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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Mar 09. 2024

겨울의 독서노트

겨울에 읽은 21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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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독서노트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영어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눈 내린 수양 자작나무와 대청소, 새로운 달력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시는 시간
고양이와 같은 이불을 덮고 책을 읽기도, 여행지의 기념품을 사 오기도 했다.

음악과 그림에 관한 책을 많이 읽은 겨울. 여전한 관심인 생태 분야도 한 꼬집 있다.

 

고심이 책을 고르고 그중에 보석을 발견해 내는 것은 깊은 즐거움이다. 책의 문장들은 여러 무늬들 사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번개 같은 한 줄을 만난 그 순간만이 삶의 진짜로 기억되는 것만 같다. 생각의 한 페이지에 자리 잡아, 인생의 가름줄이 되어 준다. 그 한 문장을 위해 오늘도 다른 글자들 사이를 헤엄치는 여정을 또 한 번.     






해리 포터 영어 원서로 전권 읽기 완료! 그리고 앤
1년 계획의 마무리!
챕터 별로 읽은 날과 모르는 단어를 정리한 날을 적어둔다. 제일 좋아하는 김밥으로 파티를 했다.

작년 내내 시간을 쏟은 영어책 읽기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다. 마법사의 돌을 1월 22일 날 읽기 시작해서, 12월 14일 죽음의 성물을 덮기까지의 여정이었다. 미나리마 영어 버전, 영국판 페이퍼 북으로 보았다. 책을 읽고, 모르는 단어나 좋아하는 구절을 밑줄 쳐 두었다가 노트에 옮기고, 한국어 책과 비교해서 뜻을 찾아 적었다.      


새 책을 시작하는 마음! 그리고 영어 노트. 한 쪽에는 영어 책 본 것, 뒤 쪽에서는 화상영어 수업 기록을 남긴다.
일터에서, 도서관에서, 카페에서도
계획보다 늦게 완주!

새해가 되어 겨울 동안 앤을 읽었다. 앤은 동서 문화사 버전, 시공 주니어 버전으로 여러 번 읽고, 작년에 알라딘 펀딩 버전으로 전집을 드디어 소장하여 다시 읽게 되었다. 올해는 영어로 읽어 보았는데, 새롭게 다가온 부분이 많아 여전히 좋게 느껴졌다.      


다음 영어 책으로는 해리포터와 앤 못지않게 나의 독서생활 쌀밥 역할을 한 랩 걸과 헝거 게임 중 고민하다가, 헝거 게임 페이퍼 북을 스프링 제본 해 둔 것이 있어 시작해보려고 한다. 올해의 목표로는 헝거 게임 전편, 랩 걸, 작은 아씨들을 원서로 읽는 것이다. 기운이 된 다면 한국어로 읽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책도 접해보기.





이다의 자연관찰일기 _이다

너무 보고 싶었던 책인데, 선물 받을 기회가 있어 이 책을 골랐다. 역시나 좋고 너무 따뜻한 조각들. 각 달에 맞게 다시 펼쳐보고 싶다. 새 관찰, 찔레꽃에 열광하는 비슷한 면모가 있다. 깃털을 모으는 취미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소설을 떠오르게 했다. 나 또한 엄마가 다이어리 사이에 지퍼백에 넣어 남겨둔 오색딱따구리 깃털을 부적처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세일하는 식용 꽃을 사서 압화를 해 놓는 사람이다. 이 에피소드로 그 사람과 조금이라도 친해진 기분이 든다. 기록한 꾸준함에 박수를 보낸다.      


찔레꽃을 보고 느낀 점이 비슷하여 남긴다.

‘찔레꽃 하나로도 벅찬데’          





일요일의 음악실 _송은혜

뭐에 빠지면 일단 책부터 뒤져보는 옛사람. 작년 가을부터 도서관에 있는 클래식 코너의 책을 한번 다 털었는데, 그중의 한 권이다. 친절한 설명과 적당한 문구 인용이 있고, 그림과 함께 들어볼 수 있는 큐알 코드까지 있는 구성이다.



목정원의 책과 영화 컨택트가 나오는 순간 저는 그냥 이 작가에게 원투펀치 당해버렸어요. 좋아하는 게 겹치는 사람은 언제나 귀하니까!  읽으면서 정신없이 들을 음악을 추가하고, 음악 용어를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되었다. 인용된 책들도 재밌어 보이는 것이 많아 따로 적어두었다.      


