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행복
Schubert Piano Sonata B flat No.21 D.960 과 일독하길 추천할게요 :)
옛 전설을 보면 산속에서 만난 신선들과 사흘간 장기를 두다가 돌아오니 3년이 지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왜 이런 이야기가 탄생했을까. 일상의 ‘흘러가는’ 시간과 판연히 다른 시간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시간의 밀도가 달랐기 때문에.
1. 퇴근하면 연습실에 간다. 쇼팽 녹턴 13번을 친다. 건반이 충분히 익은 앞부분에 심상을 불어넣어본다. 진혼곡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도입부의 첫 C2음이 울리면, 수풀에 앉아있던 산새들이 낮게 날아오른다. 이윽고 토끼와 너구리, 다람쥐, 호랑이가 잿빛 발걸음으로 한 곳에 모여 입에 물고 있던 흰 국화를 떨군다. 오랜 친구 하나가 곁을 떠난 까닭이다.
포코 피우 렌토 Poco piu lento. 느려지는 구간에 들어서면 기도를 올리는 동물들 뒤로 친구의 맑은 생전 모습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모티프가 재등장하며 분위기가 고조되는 도피오 모비멘토 doppio movimento에서 상상은 중단된다. 속도만 높여야 하는데 소리까지 쿵쿵대는 탓이다. 손가락을 잠재우려면 한참 걸리겠네. 기대감이 깃든 한숨을 내쉰다. 8시 50분.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간다.
2. 이제는 과거완료형이 된 시간. 11시 40분, 점심시간이 시작된다. 대화가 주, 밥은 거드는 시간이다. 당시 점심 메이트였던 회사 선배와는 아주 더운 날과 몹시 추운 날을 제외하면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로 시작해 이효리와 이상순을 거쳐 옥시토신과 도파민에 도달하는 식이었다. 대개는 사랑이나 관계에 대한 테마가 주를 이뤘고, 종종 글쓰기와 영화도 화제에 올랐다.
업무 얘기가 오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화젯거리는 넘쳐났으니까. 업무는 인공지능과 대체될 일자리를 언급하다가 “큐레이션 기사는 딥러닝을 하는 AI가 더 잘 쓸 거야!”라고 끼어드는 정도였다. 인상 깊게 본 TED 강의, 책, 예능에서 개그맨 아무개가 한 말들은 그날 꽂힌 주제로 수렴되면서 오가는 말들 속에서 다시 의미를 찾았다. 핑퐁처럼 대화를 주고받다가 로비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고 황급히 사무실로 돌아간 적이 몇 번이었는지.
3.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가끔 즐거웠지만 대개 괴로웠다. 감정을 그러모은 뒤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밤, 김소연 시인의 에세이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를 읽었다. 마침 펼친 장은 ‘혼자를 누리는 일’이었고, 마침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내림 나장조 21번 D.960을 듣고 있었다. 활자 안에 깃든 시인의 생각들이 공중에 떠오른 뒤 재조립됐다. 혼자를 사는 시인은 고독해 보였지만 충만했다.
그녀는 요즘 다소 질 나쁜 상태가 되어 있다. 쉽게 지치고 쉽게 피로하다. 느긋함을 잃고 허겁지겁한다. 신중함을 잃고 자주 경솔해진다. 그녀는 그런 자기 자신에게 불만이 부풀어 오르는 중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기다린다. 오롯이 외로워질 수 있는 시간을. 오롯이 외로워져서 감각들이 살아나고 눈앞의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지나가는 바람의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그녀만의 시간을.
-김소연,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혼자를 누리는 일’ 중에서
텍스트에 몰입하자 시, 분, 초로 규칙적으로 흘러가던 시간들은 단위를 잃어버렸다. 끝을 향하던 시간은 걸음을 멈추고 신발 끈을 풀고 하얀 맨발을 드러냈다. 주의가 산만한 시간은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분위기를 파악하고 하얗게 모여 앉은 동료들 사이로 조용히 앉았다. 시간은 균일한 밀도와 안정적인 온도를 형성했다. 발길을 재촉하던 시간은 내림 나장조의 화음을 머금고 곁에 머물렀다.
시간의 ‘간(間)’은 문과 문 사이로 들어오는 해를 본뜬 글자라고 했던가. 문을 더 열지도, 닫지도 않은 채 문고리를 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곧 소나타가 끝났다. 시간은 음악이 들리는 쪽으로 주저하며 다가오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로 질서 정연하게 빠져나갔다. 한쪽에 밀쳐뒀던 쓸쓸함이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그의 머리를 쓰다듬을 정도로 충만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칸트의 미학적 견해를 참고하자면, 삶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 담고 있는 충만함은 바로 그처럼 도덕적·실천적 목적성이 배제된 상태에서야 잠시나마 드러날 수 있다. 비록 축소된 형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그다지 돋보이지도 않고, 값어치도 없으며, 걸작도 아닌 한 점 그림일지 모른다. 이 그림을 이루는 것들은 “단숨에” 완성된 다소 엉성한 밑그림, 점 하나, 튜브에서 쥐어짠 물감 덩어리, 가느다란 붓질, 붓털 한 가닥 따위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이 표현하고 있는] 삶의 기억, 즉 “두꺼운 도화지 한 장” 속에 “압축”되고, “밀집된, 희미한” 삶의 자잘한 세목들은 이 그림을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게 한다.
-해럴드 슈와이저,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머무르기, 지체하기, 곱씹기’ 중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몰입의 행복에 대해 쓰고 싶었다. 눈앞의 대상에 집중할 때 시간은 어깨에 내려앉아 머릿결을 넘겨주는 것만 같다. 사방으로 부유하던 시간들이 갓 태어난 먼지처럼 뽀얗게 내려앉는 순간. 그 밖의 모든 것은 흐려지지만 가장 선명한 시간. 무엇도 생산하지 않는 이 보잘것없는 시간을 일주일에 두 번만 살아도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