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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Jun 03. 2020

사이사이

6편의 소식지를 발행하며



처음 연재 형태의 잡지를 제작한 건 대학교 때였다. 와다다 몰아쳤던 한 학기가 끝난 후. 기운은 남고 머리는 팽팽 돌아서 근질거리던 차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친구들과 나는 매거진을 만들기로 했다. 한참 독립출판이 붐이었고, 할 줄 아는 기능을 활용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맨 땅에 드릴질로 우당탕 해나갔다. 인쇄소 한 복판에서 세 시간씩 수정할 때도, 몇 백 장의 종이를 포장하다 깔려 죽을 뻔 한적도 있었다. 떠올리면 삐그덕 찍어내는 기계 소리와 덜 마른 잉크 냄새, 종이 먼지가 날리던 충무로의 골목이 훤하다.



제주도의 작은 책방에 걸린 잡지를 마주했을 때. 모르는 사람이 잡지를 데려가는 모습을 볼 때. 책을 들고 납품하러 갈 때. 그 기분들은 유전자에 새겨져서 삶의 방향키에 달라붙었다.







그리하여 연재라는 형식을 맛보기 한 나는 시골에 내려와서 귀촌 일지를 쓰게 되었다. 끈기도 없고, 단숨에 질려 거들떠도 안 보는데 계속 글을 올리는 일이 신기하기만 하다. 몇 안 되는 꾸준한 무언가 중에 하나이다. 연재라는 건 가계부 같다. 천 원 이천 원 써서 월말에 더해보면 1억이 되어있다.









멋지고 붓질로 담아둘 만큼 특별한 무언가를 봤을 때 '그림 같다'는 말이 나온다. 하루하루가 그림 같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특별한 일이라기보다 그냥 해내는 일이기에 화실의 부제목은 '그림-같은-일상'이다. 그림과 일상이라는 단어 사이에 있는 이야기들을 담자고 생각했다. 소식이나 알려야겠다, 여기 이렇게 살고 있다 정도의, 천 원 이천 원 모으는 마음이었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은 막상 얼굴을 보고 하기 어렵다. 그런 것도 조금 녹였다. 사실 그런 거창한 이유보단, 학생들이 그림이 아까워서. 그리고 이곳의 다른 시간이 혹여나 궁금할까 묶어두자는 쪽에 가깝다.


앞의 3 편은 별다른 표지 없이. 4번째부터 표지에 사진을 넣었다. 표지 사진은 이전 후 발행 후 고여있던 사진 중에 계절이 잘 드러나는 것을 고른다. 순서대로 여름과 가을 / 가을과 겨울 / 겨울과 봄.






여섯 계절의 사이에는 지나고 머무른 사람들도 많고, 사부작 거린 흔적들도 있다.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사진들과 학생들의 작품이 주로 실린다. 전할 소식과 더불어 책과 영화, 전시도 추천하곤 한다.


추천은 고도의 공감능력을 요하는 까다로운 일이다. 이곳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도 좋아하겠지? 하는 자체 ai서비스다. 어른도 아이도 오기 때문에 가족 단위에서 소화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기꺼이 나눌 만한 것. 책 재밌게 봤다, 그 영화 저도 봤어요, 전시 잘 보고 왔다는 얹는 말들에 다음 취향을 고민한다.




주로 어릴 때 읽고 많은 영향을 받았던 책들. 어쩌면 어른에게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보리는 그림 구경으로도 충분하다. 찔레꽃 울타리 시리즈의 그림을 보다 보면 따뜻함이 차올라서 인류애가 상승한다. 사라는 행복이란 평범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 책. 미스 페러그린은 흡입력 있는 이야기이다. 정신없이 텍스트에 시간을 쏟고 싶을 때 보기 좋다. 미술관에 흥미 없는 사람을 위해 클로디아의 비밀을 골랐다. 어릴 적 비밀스럽고 게다가 정원이라니, 로망의 총집합이었던 비밀의 화원도 있다. 화실과도 어울린다. 울새와 로빈 같은 단어들의 식감에 울렁울렁했었다. 지금 다시 보니 사투리가 웃기다.  


 


영화도 주로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걸 골랐다.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 추천할 것이 가뭄이다가도 떠올려보면 또 생각이 난다.

브런치에 후기를 남기기도 했던 러빙 빈센트, 그리고 전시와 함께 추천한 월레스와 그로밋. 아이들 틈에서 찔끔 눈물 흘리게 한 알라딘도 있다. 책과 함께 추천한 미스 페러그린과 겨울에 코코아 먹으며 보기 좋은 유브 갓 메일. 옛날 컴퓨터 보면 애들 기절하겠다 싶었다. 마지막은 비주얼과 결말까지 너무너무 좋았던 싱 스트리트.





주로 지금 하는 전시들 혹은 전시가 끝나도 찾아갈 수 있게끔 미술관 자체를 추천한다.

석파정도 볼 수 있는 서울미술관과 새로 오픈한 청주 현대 미술관. 탈잉에서 수업으로 진행했던 호크니 전, 갈 때마다 휴관이라 아직도 못 본 환기미술관, 올해의 작가전이 열리는 현미와 코로나로 인한 구글 아트 전시.








닫는 페이지. 가로로 찍힌 사진을 마무리하는 표지로 넣는다.


누덕누덕 기워낸 채로 몇 번 내다보니 어느새 7번 째의 소식지를 제작할 때가 왔다. 벌써? 시간이 훌쩍 넘어와서, 6개를 이미 만든 게 소름이라 괜히 한 번 놀랐다. 작게 모아둔 것들이 한아름에 안기지 못할 큰 꽃다발이 되었다.


봄과 여름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짚어본다. 지난 부스러기를 뒤져보고 빈 종이 앞에 앉으면 또 이야기가 주절주절 나올 테다. 작은 것들을 모아 햇볕에 잘 말려 종이비행기로 접는다. 다 추억이다! 하며 귀찮아하던 애들을 모아 사진을 자주 찍던 언니가 있었다. 이것 또한 다 추억이다. 어느 날 궁금할 때 이 글의 링크를 타고 넘실넘실 구경 오시길.






소식지 사이 지난 호 링크

소식지 사이 1호 https://blog.naver.com/seondeulart/221441227304

소식지 사이 2호 https://blog.naver.com/seondeulart/221483430967

소식지 사이 3호 https://blog.naver.com/seondeulart/221561176132

소식지 사이 4호 https://blog.naver.com/seondeulart/221652963969

소식지 사이 5호 https://blog.naver.com/seondeulart/221722313463

소식지 사이 6호 https://blog.naver.com/seondeulart/221837107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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