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사전>, <한 글자 사전> _김소연
당신은 말들을 두 손 가득 담아 내 몸에 뿌려주었다. _<눈물이라는 뼈> 침묵 바이러스 中 _김소연
책을 옮겨 쓰게 된 것은 대학생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서부터이다. 느낌을 간직하려고 시작했다. 첫 필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박범신의 힐링. 비록 박범신은 늙은 은교, 젊은 은교에게 술을 따르라 하며 내 책장에서 떠나갔지만, 그때의 습관은 남아있다.
친구가 우리 할머니가 되더라도 너는 시집에 밑줄을 긋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사서 보는 책은 밑줄을 칠 수 있어서 좋다. 첫 밑줄은 아빠가 가진 거의 모든 지식의 출처인 이규태 책. 학교에 가져가서 읽곤 했는데, 거기서 ‘아사’라는 말을 처음 보았다. 단어의 식감을 느끼며 샤프로 가는 밑줄을 그었던 느낌이 생생하다.
느낀 것들을 꺼내어 말로 정의하고 싶지 않을 때도 그어진 밑줄을, 혹은 눈으로 그어둔 문장들을 옮겨 적곤 한다. 하지만 너무 좋은 것은 옮겨 쓸 수가 없다. 진짜 좋으면, 잘라지지 않아서 그냥 거기에 있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 사전>과 <한 글자 사전>도 그랬다.
바닥에 앉아서, 친구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던 전시장. 좋아하던 사람의 전시에 좋아하는 시인의 글이 함께 있었다. 그때의 공기까지 인생의 어느 지점으로 간직될 만큼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손이 닿는 곳에 도록이 기념품처럼 있다. 그렇게 나 혼자 시인과 내적 친목을 쌓던 중,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마음 사전을 추천받아 또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 사전이 나온 지 십 년이 흐른 지금, 한 글자 사전을 읽고 있다.
마음사전과 한 글자 사전 둘 다 자기소개가 재미있다. 안을 보지 않아도, 벌써 친해지고 싶다. 가나다 순으로 배치된 한 글자들을 읽다가 연필을 내려놓았다. 차마 어느 부분을 건져낼 수 없을 만큼 고르게 좋아서 밑줄을 칠 수 없었다. 팔랑거리는 글귀들이 만져지는 듯했다. 흰 자리를 넉넉하게 남겨놔서 눈은 읽으며 마음은 잠시 다른 생각을 해도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다 한 숨에 읽고 싶지 않아 덮고, 이 느낌을 여기 남겨둔다.
나도 이렇게 섬세하게 느끼고 잡아서,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 노력에 시간을 기꺼이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이면 더더욱 좋겠다. 정의할 순 없지만, 그래도 말해보는 노력을 멈추진 말아야지.
책은 읽기에도 좋았지만, 이런 종류의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느끼게 했다. 너무 오랜만에 그런 식의 좋음을 경험해서 설레었다. 마치 잘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너무도 다른 영역이듯, 보고 좋은 마음이랑, 이런 걸 해 보고 싶다고 느끼는 마음은 아주 멀다. 이런 날 것의, 하지만 정리된, 솔직함을, 참 하고 싶다. 책머리에 ‘읽는 이가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그 마음 잘 배달받았습니다.
이런 책은 자주 손이 가는 곳에 꽂아 놓고, 두고두고 만져야겠다. 책상 위의 책꽂이에 도록과 다이어리와 스티커와 나란히 둘 거다. 이 책꽂이는 훗날 4년간 가구에 대해 생각하게 될 줄 1그램도 모르고, 중학교 때 만든 나의 첫 가구이다. 에이쁠을 받았는데, 지금 남아있는 가구들 중 슬프게도 가장 높은 점수이다. 촉을 박을 때 다리가 깨졌고, 하필 새벽에 방문하신 교수님 앞에서 그 일이 벌어져서 씨쁠을 받은 원목 스툴. 그리고 자꾸 찢어지는 무늬목 덕분에 매직으로 무늬를 그린 합판 보관함. 잘못 산 무늬목이 다람쥐꼬리의 줄무늬를 닮아서 다람쥐로 불렸고 역시나 씨 어딘가. 그래서 책꽂이만 책상 위에 있고 나머지는 책상 아래에 있다.
페이지마다 너르게 비워진 자리 덕분인지, 읽고 있을 때에도 생각이 계속 오갔다. 책이 기다리고 있어서, 할 말이 많았다. 남은 반을 다 읽고 나면 올해의 마니페스토를 새로 적어보고, 봄에는 국어사전을 꼭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