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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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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Apr 27. 2020

겨울나무 봄나무

귀촌일지_사진편

라이카 미니/대부분 코닥 컬러플러스 200

지난겨울부터 찍은 나무 사진만 모았습니다.




방 문 앞에 서있는 수양 자작나무. 올 해로 여기 심긴 지 3살이 되었다. 집의 그 어떤 존재보다 가장 많이 마주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창밖으로 갓 돋아난 싹들이 온몸을 다해 휘날리고 있다. 


원래는 세 그루를 심었으나 한 그루만 살아남았고, 지금에서야 잘 된 일이다. 너무 붙여 심어 서로 숨도 쉬지 못했을 테다. 해를 반쯤 가린 자리지만 가는 가지들은 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 향한다. 


앙상할 땐 그 자체로 서늘하고, 푸르를 땐 위로가 된다. 나이가 들며 몸통이 점점 하얘지고 있다. 

올 겨울엔 눈보다 비가 많이 왔다. 비가 그치면 물방울이 끝에 고여 똑똑 떨어진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정화된다. 반셔터를 여러 번 누르면 자동카메라로도 담겨준다. 








작년 여름의 수양 자작나무

가장 좋아하는 사진. 수양 자작나무의 인생 샷이다. 지금 보니 몸통이 어리다.
여름엔 그늘이 져서 고양이들이 번갈아가며 누워있다. 화분을 두고 풍선덩굴과 천일홍을 심었다.


그늘도 하늘하늘



지난가을에 그린 멜란포디움과 잎을 떨구는 수양 자작나무. 서랍의 손잡이로 잘 쓰이고 있다.








겨울의 앵두나무는 어쩐지 용맹해 보인다. 

가지의 뻗음새가 손바닥을 쫙 핀 것과 닮아서 그런가. 물가에 앵두나무를 심는 게 소원이었던 엄마 덕에 마당을 꾸민 첫 해에 왔다. 

긴 겨울이 언제 끝나나 목이 빠질 무렵 가장 먼저 밥풀 같은 꽃봉오리를 밀고 나오는 게 바로 이 앵두나무다. 지금은 꽃이 다 지고 새끼손톱의 반 만한 잎사귀가 나오기 시작한다. 고양이들이 발톱 정리하느냐고 다 까진 몸통, 거지주머니병, 아빠의 과감한 가지치기 등등...으로 꽤 몸살을 앓고 있지만 올 겨울도 잘 버텨주었다. 




작년에 핸드폰으로 남겨둔 사진. 수확한 앵두와 분양 간 앵두 싹


어릴 적 아파트에 키보다 큰 앵두나무가 있었다. 눈여겨 놨다 반팔 반바지를 입는 계절이 오면 하굣길에 한 움큼씩 따서 경비실 수돗가에서 씻어먹곤 했다. 그림 그리러 오는 애기들도 앵두가 열리는 계절이면 요리조리 남은 앵두를 입에 넣기 바쁘다. 땅에 뱉은 씨는 자라 분양도 된다.  겨우내 언제 앵두가 열리냐며 열 번쯤 물어본다. 아직 눈이 온단다... 이제 기다릴 날보다 열릴 날이 더 짧다. 쏜 화살 같다.


 



일 년을 지켜본 결과 죽은 듯 한 배롱나무. 우리 집 기후와 안 맞는지 다른 배롱도 다 맥을 못 추고 실려나갔다. 올봄에 뽑고 홍가시나무를 심었다. 죽은 나문데 뿌리가 어찌나 깊던지 삽질을 하다 바람 부는 날 땀에 옷이 다 젖었다. 후벼내는 내 모습에 잔인함을 느꼈다. 그 김에 주변의 잔디도 싹 뜯어냈는데, 잔디가 정말... 정말 최악이다. 차라리 나무 뽑기가 낫다. 함부로 심지 마세요, 잔디는 좀비다.  


마당에서 스스로 자라나 자리 잡은 아기 배롱. 가끔 의문을 모르겠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예시) 재작년 8월, 정신 차려보니 갑자기 열린 수박. 어디서 와서 자랐지 토론 중인 엄마아빠의 모습.  






눈 오던 날 과수원
겨우 내 실내를 지킨 허접한 트리 두 개. 마음과 결과는 항상 다르다.





산책 길의 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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