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일지_사진편
라이카 미니/대부분 코닥 컬러플러스 200
지난겨울부터 찍은 나무 사진만 모았습니다.
방 문 앞에 서있는 수양 자작나무. 올 해로 여기 심긴 지 3살이 되었다. 집의 그 어떤 존재보다 가장 많이 마주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창밖으로 갓 돋아난 싹들이 온몸을 다해 휘날리고 있다.
원래는 세 그루를 심었으나 한 그루만 살아남았고, 지금에서야 잘 된 일이다. 너무 붙여 심어 서로 숨도 쉬지 못했을 테다. 해를 반쯤 가린 자리지만 가는 가지들은 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 향한다.
앙상할 땐 그 자체로 서늘하고, 푸르를 땐 위로가 된다. 나이가 들며 몸통이 점점 하얘지고 있다.
올 겨울엔 눈보다 비가 많이 왔다. 비가 그치면 물방울이 끝에 고여 똑똑 떨어진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정화된다. 반셔터를 여러 번 누르면 자동카메라로도 담겨준다.
작년 여름의 수양 자작나무
겨울의 앵두나무는 어쩐지 용맹해 보인다.
가지의 뻗음새가 손바닥을 쫙 핀 것과 닮아서 그런가. 물가에 앵두나무를 심는 게 소원이었던 엄마 덕에 마당을 꾸민 첫 해에 왔다.
긴 겨울이 언제 끝나나 목이 빠질 무렵 가장 먼저 밥풀 같은 꽃봉오리를 밀고 나오는 게 바로 이 앵두나무다. 지금은 꽃이 다 지고 새끼손톱의 반 만한 잎사귀가 나오기 시작한다. 고양이들이 발톱 정리하느냐고 다 까진 몸통, 거지주머니병, 아빠의 과감한 가지치기 등등...으로 꽤 몸살을 앓고 있지만 올 겨울도 잘 버텨주었다.
어릴 적 아파트에 키보다 큰 앵두나무가 있었다. 눈여겨 놨다 반팔 반바지를 입는 계절이 오면 하굣길에 한 움큼씩 따서 경비실 수돗가에서 씻어먹곤 했다. 그림 그리러 오는 애기들도 앵두가 열리는 계절이면 요리조리 남은 앵두를 입에 넣기 바쁘다. 땅에 뱉은 씨는 자라 분양도 된다. 겨우내 언제 앵두가 열리냐며 열 번쯤 물어본다. 아직 눈이 온단다... 이제 기다릴 날보다 열릴 날이 더 짧다. 쏜 화살 같다.
일 년을 지켜본 결과 죽은 듯 한 배롱나무. 우리 집 기후와 안 맞는지 다른 배롱도 다 맥을 못 추고 실려나갔다. 올봄에 뽑고 홍가시나무를 심었다. 죽은 나문데 뿌리가 어찌나 깊던지 삽질을 하다 바람 부는 날 땀에 옷이 다 젖었다. 후벼내는 내 모습에 잔인함을 느꼈다. 그 김에 주변의 잔디도 싹 뜯어냈는데, 잔디가 정말... 정말 최악이다. 차라리 나무 뽑기가 낫다. 함부로 심지 마세요, 잔디는 좀비다.
마당에서 스스로 자라나 자리 잡은 아기 배롱. 가끔 의문을 모르겠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산책 길의 봄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