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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Jun 03. 2021

2021 절반 지나다

1월부터 5월까지의 일기


2021.1.11.월 /1


새해의 일기를 뒤늦게 쓴다. 벌써 새해 다짐을 세 개째 성실히 이행 중이다. 


1. 운동하고 

2. 잘 먹고 돌보고 

3. 기록하기


작은 것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이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봤을 때 치열한 고민과 실행, 잃지 않은 기쁨으로 뿌듯할 수 있길!





2021.1.12.화 /2


아침에 일어나니 얇은 담요만큼의 눈이 와있었다. 미적지근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제대로 겨울이다. 이런 한파도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던데.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해낼 뿐이다. 해가 넘어가는 오후가 되니 다시 눈이 온다. 씩씩하게 일상적인 고난들을 이겨내고 웃으며 일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2021.1.27.수 /5


낮에 쏟아지는 졸음, 산책할 마음, 녹진하게 풀어지는 논 가장자리를 보며 겨울의 끝을 실감한다. 다시 눈이 온다는데, 짧은 겨울 햇살이 스쳐간다.


뭔가 새롭게 하고 싶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이 귀하다. 이런 걸 잃어버리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지.





2021.1.30.토 /6


해야 할 일이 있을 땐 미루지 말고 그냥 해버리는 게 가장 정답이라는 걸 지난밤 더 느꼈다. 


문제가 될 땐 -> 해결하자. 


간단한 사실을 잊어 많이 돌아가는 실수를 줄여야 덜 괴로운 인간이 될 테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2021.2.18.목 /10


4년 전 책상을 책임졌던 말처럼, 봄은 봄이고자 하는 자에게 이미 봄이다.





2021.2.23.화 /12


요 며칠 틈틈이 그리는 그림에 빠져서 몇 번씩 스케치북을 뒤적거린다. 정말 재밌어! 아직도 재밌고 배울 게 끝이 없다. 이렇게 오랜 기간 흥미로울 줄이야. 지금도 빨리 일기를 쓰고 조금 생긴 시간에 그림을 그리려 한다. 간단하게 완성하는 그림들도 좋다.


날씨가 변덕스럽다. 땅이 녹아 질척해져서 겨울엔 잘만 다니던 길도 바퀴가 빠진다.





<박래현, 삼중 통역사>

2021.2.26.금 /13


시간이 빨라서 곧 3월이다. 한해의 12달 중 2개가 이렇게 녹았다. 타샤 튜더의 30년 걸린 정원처럼. 지금 시작해야 30년이 하루빨리 오는 것! 


따뜻한 곳에서 살고 싶다.






화분 심는 날

2021.3.1.월 /14


아침에 비 오는 소리에 잠깐 깼다. 땅과 붙어살면 이런 일이 잦다. 문 열고 나갔더니 선물처럼 봄 향기가 한 아름! 코가 시린 공기가 아닌 축축하고 미지근해서 뭐라도 쑥쑥 클 것만 같은 냄새다. 긴 겨울의 끝에, 3월의 시작에 이런 귀한 향을 건네 받는다. 이런 날에 따뜻한 커피! 호로록 마시며 음악을 틀어두고 일기를 쓴다.





2021.3.2.화 /15


스텔라 장의 새 앨범을 뒤늦게 듣고 귀가 가려웠다. 아주 크게 틀어두고 청소를 했다. 오늘 같은 날씨에 퍼즐처럼 들어맞는 노래. 새롭게 알게 되는 노래들이 좋을 때 행복을 느낀다. 정말 힘들 땐 음악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게 들어올 자리가 없다. 며칠 전에 fix you 가사를 다시 읽고 코가 시큰했다. 그런 완전한 마음. 줄 수도 받을 수도 있을까.


버스를 타기 위해 매일 통과하는 학교가 비로소 북적인다. 봄의 시작에 우두커니. 밝고 생동감 있는 공기 사이를 부유하게 되는 날이 돌아왔다. 씩씩하게 올봄도 잘 이겨내길. 단단하게 정면 돌파!