세상의 모든 아침, 이별의 푸가, 시대의 소음. 세 권과 더불어 음악 다큐멘터리 숭어 등 추천 미디어와 함께,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따로 적어둔다.      


파니 멘델스존이라는 멋진 작곡가, 그리고 녹턴, 피아노 트리오.

https://www.youtube.com/watch?v=ti1eZ2B63Ro     

처음 듣고 이게 뭐지, 충격에 빠지게 했던 글렌굴드의 골든베르크에 대한 자세한 설명.     

어린이의 정경 소제목들이 매우 아름답다는 사실.     

싱송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1집 망하고 2집 성공한 라흐마니노프.

너무 아름다워 무한 반복한 우아한 유령의 작곡가 윌리엄 볼컴.

양인모의 연주가 스윙을 살린 연주였구나! 그래서 나는 손열음 버전이 더 좋았나 보다.      

바흐는 살아서 슈스이지 못했구나.

차이코프스키는 음원 선공개를 선호했구나.

베토벤의 편지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았던 고흐의 편지와 닮아있다.

진은숙이라는 한국의 여성 작곡가와 신기한 분위기의 곡.

봄이 되면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들어야지.                    





음악의 사물들 _신예슬    

비물질인 음악에 관련된 아홉 가지 사물들에 대해 이야기한 책. 만듦새가 아주 아름답다. 옛 그리고 동시대에 음악가와 창작자들, 심지어는 테크놀로지 종사자까지 떠올려볼 만한 질문들을 향유한다.     

 

악보와 그림이 굉장히 반대편의 속성이라는 걸 처음 느꼈다. 현재와 순간을 담고 염원하는 게 다르구나. 그런가 하면 존 케이지의 악보는 그림과도 같다.      


아리아 악보는 이 책을 읽은 날 다녀온 카페의 원두 지도를 떠올리게 했다. 책에서 추천받아 들은 현대 음악은 현대미술관 영상 작품에서 흔히 나오는 배경음과 구분할 수 없었다. 실험하는 예술인들은 비슷한 모습이 있다.      


임윤찬의(없는 음을 만들어 치거나, 숨겨진 멜로디를 건져내는 등) 연주를 보고 연주자의 역할이 더 컸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 소감을 보았다. 호로비츠를 존경한다고 한 인터뷰를 봤는데, 새로운 해석을 추구하는 면이 닮았다.


이로 인해 이 책에서 표현한 피아노 대리자라는 의미가 와닿았다. 요즘 유튜브에 클래식 음악을 검색하면 컴퓨터가 악보에 표기된 모든 것을 따라 친 버전이 있다. 프로그램이 한 연주라는 것을 알고 나면, ai 그림처럼, ai 커버처럼 영혼이 없게 들린다. 감상자들이 원하는 것은 한 인간의 해석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자동피아노 또한 금방 사라진 것처럼, ai 시장과 공존해야할 어떠한 미래를 보여줄 수 있겠다.                     




클래식 수업 _김주영
고양이랑 같이 읽어요

소나타를 요리 형식에 비유한다거나, 피아노가 있는 실내악에서 피아니스트는 포수와 같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으나 숨길 수 없는 서울대... 어려워요 척척박사님. 클래식 입문은 아니고 중급자쯤이 읽으면 재미있겠다.      


피아니스트이자 교수가 쓴 에세이로, 임윤찬의 쇼팽 에튀트 전곡 리사이틀을 앞두고 찾아 읽은 책이기에 그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 책으로 인해 폴리니, 아슈케나지, 페라이어, 루간스키, 코르토 등의 연주를 찾아보았다.     


베토벤과 체르니, 리스트가 스승과 제자 계보이며, 라흐마니노프가 편곡을 자주 했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리믹스에 강한 싱송라잖아!      




오늘부터 클래식 _김호정

클래식 기자가 쓴 클래식 음악 책. 궁금했던 부분을 쏙쏙 해결해 준다. 음악당 별 음질의 차이라던가 유자왕이 아이패드로 악보를 보던데, 콩쿠르에서의 기준이 뭐지?라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통영, 산토리, 콘서트헤보, 무지크페어라인을 꼭 방문해보고 싶다. 내 남은 생에 언젠가는!      


리스트부터 암보가 유행했고, 슈만의 이중적 자아, 그리그와 라흐마니노프를 둘 다 좋아하는데 낭만주의 작가라는 사실, 라흐마니노프는 신파에 팔리는 음악만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는 점(오닥후들은 그걸 좋아해요 아는 맛), 안드레아 보첼리가 플롯과 피아노 연주를 즐겨했다는 사실, 엄마가 너무 좋아했던 두오모 성당의 영상 이야기도 나온다.      


