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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Apr 02. 2020

2020과 1/4 승강장

1/2/3/4월의 일기

허수경 시인의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을 보고 일기를 옮겨본다. 나중에 다시 볼 것만 건져 올림.      





1.8.수

오늘은 아침부터 수업이 많다. 차분하게 수업하니까 좋다. 알고 보니 일 체질, 소름.      




1.18.토

뭐여, 벌써 토요일 실화냐? 조금씩 써두었던 결산 스물일곱과 그리기에 대하여를 드디어 마무리해서 올렸다. 많이 읽고 쓰는 건 절대 해로울 수가 없다. 잔잔한 일상. 수업하는 거 평화롭고 좋다. 내 그림도 많이 그려야지. 읽고, 쓰고, 그리기. 이것만 지속해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1.23.화

오전엔 한의원에 다녀왔다. 어깨+날개뼈가 다시 너무 아프다. 독감 이후로 근육이 빠져서, 체력이 도미노처럼 녹았다.      




1.30.목

시간이 솜사탕 같다. 물에 씻어버린 너구리처럼 허망하게 빈 채로 지난 일기장의 빈칸을 넘겼다. 1월의 마지막 날이다. 몸부림과 게으름, 그리고 꿈에 나올 만큼의 압박감의 중간에 서 있다. 복잡한 머릿속은(좋은 쪽으로) 건강한 상태라는 걸 잊지 말고 즐기자.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설날, 그리고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 대청소, 계획 진행 등등. 태어나 처음 지인의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향냄새와 섞인 음식 냄새를 맡으니 기억이 밀려왔다. 인간은 나약하고 삶은 허무하다. 그 무엇에 집착하며 사는 게 의미 없다. 좋은 거 보고, 밝은 생각 하며 때때로 성찰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큰 걸 꿈꾸되, 실행하되, 거기에 메이지 말아야지. 슬픈 상황에서 울지 않으려고 웃는 내가 낯설었다. 이런 상황에 닥치니 변한 내 모습이 실감이 났다. 거울을 보듯.      


운동을 조금씩 더 해서 어깨가 많이 좋아졌고, 이것저것 진행 중이다. 보는 눈은 정수리에 달려서 허접한 나를 견디는 게 힘들다. 자괴감과 아이디어 사이를 번지점프 중이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해 보는 연습이라 여기며 헤쳐 나가길. 이런 상황이 활기를 주는 걸 보니 나는 일이 취향인 걸까? 변하는 빛처럼 나도 나를 모르겠다. 다 파악할 수 없다면 모네의 연작처럼 짧은 순간을 자주 그려내는 수밖에. 연작을 기대하며, 목요일 아침. 도서관에서의 일기 마침.      


자주 하면 좋은 것: 스트레칭, 일기 쓰기, 사진 찍기     




2.4. 목

이번엔 잘 “팔아”보리다. 능력을 돈으로 연결시키는 기술이 너무 x무한대 중요하다.      




2.5.수     

어젯밤부터 눈이 왔다. 입춘인데 눈이 온다...     




2.7.금

그리고 수업도 잘해나가고 있다. 처음 수업할 때만 해도 버거워서 중간중간 쉬고 그랬는데, 지금은 또 잘 해내고 틈틈이 해나가는 걸 보니 새로운 걸 할 여력이 드나 보다. 여태껏 했던 게 하나의 사이클로 생성되어서 잘 타고 있다. 쳇바퀴 온몸으로 돌리던 걸 한 발로 쉭쉭 하는 느낌? 이렇게 많은 걸 체내화해서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2.13.목

벌써 목요일이라니! 그래도 일기장을 놓지 않은 것에 빅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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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습관! 잘 살고 있다. 건강한 우주를 위해서는 일상을 가꾸는 바보들이 많아져야 한다. (https://brunch.co.kr/@chocowasun/75)




2.18.화

잘못 판 구녕인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아닌 걸 느꼈을 때 나오는 것도 용기다. 냉정하게 떠올려보면 몇 번의 경고등이 있었다. 힘내라 짜샤.      




2.19.수

아직도 씁쓸한 마음이 조금! & 새로운 일을 도모 중. 그 와중에도 일상은 잘 흘러간다.      




2.27.목

벌써 슬슬 밀리기 시작한다. 정신줄 잡고!!! 근데 잘 안 잡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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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해야 할 일. 잠을 잘 자고 잘 먹고 충분한 운동을 한다. 책을 평소보다 더 읽는다.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로 할 일들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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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쪼달리는. 여러모로 힘든 이 시기를 잘 넘어가 보자꾸나.. 파이팅이다 이놈아.      