 

fix you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 And ignite your bones





2021.3.5.금 /16


풀린 날씨에 과수원과 근처 밭들이 또 들썩인다. 웅크렸던 것들이 몸을 펴며 나는 소란에 익숙해지기. 문을 열어, 미지근한 공기가 훅 들어올 때면, 벚꽃 나무와 떨리던 새 학기, 이런 게 생각난다.





친구들이 그려준 나

2021.3.10.수 /17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얼굴 그리기 연습을 하고 있다. 잘 안되다가도 재미있어서 멈출 수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에 한두 시간씩 연습! 그림 그리러 온 친구가 요즘 취미가 얼굴 그리기라고 해서 한참 이야기를 하며 공감했다.


막상 내가 가르쳐줄 때는 ‘괜찮아요, 다 고칠 수 있어요.’ ‘똑같이 그리는 데 집착하지 말고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세요.’라고 하면서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잘 못하는 것을 직시하고 연습해나가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그리고 반복하니 느는 모습이 신기하다. 매일 해온 일임에도 나의 경우가 되니 생소하다. 다선 학생! 잘하고 있어요, 괜찮아요.





2021.3.17.수 /18


집으로 걸어오는 길은 혼자만의 것. 조용하게 그날을 곱씹으며 나의 장소로 향한다. 걷기에 볼 수 있는 작은 꽃들, 새싹. 오늘은 모퉁이를 돌자마자 흔들 불어온 바람에 매화꽃 향기가 실려 있었다. 폐 속 깊이까지 행복! 그 기운으로 또 하루를 보낸다. 연둣빛으로 차오른 가지에 밥풀처럼 앉은 매화. 아무 곳에서도 작은 얼굴을 빛내는 봄까치꽃. 오므린 손바닥 같이 피기 직전의 목련. 일기를 쓰는 지금도 문 너머 반쯤 핀 목련나무가 멀리서 보인다. 경운기 소리, 가끔 비행기, 스텔라 장의 노래로 늦은 일과를 연다. 오늘도 무사히!





2021.3.19.금 /19


오늘 아침은 마요가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는 소식으로 시작했다. 아파서 수술하고 약도 먹었지만, 결국 짧은 생을 다했다. 자기가 태어났던 창고에서 죽었다. 해 잘 드는 곳에 밤에 아빠가 묻어준다 했다. 슬프지 않다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눈물이 난다. 마침 나오는 노래는 9와 숫자들의 작은 마음. 살아있음과 그렇지 않음의 경계가 이토록 얇아 잊고 살지만 베어버리고 마는, 그런 날이다.


떠난 이는 떠난 대로 두고, 운동을 다녀오고, 밥을 먹고, 일을 하는 의연한 일상에 어른이 되었음을 느낀다.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생을 다해 살아가기. 식물들처럼, 그저 할 일을 해나갈 뿐이다.






2021.3.22.월 /20


도시에 다녀올 때마다 남아있는 세속적 욕망을 깨닫는다. 없어진 게 아니라 저 밑에 있어 작아졌던 걸 확인한다. 이래서 출가를 하나.... 그래서 떠난 사람이 이기적인 건가... 이런 생각들을 빙빙 물에 씻어내고 다시 일주일의 사이클을 돌린다. 생각나무와 산수유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다음 주엔 누가 오는지... 다시.






2021.3.30.화 / 21


“저는 할미꽃을 좋아해요. 고양이 털을 닮았거든요.”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 답례로 고양이 그림을!






2021.4.6.화 /22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하기!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단 생각으로 베풀기. 맑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오늘도 부스스 일어나 그림 그렸다.



 


2021.4.8.목 /23


뒤에서 분 바람 덕에 벚꽃 잎이 나를 앞지른다. 한 걸음 빠른 계절에 마음이 풀어진다. 겨우내 눈인사하던 나무는 기다림 끝에 꽃이 핀다. 올해는 꼭 이름을 알아내야지.


집 오는 길 논의 비탈이 보랏빛이다. 온통 내려앉은 제비꽃. 싸리나무, 꽃다지... 박태기나무의 꽃은 우리나라에 없을 것만 같은 자줏빛, 그리고 새로 싹이 나는 수양단풍나무의 연둣빛.   