대타로 베를린 필 데뷔한 조성진, 손열음의 솔직한 인터뷰, 요즘 빠진 백건우(헐 아내가 윤정희…? 소름) 등 최신 이야기까지 담겨있다. 그리고 길버트 카플란의 말러 교향곡 2번 덕질 미쳤다고 생각한다. 할 거면 이 정도까지 가야 하는구나!          





예술의 주름들 _나희덕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희덕 산문. ‘반통의 물’이라는 아름다운 책을 기억하고 있기에 기대하며 펼쳐보았다. 영화 음악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다뤘고, 시인이기에 찾아낼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들, 비틀림에 관한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었다.          


파울라가 말한 ‘나는 뭔가가 되어가고 있어.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격렬하게 행복한 순간을 살고 있어.’는 내가 늘 바라는 자세이다.

 릴케가 파울라의 죽음에 부쳐 '당신은 당신을 다 써버렸어요'라는 문장도 기억해 둔다.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한 실험적 면모, 요새 관심사인 글렌 굴드에 관한 내용이나 윤형근이 스승이자 장인인 김환기의 작품을 잔소리가 많다고 표현한 것이 흥미로웠다.  

    

어쩜 이렇게 많은 분야의 예술을 감상한 글을 남길 수 있지. 나도 이렇게 글을 꼭 남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의 다짐을 좋아하는 걸 기록하자!로 잡았다. (클래식에 관해 좋았던 것을 써보고 있다. 좋아하는 것 부자로서, 느낀 걸 쓰는 경험이 매우 새롭다.)          




조율의 시간 _이종열
버터의 최애 이불. 겨울에는 두 겹의 이불을 덮는데 버터를 위해 안 쪽만 바꾼다.

유퀴즈를 보고 골랐다. 무대 뒤의 사람들이 하는 솔직한 평가가 있다. 욕도 칭찬도 솔직하게. 더불어 조율에 관한 기술적이고 세밀한 정보도 있다. 차 한 잔 하며 도란도란 얘기 듣는 느낌의 책이다. 피아노도 상해서 바꿔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신기한 이야기 그리고 음색에 관한 과학적 이야기가 새로웠다.      




책에 바침 _부르크하르트 슈피넨, 리네 호벤
그림이 책을 읽는 현재의 나와 같아 놀랐다!

책에 관한 책. 벌써 재미있다. 자동차가 생기고 말이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온 책. 마차를 끌던 말에 대한 의미나 중요성을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종이책의 운명이 그렇게 되려나. 하며 시작하는 책에 대한 헌사이다.      


사진은 이케아에서. 이게 1 빌리책장

이케아 빌리 책장이 개인 장서를 가늠하는 흔한 기준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6단짜리 빌리책장으로 치면, 기준 대강 15 빌리 책장 정도의 책을 소장한다고 가늠해 본다. 몇 권이려나...  




모네가 사랑한 정원 _데브라 맨코프

모네에게는 정원이 또 하나의 캔버스였다. 책 자체는 사실을 나열함에 가까운 책이지만, 새롭게 느낀 점은 다채로웠다.      


친구들과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인상주의에 흥미를 느껴 어릴 때부터 이 시기의 그림과 책들을 탐닉 중인데, 다시 한번, 동료 작가들과의 연결로 인해 발생한 시너지의 힘을 느낀다.


그림 소재를 찾아 여행을 다채롭게 많이 다녔다는 사실 또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일시성이 주는 사소한 것도 귀하게 바라보게 되는 시선, 가벼운 터치들이 즐겁다.       


다른 그림처럼 정원의 다리 또한 매우 자주 그려서, 연못에 수련이 많이 자란  후 버드나무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버전이 있다는 점도 알게 되어 즐거웠다. 정원은 지베르니 토착종들로만 꾸렸다는 점도 새롭다. 그곳에 가보는 것은 나의 오래된 꿈이다.


모네는 자신의 정원이 어느 계절, 어느 시간 때에가 예쁘니 그때 방문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작은 정원을 꾸리는 시골러로서 매우 공감 가는 부분이었다. 날씨가 풀려가니 정원에 관련된 책을 많이 보게 된다. 정원 관련된 책으로는 마음 깊이 좋아하고 언제나 떠올리면 힘이 되는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을 추천하겠다. 날이 풀려 흙을 만질 날을 기다린다.           




