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 편지함

책 이사

by 선들 seondeul

0628


안녕 친구야.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것만 같아. 수백 마리의 날벌레부터 손가락만 한 거미까지, 온갖 벌레에 시달리는 시골 라이프를 견뎌내는 중이야. 몰려드는 벌레 덕분에 아무리 물청소를 해도 다음날이면 간밤의 혈투로 시체가 뒤덮인 방충망으로 돌아오게 돼. 지금 이 순간에도 아빠가 철물점에서 사 온 전기 파리채를 막 휘두르며 편지를 쓰고 있어. 무언가를 죽인다는 죄책감도 잠시, 벌레 물린 자국으로 얼룩덜룩해진 얼굴과 윙 소리에 푸드덕 깨어나는 밤이 반복되다 보면, 바위에서 검을 뽑아 드는 마음으로 파리채를 잡아들게 되더라구. 비장한 용사의 마음으로 허공을 휘두르다 보면 잠자던 엄마의 코 고는 소리도 멈추게 하는 벼락 맞은 소리가 나. 그럼 약 0.5%의 숙면이 보장되는 셈이야. 나머지는 차차 처리해 가야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귀뚜라미와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여기에 살게 됨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거야. 또 다른 행복한 이유 중 하나는 창고에 방치되었던 수백 권의 책들을 나란히 정리해 둘 수 있기 때문이야.


으아 벌레가 너무 많아서 스탠드를 켜 둘 수가 없다 세상에.

아침에 다시 쓸게!



*


어제 밤에는 방충망이 이상하게 덜 닫혀있어서 집 안이 아주 벌레 파티였어. 난리란 난리는 다 피운 후에 간신히 잠에 들었는데 일어나니 생각보다 훨씬 끔찍한 상황이었더라구. 전기 파리채를 마구 휘둘러서 싹 퇴치한 후에 이제야 비로소 쾌적해. 마음의 안정을 위해 얼린 요구르트를 하나 먹고 이렇게 다시 편지를 써.


책 이사


맞아, 어제는 이사하던 얘기를 하고 싶었었어.

이사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다시 그 일을 떠올리게 된 건 우리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이 한 말 덕분이야. 집을 구경 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너무 깔끔하다는 거야.


믿을 수 없는 게 우리는 이사를 하며 수많은 짐에 차라리 텐트를 치고 자고 싶을 만큼 고생했는데. 창고 한 칸을 가득 채운, 키보다 높이 쌓여있는 박스들을 보며 정말 이 많은 짐들은 우릴 따라다니며 왜 이렇게 우릴 괴롭힐까. 너네도 참 괴롭겠다. 항상 짐에 치이고 또 후회하고 버리지 못하는 스스로에 자괴감이 들고 했던 우리 가족이었는데. 보는 사람마다 깔끔하고 뭐가 없다고 너무 감탄하는 거야. 게다가 청소와 정리에도 소질이 없는 세 사람인데 말이야. 토론 끝에, 엄마의 공방 짐이 가장 많았고, 집에는 큰 가구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어.


귀촌을 계획하며 이곳으로 내려오기까지 한 사오 년간 정말 많은 이사를 다녔거든. 나중에는 두 시간이면 방 한 칸을 박스에 욱여넣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질 정도로. 세 사람이 세 집에서 살며, 함께 살던 아파트도 우리가 살았다가 엄마 혼자 살았다가 다른 사람이 살았다가 다시 엄마가 살았다가 팔기도 하고, 각자의 집도 수많은 이사를 다녀야 했어.


그러다 이사 때마다 귀촌 후에 살 집에 넣을 짐은 아예 비닐하우스 하나에 따로 가득 넣어두게 되었지. 지금 당장 써야만 하는 것, 그리고 없어도 괜찮지만 버릴 순 없는 것들을 구분해서. 생각보다 어렵고 나를 아주 힘든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하는 그런 작업들의 연속이었어. 하지만 계속 이사를 다니고 선택을 반복하다 보니 아무리 버리지 못하는 우리라 해도 자연스럽게(사실 이삿짐을 나르며 엄마의 잔소리와 콤보로 팔이 빠지고 싶지 않다면) 많이 버리게 되었어. 그리고 큰 가구를 가지고 있을 수 없었지.


