 꼿꼿하고 정갈한 뒷모습

영화 <김복동>을 보고

by 궁금한 민지

영화 <김복동> 첫 장면에는 마른 나뭇가지가 나온다. 다음 숏은 꼿꼿한 줄기만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화분이다. 이어 카메라는 그가 생전 살았던 집을 비춘다. 주인 없는 텅 빈 방에는 시계가 재깍재깍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아흔넷까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끊임없이 알려야 했던 김복동은 등허리를 세운 채 정갈한 모습으로 겨울을 버티는 나무 같았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를 알리기 위해 영국, 독일 등 유럽으로 순회를 떠난다. 독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외치는 비판에는 두려움에 떠는 피해자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 그리고 순회를 마치고 귀국한 지 석 달 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치러진다. 김복동은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듯 검은 코트에 검은 장갑, 기도처럼 새하얀 머플러를 두른 채 집을 나선다.

김복동은 바다 건너 오사카에 위치한 교토조선중고등학교에도 간다. 전 재산을 모아 만든 김복동장학금을 전달하려는 까닭이다. 일본에는 식민지 이래로 소수자-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내려온다. 장학금을 받은 한 학생이 말한다. “훌륭하고 똑똑한 학생이 되겠다”라고. 매사 강단 있는 모습에 유머를 잃지 않았던 김복동의 눈이 붉어진다.

김복동은 암 투병 중이던 때에도 외교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를 가리지 않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 재일조선인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자리, 10억엔과 맞바꾼 한일 위안부 합의, 이순덕 할머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가슴 벅차고, 때로는 고통스럽고 황망하기까지 한 상황에서도 반듯이 서서 당신 몫을 한다.

국외로는 처음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공원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당시 그는 하얀 저고리에 무릎을 덮는 까만 치마를 입고 있다. 올곧게 한 길을 걸어온 사람 특유의 기품이 묻어난다. 김복동은 행동하는 자신에게서 스스로 추동력을 얻는 듯하다.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 일제의 전시 성폭력을 규탄, 인권 운동의 최전선에 선 마음을 헤아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 눈에 비친 김복동은 기개를 갖춘, 나무 같은 여성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생각한다. 재일조선인 학생들에게 차별로부터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던 그 마음처럼, 당신이 다음 생애에는 나비처럼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나비의 부드러운 날갯짓처럼 가볍고 유순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지치고 힘든 상황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대신, ‘그러니까’ 쉬어가도 된다고.

하늘에서는 할머니가, 다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영화 <김복동>을 보고.



‘똑똑하고 훌륭한’은 좋은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똑똑하고 훌륭한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건 아닐까. 그리고 이는 그가 외롭게 싸우도록 방치한 세상의 잘못은 아닐까. 할머니가 가실 때까지 꼿꼿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해 사실을 망각하려는 일본을 비롯해 우리나라 정부,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무심했던 내가 있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최근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문구가 와 닿는다.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하는 데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레비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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