3.15.일     

오랜 기간 일기를 쉬었다. 무척 무기력했기 때문이다. 마당에 남천을 심고 샤워를 하니 기운이 좀 났다. 그래서 들고만 다니던 일기장도 펴고 가계부도 쓰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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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많이 부는 일요일이다. 잠을 못 잔 지 일주일 정도 됐다. 세 시 넘어서 겨우, 다섯 시에 잠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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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사이클이 반복되니까 처음 이사 왔을 때가 생각이 난다.      




3.17.화

빨리 찾아온 화요일. 어제는 내내 그림 그렸다. 재밌다. 재미 80 + 스트레스 20의 적절한 조화. 꼼지락꼼지락 앉아서. 글 쓸 기운도 나고 그림 그릴 기운도 나는 걸 보니 이제 좀 회복 중인가 보다. 가볍게 툭툭 쳐내는 마음으로 진행 중이다.      


다 안 되고 스트레스받을 때는 흘러가게 두면서 한 호흡 뱉는 것도 배워간다. 나는 정말 노래처럼 쉬는 법을 몰랐네... 이것도 배우는 학원이 있나요. 독학으로 극복하려니 오래 걸린다.      


내가 그린 그림이 나보다 낫다는 사실은 언제나 진실. 그리면 그릴수록 다가온다. 그리고 남의 떡만 큰 게 아니라 남의 그림만 더 잘 그려 보인다.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그린 나도 그렇다. 부러워하다 끝나느니 차라리 더 그리자. 알지만 어렵다.      


오는 애기들도 힘들어한다. 나도 그 때 만사가 힘들고 별거가 별거였겠지.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처럼. 다 괜찮고 포기만 안 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울음이 많던 어릴 적 나에게.      




3.18.화

날씨가 좋은 화요일. 처음으로 문을 열고 히터를 켜지 않았다. 혼란해도 봄은 오고 싹이 난다. 인동초도 푸릇푸릇. 긴 겨울 동안 조화처럼 변화가 없더니 이름 그대로 인내하고 새싹을 틔웠다. 이 에너지 앞에서는 언제나 반성하고 다짐하게 된다.      




3.25 수

생각보다 나약한 김다서니... 몇 개 해본 거 안 된다고 눈물부터 찔끔 난다. 코가 빠져 있었더니 엄마가 자기는 0명부터 시작했으니 힘내란다. 하는 것마다 잘 안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땐 어찌해야 하지. 눈물이 줄었다 생각했는데 그냥 울 일이 없었나 보다. 오만하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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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에 잠도 가끔 잘 온다. 안 그래도 답답해 죽겠는데 더 숨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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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나야 힘을 내라! 마음도 모르고 새는 지저귄다.

ps. 복근이 뚜렷하게 보인다. 뿌듯     




3.26.목     

배도 안 고픈데 뭐라도 괜히 먹게 된다. 방금도 인절미 반 팩 때림. 처음 이사 왔을 때처럼 괜히 힘들고 갑갑하니까 식탐만 부린다. 세상에.      

코가 빠진 상태는 ing... ㅇ<-<     




3.27.금

힘 짜내서 마지막 수업! 아이고야... 괜히 지치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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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받는 게 꿈에 나오는 게 여러 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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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탱되는 일상. 일과 끼니. 마당. 가족이 있어 하루하루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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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운동하는 것도 수-펄 그레잇! 일기도 그레잇! 나를 잘 돌보고 챙겨줘 보자꾸나.

봄이 넘실넘실. 마음이 쥐어뜯긴다. 희미해진 줄 알았는데 깊숙이 요동친다. 그렇다고 여름도 싫어! 다 싫어! 쾅!!!     




4월 2일 목요일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목요일.      

번 아웃이 온 것인가 싶다. 했던 도전들이 무언가로 이어지지 않고 단발적인 체험으로 끝나는 탓을 해본다. 긴 시간, 뭘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


재미있고 오래 할 수 있는 걸 해 보고 싶은데. 누구보다 그걸 잘 안다 생각했는데. 아득하다. 가지고 있는 게 다 보잘것없어 보이고 비교하게 된다.     


친구들과 비교하며 스트레스받는 애기들을 보며 전혀 그럴 필요 없는데... 너무 잘하고 있고 자체로 충분한데,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은 그걸 나에게 해야 했다. 나를 동그랗게 파두고 주변에만 물을 주고 있었다.      


알지만 실천이 어렵다. 몰라서 공부 못 하는 거 아니고, 운동 못하는 거 아닌 것처럼. 언제나 평론가와 현역 선수 사이의 갭은 있는 법.      


나 뭘 해야 하나요. 뭘 잘하나요. 새삼스럽고 부끄럽다. 이래서 점보고 타로 보고 하나보다. 이럴 때일수록 잘 먹고, 잘 자고, 많이 읽고 써야지.

하... 인생아... 씨부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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