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을 추억하며
어느덧 9월의 첫 번째 금요일입니다. ‘불금’이라는 단어가 무색한, 암담한 시기죠.
본래 금요일에는 출근부터 발걸음이 가볍고, 오후쯤 되면 퍽퍽한 사무실에서도 공중부양이라도 할 듯 엉덩이가 들썩입니다. 설레는 때를 앞두고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그이와 술 한 잔 기울이는 약속시간이 다가옵니다. 그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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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에로틱한 순간’은 서스펜스적인 성격을 띱니다. 고대했던 순간에 다다르기 직전, 한없이 시간이 느려지는 느낌을 받죠. 때론 아예 멈춘 것만 같습니다. 서스펜스(suspense)가 ‘연장하다’라는 어휘에서 기원한 것, 아시죠. 규칙적으로 흘러가던 시간이 가장 갈망했던 시점 직전에 정지해 버립니다. 에로틱한 영화만큼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데,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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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두 사람의 성적 교합보다 최초의 접촉, 혹은 만남이 성사되기 직전으로 기억됩니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가 대표적이죠. 배우자가 있지만, 서로를 향한 감정으로 조금씩 물들어가는 남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양조위를 만나러 호텔방으로 향하는 장만옥의 뒤태로 기억되는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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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긴장감’입니다. 빨간 코트를 입고 복도의 빨간 벽을 쓸며 객실 2046호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심장박동처럼 들립니다. 감독의 탁월한 선곡이 돋보이는 ‘Yumeji’s theme’의 뭉근한 첼로 소리는 혈관의 떨림까지 잡아낼 듯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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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란, 한 주를 버티게 하는 동시에 축적된 긴장감을 터뜨리는 정점의 요일입니다. 가로등이 켜지고, 도로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이들을 태운 차의 헤드라이트로 가득 차죠. 4/4박자인 다른 평일들이 4분음표 4개가 단조롭고 무겁게 늘어선 리듬이라면, 금요일은 16분음표가 요동치는 신묘한 요일이랄까요. 막 달리기를 마친 호흡처럼 리듬이 가빠지죠.
이번 주, 당신을 떨리게 한 순간은 언제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