이사를 온 후에 거실장과 테이블은 나와 아빠가 만들고, 쓰던 가구는 큰 맘먹고 맞춘 책장과 어릴 때부터 쓰던 나의 책상, 엄마 아빠가 신혼 때부터 쓰던 서랍장. 이것뿐이야. 그렇기 때문에 새 집과 창고에 있었던 수많은 짐의 규모에 맞추어 옷장부터 침대, 거울, 그릇장까지 다 사야 했어.


특히 나는 큰 가구 짐보다 버리지 못하는 노트와 종이, 작은 물건들이 정~말로 많아. 다음에 꼭 이 종이가 필요할 것 같고, 지금 이걸 버려서 나중에 보고 싶을 때 없으면 왜 이렇게 그 후회에 죽을 것만 같은지. 원래 작은 짐들이 더 챙기기 힘들고 나중에 정리해 두기도 정말 성가신 것 알지? 지금은 보이지 않는 곳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어서 짐이 없어 보였나 봐.


우여곡절 이사를 다니며 치이는 짐에 혀를 내두르고 한숨을 꺼지게 쉬길 반복하다가 드디어 마지막 이사. 이를 악 물고 이제 이번이 마지막 이사다 하며 새로운 집에 창고에 넣어두었던 짐을 싣고 오는 날이었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5일 정도로 시간을 잡았어. 창고가 차로 왔다 거릴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있어서 세 식구의 힘으로 천천히 하나하나 나르기로 마음먹었지. 간신히 굴러가기만 해서 저 멀리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어 아빠다!” 알아 채도록 하는 낡은 트럭과 엄마의 차로 하루에도 몇 번씩 짐을 빼고 싣고 옮겨서 내려놓기를 며칠.


털커덕 털커덕 부릉... 땀 땀...


그중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책 이사였어.

노끈으로 감긴 책 묶음이 아빠 가게의 한 쪽 창고에 그득 쌓여있었는데, 아빠가 조금씩 날라볼까, 하다가 문을 열자마자 눈앞까지 차있는 책을 보고 1초 만에 문을 다시 닫은, 그런 문을 다시 열만큼의 엄두가 필요한 일이었어. 겨우겨우 마음을 먹고 딱 하루 안에 책 이사를 하기로 정한 다음 전날부터 컨디션 관리를 하며 책 이사는 비장하게 시작되었어.


닫자 닫아.


엄마가 가지고 있던 엄마의 작업용 책들은 미리 날라둔 터에 집으로 들어갈 책들만 옮기면 되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던지. 양 손에 노끈으로 감긴 책 묶음을 들고 창고부터 트럭까지 왔다 갔다 하는 데 벌써 죽고 싶은 거야. 책이고 뭐고 읽을지조차 모르는 이 책들을 당장 카펫처럼 깔고 즈려 밟으며 빈손으로 걸어가고 싶었지.


부들부들


이 기분에 대해, 저번에 이야기했던 그 책 있지?

김연수 작가도 가장 사랑하는 것이 가장 힘들게 한다며, 이렇게 써놓았어.



말하지 않았던가? 서가에 꽂힌 책은 바닥에 쌓아봐야 진가가 드러난다고. 서가에 꽂힌 책들은 이야기와 사상과 문장을 수록한 텍스트지만, 짐을 싸기 위해 바닥에 쌓으면 일순간 무겁기 짝이 없는 종이뭉치로 바뀐다. 하지만 집에 가서 서가에 꽂으면 다시 텍스트가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나는 부득불 그 종이뭉치를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 _<소설가의 일>


