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녁
0615
안녕 친구야.
기분 좋게 배가 부르다. 크게 앓고 난 후에 입맛이 없어서 금방 배부르더니 어제 오늘 너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어. 날씨가 따뜻해지기만을 기다리던 겨울날의 우리 가족은 땅에 먹을 것을 맡겨놓은 것 마냥 기다리곤 했지. 그러다 날이 풀리고 스물스물 기운이 올라올 때 쯤 냉이를 시작으로 낮에는 마당일을 못할 만큼 더운 지금까지. 내 뱃속에 있는 것들 중 절반은 다 이곳에서 준 것들일 거야. 아빠 말처럼 자연냉장고에 맡겨두었던 음식들로 매일의 끼니를 만들고 있어. 오늘은 도시음식이 그리웠던 모녀가 뚝딱 만들어낸 저녁을 소개하려고 해. 방금 먹은 그 음식들 말이야. 기억나? 저번 편지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기적과도 같을 정도로 행복한 일이라고 했던 말. 오늘도 그 말처럼 평온하고 흡족한 저녁시간이었거든. 다음에 놀러오면 꼭 해줄게. 같이 먹자. 뒷산과 마당에서 나온 재료들로 만든 오늘의 저녁, 짜란!
1. 산딸기 샐러드
더워서 요리하기 귀찮고 입맛 없을 땐 샐러드가 최고야. 금방 만들 수 있고 먹을 때도 편하거든. 집 앞의 산책길을 따라 산딸기인지 복분자인지 그저 꽃이 피는 넝쿨인건지 알 수 없었던 (하지만 내심 산딸기임을 매우 바래왔던) 친구의 정체가 밝혀졌어. 산딸기였어!!! 햅삐 :) 너무너무 기다리다가 막상 다가오면 잊어버리는 그런 때 있지 않아? 언제 익나 매일매일 기웃거리다가 드디어 어제 오늘 두 줌의 산딸기를 맛보았어. 덤불이 크고 약을 하지 않아서 열매가 매우 작고 따기도 힘들지만 고라니와 참새들과 함께 먹을 거니까 양보해야지. 퇴근하고 들어온 아빠에게 컵을 들려서 다시 내보냈어. 미션은 산딸기 한 줌 따오기! (고라니가 뜯어먹고 남은 비타민, 키가 자라지 않는 참나물, 유일하게 연한 잎을 가진 청상추, 따기도 미안한 겨자)마당에서 조금씩 뜯어온 채소를 깨끗하게 씻기고 나란히 긴 접시에 눕혀주었어. 샐러드를 만들 때에는 항상 아, 이 정도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을 정도가 딱 남기지 않고 먹을 만큼의 양이더라구. 그리고 발사믹 소스를 슉 뿌려주고, 알맞게 도착한 아빠가 따온 산딸기를 깨끗하게 씻어서 한 줄로 진열하기. 만들면서도 너무 예뻐서 셀프 감탄을 멈추지 못했어. 나 좀 셰프 같아?
2. 오일 파스타
피자에 토마토를 넣을거라 파스타는 오일 파스타를 해보았어. 짧은 양식 경력이지만 이것 저것 파스타를 맛보고 다녀보니 결국 오일 파스타가 제일 맛있더라구. 양은 언제나 잘 모르므로 그냥 통에 남아있던 면을 후룩 쏟아서 다 삶기. 내가 좋아하는 마늘과 양파는 많이! 내가 칼 쓰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는 엄마가 멋있게 딱 썰어주셨어. 사실 오일파스타를 만들어 보느건 처음이라 떨렸지만 맛있는 걸 그냥 다 넣고 볶으면 당연히 맛있는 거 아니겠니? 근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양의 기름이 들어가더라구. 왜인지 죄책감이 살짝 들어서 퍽퍽하더라도 기름은 덜 넣었어. 어차피 불기 전에 다 먹을꺼니까! 소금으로 간을 한 후에는 모든 요리의 완성은 마이 페이보릿 향신료 후추! 레스토랑에서 먹는 파스타처럼 동그랗게 말아서 예쁘게 담고 싶었지만 결국은 후라이팬 째 쏟게 되는 어려운 플레이팅. 볼터치처럼 마당에서 따온 바질 두 잎으로 마무리! 기대보다 맛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물론 당연히 깨끗하게 비웠지.
3. 토마토 바질 또띠야 피자
파스타와 샐러드만 먹기엔 아쉬울 것 같아서 냉동실에 또띠야가 있길래 피자도 만들어보았어. 얻어온 토마토와 누가 준 양파를 다진 후에 마늘과 함께 후라이팬에서 볶아주면 만능 소스가 탄생해. 갓 싹이 나서 뜯어오기도 너무 미안했던, 하지만 미안한 것 치고는 무자비하게 수확해 온 바질도 함께 다져넣었더니 외국맛이 나더라구! 신기해. 이 소스에는 파스타를 넣어도 피자를 만들어도 가지를 볶아먹어도 맛있어. 이번엔 피자를 만들거니까 일단 또띠야를 한 장 깔고 소스를 바른 후에 냉동실에서 잠자던 치즈를 깔아주고 다시 또띠야를 덮은 다음에 남은 소스를 와장창. 전자렌지로 조금 돌려주고 마당의 채소 중에 유일하게 여린 잎으로 성장 중인 청상추를 손으로 쓱쓱 잘라서 얹어주고 열무김치를 담그다 남은 연두색 열무 줄기를 무심하게 턱 얹어주면 완성이야! 수저로 뚝뚝 떠먹으면 여기가 바로 이탈리아? 엄마: 루꼴라가 서양의 열무야! 맛있어 넣어넣어. / 나: 하지만 이건 동양의 열무잖아. (갸웃). 사실 난 열무를 넣고 싶지 않았으나 생각보다 맛이 좋아서 머쓱했어. 이 피자의 부제는 열무피자야! 아 나 배고픈 거 같아. 방금 전에 먹었는데. 엉엉.
4. 웨지감자
사실상 오늘의 메인이야. 오늘은 감자를 첫 수확한 역사적인 날이거든. 장마가 오기 전에 캐놓아야 하더라구. 요령 없는 초보 마당러 덕분에 자꾸 삐져나오는 감자들을 묻어주길 몇 달. 풍성한 남의 집 감자밭을 보며 하염없이 부러워하던 차에 놀랍게도 싹이 나고 꽃이 피고 또 이렇게 감자까지 열려주신 감자님 감사합니다. 저번에 감자 꽃을 화병에 꽂아놓았었는데 아주 매력 있더라구. 질리지 않고 어디에나 어울렸어. 꽃이 지고 줄기가 시들시들 해 질 때쯤이 감자를 캘 때라고 해서 오늘 엄마 아빠가 시험 삼아 몇 줄기를 뽑아 봤나봐. 주렁주렁 달린 애들도 있고 빈 가지로 딸려 나오는 애들도 있대. 크기도 아주 난리 난 못생긴 감자지만 잘 씻어서 물에 푹 삶아주고 앞뒤를 노릇하게 구워주니 맛이 예술이야.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따끈할 때 한입 앙 베어 물면 포슬포슬하게 입 안에서 퍼지는 그 식감이 완벽했어. 아마 밭 중에 가장 힘들에 갈아낸 감자밭에서 흘린 땀방울이 msg로 첨가되어 더 맛있게 느꼈을 거야.
추신. 감자 다음 차례는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야! 설렌다. 고구마야 잘 자고 열심히 열려다오. 내 친구도 잘 자고 열심히 자라다오. 궁디팡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