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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Jan 07. 2021

결산 스물여덟

노란 방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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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기와 함께하는 결산 스물여덟

12롤의 필름 사진. 49개의 영상을 만들었고, 네 권의 다이어리를 썼다. 61권의 책을 샀고, 84권의 책을 읽었다. 새로이 좋아진 것은 올리브 오일을 넣은 샐러드, 비오는 여름, 수채화, 워터코인, 밖에서 그리는 그림, 운동 후 하는 샤워, 해뜨기 전 아침,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나라 말의 노래. 여전히 좋은 것은 호프 자런, 색연필, 찔레꽃 향기, 깐 생 밤과 구운 밤, 페퍼민트나 박하로 우린 차. 그러고도 남은 이야기들을 네 도막으로 잘라 덧붙인다.      





1월-3월 ±0

4월-6월 휴식

7월-9월 기록

10월-12월 루틴     







1월-3월 ±0



읽고, 쓰고, 그리기. 이것만 지속해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_1.18.토    

오전엔 한의원에 다녀왔다. 어깨+날개뼈가 다시 너무 아프다. 독감 이후로 근육이 빠져서, 체력이 도미노처럼 녹았다. _1.23.화

시간이 솜사탕 같다. 물에 씻어버린 너구리처럼 허망하게 빈 채로 지난 일기장의 빈칸을 넘겼다. 1월의 마지막 날이다. 몸부림과 게으름, 그리고 꿈에 나올 만큼의 압박감의 중간에 서 있다. 복잡한 머릿속은(좋은 쪽으로) 건강한 상태라는 걸 잊지 말고 즐기자. 운동을 조금씩 더 해서 어깨가 많이 좋아졌고, 이것저것 진행 중이다. 보는 눈은 정수리에 달려서 허접한 나를 견디는 게 힘들다. 자괴감과 아이디어 사이를 번지점프 중이다.   _1.30.목     

바람이 많이 부는 일요일이다. 잠을 못 잔 지 일주일 정도 됐다. 세 시 넘어서 겨우, 다섯 시에 잠들곤 한다. _3.15.일

빨리 찾아온 화요일. 어제는 내내 그림 그렸다. 재밌다. 재미 80 + 스트레스 20의 적절한 조화. 꼼지락꼼지락 앉아서. 글 쓸 기운도 나고 그림 그릴 기운도 나는 걸 보니 이제 좀 회복 중인가 보다. 가볍게 툭툭 쳐내는 마음으로 진행 중이다. 다 안 되고 스트레스받을 때는 흘러가게 두면서 한 호흡 뱉는 것도 배워간다. 나는 정말 노래처럼 쉬는 법을 몰랐네... 이것도 배우는 학원이 있나요. 독학으로 극복하려니 오래 걸린다.  _3.17.화


계획했던 일이 틀어졌고, 어깨도 틀어짐. 통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렇게 아팠었나? 하지만 코로나 이후, 집콕의 여파로 온가족이 홈트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로인해 이 시기에는 꾸준히 복근이 있었기 때문에 건강은 플러스 마이너스 영. 설날 때 갑자기 화실 대청소를 했다. 시행착오로 인한 값진 실패(사실 포기가 맞는), 시도 후의 성공도 버무려져서 플러스 마이너스 영의 시기.        







4월-6월 휴식



감성다큐 숨) ‘태어나기를 선택한 존재는 없다. 그저 살아하는 것이다. 식물과 인간 모두.’  _4.15.수

어제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일기를 쓰다 말고 잊어버렸다. 부스스 일어나서 밭에 물 주고 고양이 밥 주고 밥 먹고 치우고. tv보다 출근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것 말고는 더할 나위 없이 평안함.      

<요즘 느낀 행복한 것>

-매운 거 먹고 서늘해지는 기분

-믹스커피 2개+얼음 (간 잘 맞아야 함)

-착착 해쳐나가는 할 일

-버터의 털 냄새=햇볕에 말린 빨래 냄새

-문을 다 열어두고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 때

-굿나잇 인사 후 이불 두 겹에 쌓여 기꺼이 취하는 평화로운 시간    _4.23목

엄마 왈“공기가 덩실덩실 바람이 둥글게 부는”5월이다.   _5.1.금

그림 그리러 온 9살 친구 왈

아... 내 인생. 제 인생은 하늘에서 돌이 비처럼 떨어져요.