아틀리에, 풍경 _함혜리

노은님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정말 아름다워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 만으로도 고마운 책.       



        

그림의 역사 _데이비드 호크니, 마틴 게이퍼드     

책이 거의 해리포터 불의 잔 일러스트판만큼 무겁다. 법정에서 흉기로 인정될 만한 무게라 무릎에 베개를 두고 올려놓고 보았다. 아트보단 좁은 picture에 대한 이야기다. 그림의 정의부터 온 세대를 아우르는 책으로, 아주 흥미롭게 보았던 ‘다시 그림이다(2016)’이전의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호크니가 왜 리빙 레전드로 꼽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엄청난 양의 지식과 사진만의 해석, 그리고 덧붙여지는 다작. 동서양에서 탄생한 다채로운 시대의, 여러 그림과 사진을 수십 개를 나열하고 하나의 주제로 묶어 소개한다. 동서양 그림을 비교한 책을 한참 보았을 때, 동양 그림에는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혼자만 느끼고 누군가가 조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여겼는데, 다루는 책을 만나 반가웠다. 인상주의로 흐름이 진행되며 그림자 역시 역할이 희미해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유명 화가들의 습작이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까지 새롭게 알게 되어 마음에 든 그림들도 정말 많았다.      


호크니 그림의 힘은 그리고 싶게 한다는 점이다. 감상자가 들어갈 자리를 항상 남겨두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호크니의 그림보다 인터뷰 쪽이 더 반가운 사람으로서 이러한 책들이 있어 좋았다. 내버려두면 정말 하루 종일도 떠들겠다. 이렇게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면 먹을 것, 음료수 주면서 실컷 얘기라 하고 둬볼 것 같다. 읽기 지루할 때쯤, 단호한 호크니의 멘트들이 아주 매콤하게 뿌려져 있다. 호크니는 판 에이크의 왕왕 팬이어서, 그 부분에서는 마치 봉준호가 마틴 세이지를 보는 모습이 떠올랐다.  

봉준호 오타쿠라고 검색해서 찾았다. 행복하세요 감독님.




작은 아씨들 _루이자 메이 올컷
감탄했던 영화 속 옷 들. 책에도 정말 정말 말도 안 되게 예쁜 그림이 많이 있다.

그림을 그리러 오는 친구가 나라면 이 영화를 좋아할 것 같다고 추천하여 그레타 거윅의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듄으로 사랑에 빠진 살라미 또한 등장! 보고 난 후에는 시얼샤 로넌이라는 배우에 푹 빠지게 되었다. 특히 캐스팅이 감탄스러운데, 각 배우들의 전 작품을 생각하면 모두 어떻게 다 이 역할에 이 사람을 연결 지었는지, 너무 착붙이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옷. 하나하나 아름다웠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모든 복장들이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더 그 세계로 몰입되었다. 내용 또한 원작을 새롭게 풀어낸 부분들이 좋았다.      


아쉬운 점은 로리가 동생인 에이미와 연결된다는 점이 다소 또라이... 그 부분만 도려내면 완벽하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보게 되어, 시간이 흐른 후에도 영화를 본 순간을 곱씹을 만큼 행복했다.      


그리하여 집에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하나씩 독파하여 모으던 네버랜드 클래식 버전이 있다. 책을 깨끗하게 보는 습관 덕분에 아직도 새것처럼 보관하고 있다. 아주 구판이라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삽화는 다른 버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매우 귀하다. 어린 시절에 침을 흘리며 보았는데, 다시 보아도 아름답다. 특히 조의 머릿결을 그린 부분은 여전히 탐닉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책을 보니 각각의 캐릭터들의 장점이나 벌어지는 사건들의 순서를 극대화해서 영화화한 것이 느껴진다. 영화도 책도 베스가 죽을 때는 얼굴을 다 적시며 보았다. 실제로 작가의 여동생이 죽었던 경험을 이야기에 녹였다고 한다. 올해의 목표 중 하나로 원서로 읽어보기가 있기에, 다시 한번 만날 기회를 기약한다.                     



등대로 _버지니아 울프
행복해라 이놈아... 추운 계절이라 부쩍 붙어 있었다. 내가 아니라 저 이불을 사랑하는 듯.

제목 그대로 등대로 향하는 이야기.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에서 이 책을 쓸 시절에 대한 부분을 매우 인상 깊게 읽어 사두었다가 이제야 읽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겠다. 요즘 푹 빠져 매일 조금씩 아껴보는 길모어걸스가 연결 지어진다. 로렐라이 길모어와 그의 엄마 에밀리 할머니의 관계가 생각난다.      


