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상반기의 미술 전시
재앙을 거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누군가가 이미 그 길을 걸어서 다시 그 경험을 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_<랩 걸>_호프 자런
거기서 출발하지 않았더라도, 예술은 시대의 흐름 속 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 중 몇몇은 미술관에 모인다. 수많은 조각을 꿰어낼 하나의 주제를 정할 때, 사회적 흐름과 시대의 요구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갤러리보다는 시립과 국립이 더욱,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들을 아카이빙해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올해, 어느 분야보다 열려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무척 폐쇄적인 전시장에서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뚜렷한 흐름이다. 드디어 그리고 이제야.
2018년의 상반기에 관람한 전시 중, 세 개의 전시를 같은 선에 놓아보고 싶다. 그중 2개는 이미 끝나버려서 미술관도 같이 소개하려 한다. ‘신여성 도착하다(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로 흐름의 시작을 맛보고, 같은 시대의 작가들이 만들어낸 ‘부드러운 권력(청주시립미술관)’을 본 후, 살갗에 더 닿아있는 ‘씨실과 날실(서울시립미술관)’을 순서대로 꿰어본다.
신여성 도착하다 _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17.12.21.-4.1)
부드러운 권력 _청주 시립 미술관 (2018.3.15.-5.6)
씨실과 날실로 _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18.4.17.-6.3)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이 있다. 서울관에서는 동시대 작품을, 덕수궁관에서는 근대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사뭇 다른 두 건물의 분위기가 딱 그렇다. 국립이라 싸고 미술관이라 조용하고 시원하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특히 서울관은 넓어서 여러 전시가 동시에 진행될 때가 많다. 꼭 다 보지 않고 골라서 봐도 되고, 한 개의 전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른 전시에 또 걸어볼 수 있다.
같은 시간을 사는 사람들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서울관이 채워줄 수 있다. 자주 가진 못하고,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매년 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기다려 보자. 신진 작가들의 작품들로 꾸려지는 전시로, 꾸준히 관람해보며 작년과 올해의 분위기를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은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이후의 다른 전시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작가를 보고 내적 반가움을 쌓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된다.
서울관의 분위기가 난해하게 다가와서 좀 더 선명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덕수궁관을 추천한다. 근대의 걸작(10월까지 볼 수 있음) 이중섭(2016)처럼 어디선가 들어본 주제들을 다룬다. 그리고 간 김에 덕수궁 산책까지 하면 나간 김에 여러 가지를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신여성 도착하다
덕수궁관에서 지난 4월에 마무리된 전시이다. 1900년대 초반의 ‘신여성’이라는 현상을 다뤘다. 신여성은 교육받고 실천해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한 편,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국립인 만큼 많은 자료들로 이러한 시대에 대한 설명을 도왔다. 당시의 잡지, 신문기사, 편지들이 회화작품과 아울러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성 위주의 미술계에서 배제되어야 했던 자수 작품을 통해 한국미술사의 이면을 소개한 점은, 뒤이어 나올 다른 전시들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좋은 출발점이 되었다. 여성 과학자를 그린 회화 작품은 1944년에는 상상화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짧은 머리에 가운을 입고 과학실에 있는 ‘여자’라니. 이 그림이 좋았다면, 호프 자런이 쓴 <랩 걸>을 추천한다. 너무 멋있는 식물학자의 이야기이다. 칠십 년 전에도, 지금도 먼저 나아간 사람들로 인해, 여성에 대한 하나의 예시를 추가할 수 있다.
힘 있는 작품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페미니즘과도 맞닿아있는 사회현상을 빠르고 쉽게 접해볼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 사진이나 자료 위주의 전시라 도슨트가 필요했고, 충분했다. 문화소비의 주축을 담당하는 이삼십 대 여성들이 필요로 했던 전시여서, 다른 전시에 비해 나이 때가 어렸던 것 같다. 미술관이라고 꼭 그림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인문학 강의실이 되는 체험을 했다. 만약 정말 ‘미술’ 전시를 생각했다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청주시립 미술관
서울에서 지내다 지방에 오니 더욱 와 닿는다. 사실 서울이 아닌 곳은 문화기반이 거의 0에 수렴한다. 그래도 공공의 차원에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주시립미술관은 2년도 되지 않은 곳이다. 시내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깝고, 약간 언덕에 있어서 뷰도 좋다. 두 번 가 봤는데, 작지만 알찬 전시들을 하고 있고, 시민의 눈에 맞춘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있다. 시민은 오백 원을 받는다. 벚꽃이 필 때쯤, 무심천을 걷고 시내에서 맛있는 걸 먹고 청주시립미술관도 한 번 들리면 완벽한 관광코스이다.
부드러운 권력
정말 산책길에 간 거라 기대가 없었던 게 미안할 만큼 좋은 전시였다.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 그 이후의 변화(전시 소개)’를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작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에 여자이기에 주어지는 역할과 시선들도 함께 담았다. 회화부터 조각, 사진, 영상, 작업노트까지 다채로운 분야를 골고루 관람할 수 있었다.