그럼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는 피하지.

저는 우산을 쓸 거예요.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출거예요. _5.22. 금


별 다른 일 없이 평화로웠으며 마당이 바빴던 시기. 미리 퇴비도 뿌리고 밭을 갈아두었다가, 5월이면 모종을 심는다. 양귀비와 작약으로 덮인 봄의 정원. 핀 꽃을 보며 하릴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평창에서 이마로 나릴듯한 별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2월부터 이어오던 일이 코로나로 인해 미뤄지고 미뤄지다가 끝났고, 잘 매듭지었다.






7월-9월 기록



어제는 비가 무섭게 왔다. 새벽에 엄마 아빠 깨우고, 버터에게도 의지해보려 했으나 북어만 먹고 튀었다. 암막 커튼 사이로도 번쩍번쩍 가까이에 번개가 있는 듯했다. 비가 총알 같아서 지붕이 그대로 체가 된다 하더라도 놀라지 않고 바로 도망가려 했다. 몇 해 전 폭우로 집 뒤에 논이 터져서 대문 앞까지 물이 찰랑거리던 장면이 반복 재생되었다. 잦아들다 쏟아지고를 반복했는데, 두려워하다 어느 순간 잠에 들었다.      

“매일 똑같다는 말과 잘 지낸다는 말은 양립하기 힘들지”     

습기에 물감이 녹아 젤리가 되어버린 우기지만 컨디션이 괜찮다. 몇 해 전의 나였다면 젖어버린 발에도 깊은 수심을 느끼며 모든 게 하기 싫어지는 기분에 좌절했을 텐데. 어느새 변한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그 무엇보다 뿌듯하다. 드디어 비에 짜증 내지 않는 사람이 되다! 음, 잘 살고 있군.   _7.30.목

템플스테이 했던 절은 신입 스님들이 다 도망간다 했다. 일을 하도 시켜서. 일상이 수행이고, 또 고행이다. 그걸 잘 치러내는 것만으로도 멋진 하루!    _8.3.월

더위, 약한 두통, 비염, 성취감, 평온함이 공존하는 8월 말. 여름의 끝자락이라고 하기 머쓱하게 덥다. 이소라의 노래가 좋은 내가 어른이 된 것만 같다. 아빠가 입에 댈 일 없던 칼국수를 먹게 되거나, 고기를 먹는 엄마 등, 입맛은 변해온단 걸 목격하며 자랐지만, 나의 상황이 되니 낯설다. 덥고 흐느껴서 졸린 노래라 생각했는데. 한 적도 없는 이별을 겪게 하는 절절한 가사, 현악기 같은 목소리 모두 이 여름에 녹아들었다. 역시! 오래 해야 해. 스위치가 눌릴 때까지!    _8.26.수

새벽에 일어나니 좋다. 날씨가 매우 좋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일 년에 몇 안 되는 귀한 공기. 좋다 좋다 말해야 기억에 남는다. 날씨가 좋네요. _ 9.15.화

부슬비가 오는 수요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소란스럽다. 이 또한 복이다.  _9.16.수



고민만 하던 나에게 유튜브 선배 엄마가 용기를 줘서, 유튜브를 시작하다. 찍어뒀던 것들을 모아 이어 붙이고, 영상으로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연초부터 이어오던 일기, 독서기록 등을 의외로 해냈다. 비가 아주 많이 와서 해바라기가 푹푹 쓰러지는 여름이었지만, 콧잔등엔 마스크 자국이 났다. 중요 사건은 버터와 내가 동시에 발이 다쳤다. 생전 처음 살이 찢어져 응급실에서 꿰맸고, 버터도 뒷발을 같이 다쳐서 마취 후 수술을 했고, 앞발은 벌에 쏘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치든 말든, 포도는 익고,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노래지는 벼를 보며 다가오는 가을을 실감했다.      