터미널 앞의 작은 땅엔 흰 제비꽃과 민들레가 가득하다. 보도 블록 사이 몇 알의 흙에 끼어서 핀다. 그런 걸 보며 나를 가늠한다.





2021.4.12.월 /memo


주말 등산 소감. 


1. 한 치 앞만 보자. 

2.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3. 내려올 때가 두 배로 빠르고 힘들다. 

4. 하지만 올라가야 내려라도 올 수 있다. 


이상 끝. 





2021.4.21.수 /26


반팔을 입어도 땀이 나는 그런 날씨다. 오전엔 이 날씨가 아까워 산에 다녀왔다. 잘 먹고 잘 자는 날의 연속이다. 괜찮은 디카페인 원두를 찾은 탓도 있다. 샤스타데이지를 포함해 온갖 꽃들이 정원의 이곳저곳에서 대기 중이다. 해가 뜨거워야 꽃이 필 생각을 한다. 비어있던 수양 자작나무 가지가 어느새 자라 약하게 바삭거리는 소리를 낸다. 


쑥개떡을 먹고, 꽃가루에 익숙해지고. 다시 잡초를 뽑는 그런 4월. 져가서 데려와 꽃아 둔 배추꽃 한 줄기가 힘을 주는 토템! 그림 그리러 오는 학생에게 배추꽃과 유채꽃은 매우 가까운 친척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어제는 아빠가 본 머리에 깃 달린 새가 후투티라는 멋진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정말 늠름하고 귀엽게 생겼다. 후후 우는 오디새라 후투티라는 순우리말로 불린다. 나도 제발 보고 싶다 후투티야. 산 비둘기만 쉬지 않고 우는 오후 세시의 일기 마침. 






2021.4.28.수 /27


건강하게 챙겨 먹고, 운동하고, 일하고, 잘 잔다. 더 바랄 게 없다. 아슬하지만 점점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곁들여지는 좋아하는 책, 영상, 음악 그리고 슬픔도 기쁨도 주는 고양이들까지. 결론적으로 오늘도 평화롭다!






2021.4.30.금 /28


이번 주에는 그림 그리러 온 친구가 큰일이라고 빨리 금요일이 왔으면 좋겠다며 비명을 질렀다. 무슨 날이냐 물었더니, 4월의 마지막 날이라 중요하다고 했다. 요란에 비해 싱겁지만 놀랄만하다. 왜냐하면 내일이 5월이니까. 믿기지 않는다. 


어제는 배가 아프고 오늘은 콧물이 난다. 봄이면 나약해지는 개미 할미... 여하튼 남은 수업을 해야 한다! 기운 내시길...


ps. 저녁마다 드라마를 봐서 그런가, 요새는 계속 앤의 꿈을 꾼다. 꿈속에서의 모험. 지쳐서 일어나게 되는 아이러니. 






2021.5.11.화 /29


지금 밖은 바람이 많이 분다. 바람결을 따라 아카시아 꽃잎과 찔레 꽃잎이 쓸려간다. 여기에 샤스타데이지까지! 5월은 역시 흰 꽃의 달. 





2021.5.20.목 /30


바가 오는 목요일. 커피가 필요해서 일기를 다 쓰자마자 내리려고 한다. 어젠가 그젠가.. 일기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꿈을 꿨다. 곧 유월. 쓰던 다이어리도 끝이 다가와서 바꿔야 할 때다. 새까만 마음처럼 블랙으로 도전! 




2021.5.25. 화 /memo


바람에 휘영청 춤추는 수양 자작나무를 보고, 그림 그리러 온 친구 말하길. '흔들려서 힘들어 보여요, 바람이 멈추니 더 지쳐 보이네요.'





2021.5.28.금 /31


비가 많이 왔던 일주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어젯밤과 오늘 아침은 특히 거센 빗줄기에 방 안이 세차장 속 차 같았다. 


일하는 중간중간 많이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또 보수까지 얻을 수 있다니! 항상 고마움을 표현해야지. 지치는 날도 있지만 그 또한 하루의 톱니라 생각하고 한 칸 한 칸 밟아나가길. 이제는 큰 계획도 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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