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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지

귀촌일지

사진편_늦겨울부터 봄까지_필름

by 선들 seondeul

2월에서 4월 사이에 라이카 미니로 찍음



~ 3월 후지 200_2롤 (1).JPG 8월인 지금엔 현실감이 없는 눈 내린 마당부터
~ 7월 22일 (5).JPG 눈 같은 꽃이 내린 여름까지



게을러도 너무 게을렀다. 시간이 머리 위를 날라, 벌써 긴 겨울이 쫓아온다. 방학이라 여러 특강들을 해내고, 난생처음 긴 운전에 앓아눕기도 했다. 분명 분주하게 무언가를 만들어냈는데, 어딘가 모르게 영혼의 바람이 빠져나가고 있다. 한두 장씩 쓰던 일기도 소홀했고, 카메라도 좀 방치했다. 이렇게 오래 책을 안 본 적이 있었나.


곧 가을걷이로 바쁠 때다. 고추도 말리고 있으니 들고 방앗간에 가야 할 테고, 산에서 밤과 은행도 주워오면 보관해두어야 한다. 사랑하는 계절을 맞아, 갉힌 영혼을 자분자분 메꿔보려 한다. 서랍에 넣어두었던 필름을 한꺼번에 받아보았다. 거기에 내 겨울부터 여름이 다 있었다.


다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고...




~ 3월 후지 200_2롤 (6).JPG 아득한 2월. 눈사람이 있어도 괜찮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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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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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몇 달 전인데, 너무 옛날 같고 아득하다. 겨울 냄새가 잘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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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발. 사람 발. 겨울이라 쉬고 있는 장화들. 신고 나갈 때 편하게 양말을 안에 넣어둔다.




~ 3월 후지 200_2롤 (9).JPG 딸기 꽃을 한 송이씩 넣어 팔아서 홀린 듯이 샀다. 포근한 햇볕에서 같이 일광욕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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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풀려서 볕은 따뜻하지만 밖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산의 바닥은 아직 바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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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1일 쯤 후지200_3롤 (13).JPG

집 앞 산책길의 2월과 4월. 온통 갈색빛이지만 잘 찾아보면 작고 붉은 열매가 있다. 황량한 숲에서 견디고 있는 것은 위로가 된다. 두 달 새 바닥이 푸르러지고 밥풀 같은 꽃들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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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2일 (13).JPG

엄마 아빠. 왼쪽은 2월, 오른쪽은 5월. 5월의 산책길은 바닥이 질어서 꼭 장화를 신어야 한다. 뱀도 나올 수 있어서 꼭 나뭇가지를 들고 바닥을 치며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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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7일 쯤 프로이미지100 (13).JPG

겨울 가지와 봄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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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와 봄 나무. 겨울나무는 뭐가 궁금한지 고개를 갸우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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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나갈 쯤엔 쪽파를 심는다. 동네 한 바퀴 구경하다가 줄 맞춰 심어놓은 쪽파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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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7일 쯤 프로이미지100 (11).JPG

한 달 새 통통해진 애들. 비닐로 씌워두고 심어두지 않은 곳에서는 냉이가 삐죽 올라왔다. 땅은 두면 뭐라도 난다. 지금 보니 너무 맛있겠다 냉이... 고기와 함께 먹으면 긴 겨울에서 깨어날 힘이 난다.






4월. 완연한 봄이다. 꽃을 쫓으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비가 올까 봐 조마조마하다가 다행히 인사를 나눴다. 벚꽃이 피면 의식처럼 무심천엘 간다. 대학생인 엄마도, 고등학생인 아빠도 걸었던 길을 걷는다. 엄마 아빠는 고향이지만, 나는 처음 살아보는 도시이다. 그러니 더 잘 보이는데, 청주는 만사가 애매하다. 위치도 인구도 말투도 모든 게 애매하다. 아무 맛도 안나는 슴슴한 동치미 같다. 간이 안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얕은 여행에도 앓는 체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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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7일 쯤 프로이미지100 (8).JPG






~ 4월 11일 쯤 후지200_3롤 (1-1).JPG
~ 4월 11일 쯤 후지200_3롤 (1).JPG

무심천 벚꽃은 옆으로 늘어지는 나무라면, 조치원은 위로 크다. 따로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품종이 다른 건지, 꽃도 좀 작다. 차를 타고 구경하면 끝없이 소리 지를 수 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 너머에 여기 조치원 벚꽃길이 있는데, 멀리 서는 수평선으로 보인다. 낙엽이 지면 그 선이 타오른다. 겨울보다 먼저 내려앉은 노을 같다. 발이 시린 걸 보니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IMG_2422.JPG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앵두꽃_귀촌일지 사진편 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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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나무가 올해도 거지주머니병에 걸렸다. 애초에 다 따버렸더니 오히려 큰 열매가 많이 열렸다. 항상 다 나쁜 건 없다. 그림 그리러 오는 애기들이 올 때마다 나무 앞에 서서 서너 개씩 따먹었다. 많은 입에 골고루 들어가 기뻤다. 맨 가지였을 때부터 언제 앵두가 달리냐며 조르고, 조그만 꽃이 핀 가지에 코를 묻으며 열매를 기다렸는데, 때를 놓쳐 못 먹은 친구도 있다. 어쩔까, 지는 건 금방이네.



~ 6월 22일 (13).JPG 5월에 딴 앵두






IMG_2467.JPG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복숭아 꽃_귀촌일지 사진편 봄 이야기
~ 4월 11일 쯤 후지200_3롤 (2).JPG
~ 4월 7일 쯤 프로이미지100 (10).JPG






IMG_2206.JPG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목련 꽃_귀촌일지 사진편 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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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1일 쯤 후지200_3롤 (12).JPG

꽃잎을 보고 알새우칩 먹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려야만 비로소 따뜻한 날이다. 목련이 필 때는 햇살도 아삭아삭하니까. 마른 나뭇가지에 댕글 하게 달려있는 목련꽃은 한복의 치마와 닮았다. 작약도 그렇고, 큰 꽃은 눈에 잘 띄지만 그만큼 빨리 진다. 청초하던 꽃이 누렇게 변하다가 바닥에 떨어지는 게 애처롭다.


사진 속 목련이 달겨드는 듯하다. 나에게 봄은 제발 무사히 넘어갔으면 하는 계절이었다. 밖은 복작하고 모든 게 깨어나는데,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오면 어딘가가 할퀴는 마음. 기억이 희미한 걸 보니 올해는 무사히 흘러갔나 보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성숙해지길 기다렸는데 겪어보니 좀 별로다. 노력한 과거의 나에겐 미안하지만 이렇게 와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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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7일 쯤 프로이미지100 (1).JPG
~ 4월 11일 쯤 후지200_3롤 (3).JPG






그리고, 서울 한 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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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7일 쯤 코닥200_2롤 (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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