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라는 공통점
요사스러운 의문
살다 보면 엉뚱한 질문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제게는 홍등가와 정육점의 조명이 그런 존재였습니다. 두 조명의 색조가 너무나 닮아있다는 의문이었습니다. 둘 다 ‘살’을 매개로 한 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맘 같아선 앱스토어에서 컬러 피커를 설치해 컬러 값을 콕 찍어보고 싶은 정도였습니다. 푸시아 핑크에 네온을 더한, 계속 보면 피로도가 높아지는 컬러입니다. 푸시아 핑크는 제 최애 컬러인데, 퍼플 한 스푼에 네온을 더한 그 컬러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요사스럽더군요.
몇 년 전, 압구정로데오의 바 한 곳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사창가를 본뜬 외관 때문이었습니다. 붉은 조명은 말할 것도 없고, 흰색 외관에 높은 바 의자를 비치한 모양이 영등포 타임스퀘어로 가는 골목 뒤켠길을 연상시켰죠. ‘not a hhorehouse, a kindly bar’라는 문구를 쓴 종이가 안 그래도 짙은 혐의를 명징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즘엔 이런 걸 ‘힙’하다고 하는 건가, 하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육체적 환심을 사려는 색
빨간색은 인식성이 뛰어납니다. 신호등을 비롯해 각종 ‘경고’ 메시지에 빨간색이 쓰이는 이유죠. 빨간색을 보면 대뇌피질에서 이성적 사고를 관장하는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여기서의 ‘이성’은 참신하다는 뜻과는 무관합니다. 리스크를 줄이는 결정을 유도하는 겁니다. 문제는 정육점과 홍등가의 조명은 레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핑크 중에서도 보랏빛이 감도는 눈 시린 핑크입니다. ‘바로 이 핑크’가 궁금했지만, 똑 떨어지는 자료를 찾지 못해 레드와 핑크에 대한 일화를 엮어보고자 합니다.
2009년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한 교수팀은 색깔에 따른 디자인 역량을 실험했는데요. 도형 스무 개 중 5개를 골라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디자인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빨강과 파랑, 각각 다른 색으로 칠해진 도형이 변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파란색 도형을 받은 그룹이 한층 창의적인 장난감을 설계했고, 빨간 도형을 본 그룹은 실용적이고 보수적인 장난감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보수적인 장난감에서 멈칫했는데, ‘보장된 만족’을 가져다주는 결정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핑크로 넘어올까요. ‘베이커 밀러 핑크’라고 불리는 핑크입니다. 유명한 얘기인데요, 교도소 내벽을 핑크로 칠하자, 수감자 간 폭력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기분을 잠재우고 공격성을 감소시키는 신경전달물질 노르에피네프린이 나오기 때문이라네요. 종합하면, 빨간색은 위험을 회피하게 하고, 핑크는 흥분을 가라앉힙니다. 곧 둘 사이에 위치한 정육점과 홍등가의 조명은 사람을 극도로 차분하게 만들어 가장 안정적인 결정을 유도합니다.
맛있는 음식처럼 연출하고, 성적 만족도를 높여줄 사람처럼 꾸밀 때 유리하다는 뜻이죠. 육체적 환심을 사려는 것들은 핑크색이다, 라는 결론이 나더군요.
분홍빛으로 물든 매대에서 래핑된 살치살을 들었다 놓으면서 무엇이 더 맛있을지 고르는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로지 반시간 뒤 찾아올 혀의 만족에 혈안이 된 눈동자를 하고 있겠죠. 여전히 푸시아 핑크는 좋아합니다만, 정육점과 홍등가에 사용되는 핑크에서는 기만의 냄새가 납니다. 어떤 고기도 그처럼 현란하게 붉지 않고, 어떤 피부도 그토록 발광하진 않으니까요. ‘맛있는 살’이 아니라 ‘맛있어 보이는 살’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본능 외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생각을 앗아가는 색 핑크. 당신을 유난히 반응하게 하는 컬러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