작가의 스타일상 정말 의식의 흐름 대로 진행이 되고, 따옴표도 잘 없는 불친절한 서술이다. 그냥 보이는 걸 이야기해서, 정말 뭔 소린지 모르겠기도 하다. 흐르는 시간 후에 의미를 알게 되는 우리의 삶과 같다.  

    

인용되는 시나 책도 많고, 날씨나 풍경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이 많아, 앤에서 자주 등장하는 날씨를 묘사하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밤이라고 부르는 _안희연

앞쪽의 시 두 개가 통으로 마음에 든다. 이전 시집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과 같은 시끼리의 연속성은 없어도 좋은 구절이 많았다. 시와 함께 뒤 쪽에 수록된 에세이가 있는데, 그 부분이 더 좋았다. 그리고 나는 역시 문지 버전의 시집이 더 좋다. 시집에 흰 양장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겨울밤 _황동규
몸과 주위가 온통 환해지는 순간을
두 눈 끝에 열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림이 없으면 끄트머리도 없지요
_<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갈 준비 돼 있다> 중


겨울에 어울리는 시집을 골랐다. 이 책은 예전에 절판된 시들을 모아 쪽지를 붙여 다시 낸 것이다.


일상과 현실에 발을 꼭 붙이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풍선 같다. 읽는 동안 차가운 가을 낙엽 냄새부터 겨울 공기까지 코 밑에 오가는 듯했다. 겨울의 설산 한라산을 가는 꿈을 꾸는데, ‘얼음꽃’이라는 시를 꼭 다시 읽고 가야겠다.          




작은 집 _르 꼬르뷔지에

르 코르뷔지에 집처럼 간결한 책. 오래전, 전시에서 직접 들어가 보고 잊을 수 없게 된 말년의 오두막인 줄 알고 봤는데, 부모님을 위해 새로 지은 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돈이 없을 시절 가족을 위해 지은 아끼는 집이어서 책으로 남겼나 보다.      


이런 집을 짓고 싶다며 그린 도면을 가지고 다니다가, ‘장갑처럼 꼭’ 맞는 땅을 찾아 짓게 된다. 스케치가 함께 실려있고, 집의 모양도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다. 시그니쳐 같은 긴 창도 여기서 실컷 늘려 보았는지, 11미터의 창이 있다. 이 집에서 아버지는 1년을 살았고,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지냈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인 형제가 오랜 기간 머물렀다고도 한다.            



         

달을 보며 빵을 굽다 _쓰카모토 쿠미

글쓴이이자 사장님의 행동력이 멋지다! 어디선가 들어본 내용인데 이 사람이었구나. 덕후가 성공하는 법, 즉 비전공자가 전문가의 길로 접어들어 장인이 되는 코스를 체험할 수 있다.       




모든 삶은 흐른다 _로랑스 드빌레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이 책 또한 유사한 소문이 무성하여 시도해 보았다. 철학서라기에는 가벼운 일기 같은 책이다. 쩝. 쩜 서운한 맛이다. 역시 추천이 많은 책은 오히려 믿음직하지 못하다. 또 속았구만. 오랫동안 단련한 책 고르기 실력을 믿었어야 한다. 번번이 넘어가네.      


소제목 하나당 바다에 관련된 키워드가 나오고 에피소드와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이런 걸 원한다면 바다의 선물을 열 배 더 권하겠다. 3/1만큼 얇은데 감동은 세배!           




내 생의 중력에 맞서 _정인경
인간은 이러한 자연 과학의 법칙을 초월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뇌가 외부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은 내적 표상이라는 가상의 모형을 통해서입니다.
진화에 공짜는 없습니다. 모든 적응은 거래입니다. 자연선택은 비용과 이득을 끊임없이 계산하면서 타협점을 찾습니다.
뇌는 기억의 보유자가 아닌 창조자의 말을 듣습니다. 기억의 창조자는 유구한 진화의 역사입니다. 진화 과정에서 뇌는 우선적으로 기억해야 할 목록을 가지고 있어요.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억을 남기고 나머지는 지워버립니다.


과학자로서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쓴 책이다. 정말 사람을 위한다는 것이 책 내내 느껴진다. 과학의 세계에서도 어느 지점이 지나면, 결국은 굉장히 불교적인 해석과 연결된다.      


관련된 과학, 인문 도서들을 무척 많이 추천한다. 인용된 책들도 마구마구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평온한 저녁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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