10월-12월 루틴


    

추석이라는 긴 휴일을 앞둔 날. 평소와 같은 일주일을 닫아본다. 유난히 힘들게 지나간 듯하다. 그냥 지치는 면이 있었다. 언제나 즐거울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매일 날씨가 좋다면 그건 또 사랑스럽지 않으니까. 인생이야 랄라라.  _ 9.29.화

자석으로 애기들이 그려준 그림을 붙어두었는데 없어졌다며 어디 갔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바람에 날아갔다고 전했다. 친구들 왈, ‘바람도 제 그림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_10.16.금

평화로운 금요일. 힘든 순간마다 ‘이렇게 나약해서 순례길을 갈 수 없어’ 암시한다. 먼 미래의 로망 중 하나. 몸통만 한 배낭을 메고 긴 길을 걸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서리가 내리는 아침이 돌아왔다. 줄기가 까매진 꽃을 볼 때마다 뽑는다. 하루아침에 날씨는 바뀌는데, 시간은 왜 이리 빠른지. 좋아하는 노래, 그리려고 펴 둔 흰 종이. 엇결이 없는 괜찮은 하루다.   _10.30.금

오늘 그림 그리러 온 친구가 벽에 걸어둔 그림들을 한참 구경하고 말하길, “선생님 행복하죠?” “응 괜찮지!” “좋아하는 게 일이니까 너무 행복해 보여요.” 대답하고 보니 괜찮은 게 아니라 행복한 거구나  _11.6.금

깜짝하니 12월이다. 무탈했고, 아주아주 잘 지내고 있다. 요즘의 생활에 만족한다. 오전에 운동하고 오후에 일하고 밤에 쉰다. 잘 먹고, 잘 잔다. 균형추가 중앙인 아주 귀한 현상. 오늘 스트레스받는 거 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정말 없어서 없다고 했다. 좀 소름 돋았다. 남극에 간 친구의 친구가 요새는 제일 부럽다. 뭘 먹고 어떻게 지내고 어디서 시간을 보내는지. 전해서라도 붙잡고 묻고 싶을 뿐이다. 창밖으로 파스텔 그림보다 아름답게 해가 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여유가 있음에 감사했다.  _12.4.금



봄에 ‘가을에 하자’며 미뤘던 전시회를 온라인으로 열었다. 수확한 콩과 밤, 고구마가 밥상에 자주 등장하는 나날. 멋진 날씨에 방향모를 감사함이 샘솟았다. 망고, 고수, 김치, 닭고기로 만든 샐러드가 맛있어서 충격 받았다. 연말 준비를 하고 실내로 정원을 들여오고 나니, 올겨울은 별로 안 춥다고 뱉었던 말이 무색하게 하얗게 눈이 온다. 폭설로 한해를 마무리했다.         






       



도전들의 결과는 실패와 포기를 반반 섞여 나쁘지 않은 맛이었고, 몸과 마음 돌보기는 좋은 길로 나아가는 중이다. 2020년은 스스로를 돌보기 위한 울타리를 만든 한 해였다. 이미 와버린 올해에는 하던 것을 잘 하자는 목표가 있다.       


그림, 일기, 독서노트, 영상, 소식지. 기록 루틴들 유지하기.

     주제와 목적이 있는 프로젝트성 그림, 세세한 관찰이 담긴 일기, 깊이 있는 감상의 독서노트, 부지런한 업로드를 목표로 하는 영상, 작은 것도 크게 담은 소식지.

수익구조의 다각화.

      비대면 형태의 비즈니스 실행하기.

새로운 분야에서의 배움.

     자격증으로 이어지면 더 좋겠다.

양질의 독서

     권수와 난이도를 올리고, 좋은 건 반복해서 감상하기.

스스로에게 꾸준한 운동 시간과 적합한 식사 제공하기.

     어르고 달래서 잔잔한 통증류와 체지방률 저하를 목표로 하기.      




결산 스물아홉을 쓸 나에게. 그리하여, 좀 더 나아진 서른의 나를 마주할 수 있길.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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