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습이 ‘막귀’에게 유익한 두 번째 이유

곡을 연주하는 것은 곡을 더 잘 감상하게 한다

by 궁금한 민지

최근 ‘오마주 투 쇼팽’ 콘서트를 봤다. 지난해 12월 피아노 학원에서 열리는 연주회에서 발라드 4번을 연주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연습하는 동안 유튜브에서 케이트 리우 영상을 그렇게 많이 돌려 봤는데! 그는 내게는 저명한 쇼팽 콩쿠르에서 3위를 한 명사라기보다, 발라드 4번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하나의 가이드를 준 유튜브 스타였다. 아쉽게도 프로그램 곡은 발라드 4번이 아닌 1번이었지만.

피아노 연주는 내게 손끝에서 스스로 음악을 생성해 낸다는 기쁨 외에 번째로 의미가 있다. 바로곡을 들을 있다 점이다. 사실 좋아하는 곡이라고 말할 만한 곡이 별로 없다.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최소한 곡에 대한 짧은 감상과 왜 좋은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엔 각 곡을 기억하지도, 저마다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SBS 스페셜>은 ‘난독시대’ 편을 방영했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사람이 텍스트를 읽는 방식을 아이 트래킹 기법으로 추적했다. 시선이 세로로 점프하듯 움직인다. 중간중간 방점이 찍히며 오래 머무른 구간에서는 텍스트가 얹힌다. 클래식 곡을 들을 때 귀가 이와 유사하다. 게다가 책은 정지해 있지만, 음악은 흘러가 버린다. 고막이 곡의 뒤꽁무니를 바싹 쫓지만, 방금 들은 프레이즈가 감흥을 일으키자마자 소멸해버린다. 곡의 구간마다 악흥을 충분히 누리고 싶은데, 역부족이다.

피아노 학원에 함께 다니는 수강생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부끄럽다. 녹턴 13번은 도입부가 좋잖아요, 아무개 피아니스트 버전으로 발라드 1번 코다 들어봤어? 여러 연주자들의 연주를 일일이 기억하는 것도 신기하고, 각 곡의 특징을 어쩜 그리 잘 상기하는지!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연습한 곡은 <들을 있다> 사실이다. 69번 마디 6번째 음이 미스터치였어! 음색이 건조한데? 같은 세밀한 감상은 못한다. 그러나, 순전히 듣기만 한 곡이 귀를 스칠 때, ‘마스터해야지’ 하고 연습한 곡은 짧게나마 감상을 남긴다. 가령 ‘음이 건반에 꽂히듯 내려앉으니 날카로움이 더해지네’ 같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같은 둔탱이는 같은 곡을 서른 듣는 대신 연주할 있도록 공부하는 편이 곡에 대한 감상을 돕는다.

그래서 아쉬웠다. 케이트 리우가 발라드 4번을 쳤더라면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그나마 발라드 1번은 50번은 족히 들은 곡이었다. ”몽환적인 느낌이 좋았어!” 외마디 감상이라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다. 못 쳐본 곡이 태반인 만큼 앞으로도 프로그램 열 곡 중 한 곡이나 겨우 듣고 오겠지. 다행히 슈베르트 소나타 이후 치고 싶은 곡이 가득하다. 막귀인 내겐 풍부한 감상을 위해서라도, 피아노 연습이 필요하다.

클래식 피아노 곡을 듣기 위해 필요한 건, 적어도 내겐 귀뿐이 아닌, 두 손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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