헌 옷에서 싹이 자라는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 김주연 작가의 작품, 유쾌한 전복을 보여준 박영숙 작가의 미친년 프로젝트, 정정엽 작가의 곡물을 민중에 비유한 회화작품, 프린트한 얼굴에 자수를 놓아 변형시킨 윤지선 작가의 누더기 얼굴, 아줌마를 진지하게 그려낸 그랜드 큐티 영상 등이 있다.
모두 좋았지만 김희라 작가의 작품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어수선한 집구석’은 섬유 조각 시리즈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말 어수선한 집구석이 펼쳐진다. 거실부터 화장실, 부엌, 작업실까지 전부 천을 바느질 한 오브제들로 채워있다. 작가로서, 또 엄마, 주부로서 지내는 일상을 그대로 전시장에 데려온 솔직함과 그 작업량에 놀랐다. 꼼꼼하게 볼수록 유쾌한 부분이 보인다. 근데 또 꿰맨 콩나물을 볼 때는 마음이 쓰르르 했다. 요즘도 자주 그 사진들을 꺼내본다.
아무래도 아직은 여성성 하면 떠오르는 곡물, 씨앗, 자수의 모티브가 많았지만, 출발은 그러할지라도 작품을 통해 오히려 구분을 뛰어넘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 모습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같이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둘 다 나온다. 영국대사관 때문에 막혔다가 60년 만에 개방한 돌담길 일부도 근처에 있어 같이 걸어볼 수 있다. 걷기만 해도 곳곳에서 역사를 목격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퇴근하는 수문장들과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미술관 앞의 정원도 잘 꾸며져 있어 주말 나들이에 좋을 듯하다. 그리고 다른 곳에 비해 좀 더 자유로운 전시장 분위기라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많았다. 규모에 비해 상설 전시와 특별 전시 2개까지 다양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씨실과 날실로
위의 두 전시에 비해 여성의 자리는 적지만 좀 더 생활에 스며든 예술을 볼 수 있다. 실, 여성, 손노동이라는 키워드로 현대에 이루어진 프로젝트와 사회적 활동들을 소개한다. 주제에 맞추어 뜨개, 자수, 그리고 지역과 연계된 공동체 활동들이 작품이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지하상가에서 출발한 이웃상회에서 만든 마무리 옷이다. 상가에서 평생 뜨개 가게를 하며 자식을 키운 할머니는 이제야 일을 취미로 하며 자신의 옷을 그려본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뜨개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입을 옷을 만든다. 뻔히 알면서도 말려드는 cj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지만, 진작 해볼 걸 하며 웃는 영상 속 할머니의 모습은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 울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아서 괜히 다른 곳을 서성였다. 거기 놓인 스케치가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여성이 주류이기 때문에 제외되어 온 자수와 뜨개로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모습들은 앞선 전시들과도 통하는 부분이었지만 여기에서는 협동과 지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주변의 뜨개나 자수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은 데, 일상에서도 손노동을 통해 여성적 상징을 넘어선 그다음의 것들을 충분히 그려내는 여성들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 덧붙이는 말
미술관을 가보고 싶은데 국립현대미술관은 너무 어렵거나 난해해 보이고, 예술의 전당은 졸리고 비싸고, 대림미술관은 사람이 많아 망설여질 때는 서울미술관을 가보자. 문화재로 인해 제약회사의 사옥이 되지 못한 공간에 생긴 미술관이다. 권위 없이 참여하는 전시를 지향한다고 하니, 미술에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아서 미술관의 문턱이 높았던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흥선대원군의 별서였던 석파정에서 역사와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도 있으니, 문화유산을 보러 가는 것만으로도 아깝지 않은 발걸음이 될 것이다.
취향을 만들어보는 것이야말로 소비를 위한 소비에 휩쓸리지 않는 좋은 훈련이다. 퇴근길에 들리는 서점이나 주말에 가는 공원처럼 미술관도 가볍게 자주 보다 보면, 나만의 시선이 생겨난다. 누군가의 노고를 좋은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값진 체험이야말로 미술관에 가는 이유다. 보고 남는 질문들은 새로운 씨앗으로 남기고, 아닌 건 흘려보내는 마음으로 어렵지 않게 감상해 보면 좋겠다. 더 많은 시선과 이야기가 궁금하므로, 나 먼저 얇게나마 느낀 바를 적어보았다.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펼쳐진 세 전시를 통해 여자라 읽히지 않았던, 일상적이라 전시장에 걸릴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드디어 그리고 이제야 보게 되었다. 예술에서 뿐 아니라 일상에 드리워진 이 뚜렷한 흐름이 반갑고 화도 나고 때론 눈물 난다.
랩 걸에서 말하길 버드나무는 매년 한 그루당 만 개정도, 즉 가지의 10퍼센트를 스스로 잘라 물에 흘려보낸다고 한다. 그렇게 떠내려 간 100만 개 중의 하나는 강둑에 쓸려 올라가 뿌리를 내려 유전적 도플갱어로 자란다. 투표를 하고 학교를 다니며 이런 전시를 볼 수 있는 것이 그냥 얻어진 게 아님을 알고 최소한 버드나무처럼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창작하는 사람에겐 빛이 난다. 나 또한 그러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여자들이 자기만의 방과 돈을 가지고, 배우고 말하고 만들어낼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