책을 쓰는 작가라 할지라도, 책을 이사시킬 때의 마음은 다를 바 없구나. 느꼈지. 언제나 방 한 칸은 서재로 할애하며, 책장 끝까지 빡빡하게 들어선 책들을 너무도 사랑했던 우리 가족이지만, 정말이지. 우릴 가장 힘들게 했어. 어찌하여 종이 뭉치들은 트럭을 타고 책장 앞에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안착하게 되었어. 책을 나른 그 날은 세 사람 모두 앓아누웠고, 며칠간은 그 더미에 눈길도 주기 싫더라고. 한참 뒤에 현관을 도저히 쓸 수 없는 꽉 막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두 팔 걷고 나서게 되었어. 정리를 하려고 묶여있던 끈을 끊어내고 하나씩 어루만지다 보니, 한 권에 얽힌 생각들이 줄줄이 몰려들면서, 날 힘들게 한 종이뭉치에서, 그래도 반갑고 소중한 보물인 텍스트로 돌아왔지.


차마 한 화면에 담기지 않는 참혹함


한때 사서가 되고 싶었던 열정을 불태우며 나름 책을 나누어 책장에 꽂길 꼬박 하루. 아침에 시작했는데 해가 질쯤이 되어서야 땀과 먼지에 뒤범벅이 된 채로 깔끔한 책장을 얻을 수 있었지. 처음 책장을 샀을 때보다 책이 늘어서 자리가 부족해가지구 정리가 훨씬 힘들었어.


책을 두 줄로 꽂을 수밖에 없을 때의 그 슬픔. 자리가 없어서 눕혀서 꽂을 수밖에 없을 때의 그 안타까움. 마음 같아서는 하나하나 아주 잘 보이게 촤르륵 늘어놓고 싶은데.




한 번도 우리 집의 책을 세 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대충 헤아려보니 1000권 정도가 되더라고. 어릴 적부터 이사를 다닐 때마다 아파트 도서관에, 주변 지인들에게 책을 정말 많이 나눠주고 다녔는데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이 책들을 한 권 한 권 보다 보니 특별한 인연으로 느껴지는 거야.


그중에서도 다시 읽을 일 없을 것 같은 책들을 냉정하게(전기 파리채를 휘두를 때의 마음으로) 골라내고, 낡아서 읽을 수 없는 책들을 분류해내니, 200권 정도가 나왔어. 박스로 버리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또 마침 그 도서관에서 헌책을 모은다고 해서 캐리어에 잔뜩 싣고 다녀오기도 했지.


버리고 또 채우며 완성된 이 집의 책장 앞은, 내가 우리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야. 노란 불빛 아래 정리된 추억들을 훑다 보면 그 책을 처음 넘겼을 때의 그 기분들, 그 생각들이 두둥실 떠오르거든. 책 이사를 하고, 한동안은 내가 사랑하지만 잊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천천히 곱씹느냐고 정신이 없었어. 보고 싶었던 얼굴들을 되새겨보는 그 행복함에 밤을 새우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해 뜨는 새벽녘에 마당의 풀을 뽑기도 했지.




힘들었던 이사와 행복한 정리 끝에 완성된 우리 집 책꽂이를 너에게 천천히 소개하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뽑아다가 잔뜩 쌓아놓고 뒹굴뒹굴 말없이 책을 읽다가, 몇 시간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 아, 생각만으로도 발끝부터 쭈욱 행복해진다. 이 때문에 결국, 사랑하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기꺼이 또 사랑할 준비를 하게 되는걸 거야.


보고 싶은 친구야, 이렇게 멀리서 쓰이는 작은 글씨로나마 나의 일상이 전해진다면, 그래서 그 입가에 손톱만 한 웃음이 걸린다면, 이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 만약 이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웃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웃어보기! 스마일~ 아이고 예쁘다!


나는 이만, 너의 지친 입꼬리를 따뜻하게 끌어올려 줄 다른 이야기들을 건지러 가 볼게!

한 바가지 건져오마. 곧 다시 편지할게!


추신. 며칠 전에 엄마가, 그리고 이모가 모았던 시집들에 내가 모으던 시집들을 합쳤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시집들이 너무 예뻐서 한없이 들여다보게 된다. 88년에 밑줄 그어진 종이를 넘긴다는 건, 백 년 후의 책을 미리 읽게 되는 일만큼이나 근사해. 놀러 오면 몇 권 선물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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