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기에 대하여
시골에 내려와 화실을 연 지 4년이 지났다. 순식간에 경계가 지워지는 함박눈이 오던 날, 도배만 갓 된 방을 노랗게 칠했다. 가구가 들어오기도 전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천장에 기름칠한 것도 열여섯 개 계절 전의 이야기다.
처음 '그린다'는 행동을 반복하게 한 건 아마 엄마 아빠의 칭찬 때문일 거다. 그렇게 유년기를 지나며 좋아하게 되었고, 청소년기에는 남들과 다르고 싶은 허영심도 가미됐다. 미디어 샤워를 한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 내게도 있다. 직업이 될 줄은 더더욱 몰랐고, 혹시나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였다. 친구가 너는 언제부터 이렇게 그리고 가끔 쓰고, 땅과 함께 살 걸 알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어찌어찌 흘러오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다는 싱거운 대답을 내놨다.
3살에 다니던 어린이집부터 스물여덟 해를 맞은 지금까지, 나는 항상 그림을 그려왔다. 24년간 무언가를 다시 종이에 옮겼고, 어떻게 옮기는지 알려주는 직업을 가진지도 7년이 지났다. 그린다는 건 밥 먹고 샤워하듯 그냥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리기에 대해 말한다는 게 머쓱하다.
이게 그렇게 좋대~란 말을 요새 달고 산다. 예시로는 그릭 요거트랑 유산균이 그렇게 좋대, 수영이 그렇게 좋대 등등. 친구들과도 영양제나 새로 시작한 운동이 이야기의 주제다. 새삼 그리기가 어디에 그렇게 좋은지 짚어보았다. 그리기가 그렇게 좋대~ 이거 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평소에 자주 홍보하던 말들을 모았다. 알고 있던 것도 꺼내어 말로 전할 때 뚜렷해진다.
방의 2018노란 방의 2018
재해석과 성취감
이미지가 범람하고, 영상을 보는 것조차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에 결정당하는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러다가 인생의 모든 선택을 누군가에게 맡기게 되는 것도 머지않았다. 그리다 보면 나만의 시선을 가지게 된다. 머릿속에서 손끝으로 옮겨 나오는 과정은 상상처럼 단순하지 않다. 어떤 선이 마음에 드는지 골라야 한다. 의미 없이 칠하는 한 칸도 어쨌든 나의 선택이다. 책임지는 과정에서 취향이 생기고, 반복하면 보상으로 재해석하는 시선이 생긴다.
손으로 하는 일은 정직하다. 그리기를 시작할 때 재능이 없어 고민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한다기보다 악기나 운동처럼 근육을 단련시키는 일에 가깝다. 게다가 결과가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성취감이 즉각적으로 찾아온다. 그 뿌듯함은 그려본 사람만 알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습관
그렇게 좋은 건 알겠는데, 계속하는 게 참 어렵다. 고비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은, 첫선을 그리기 전이다. 속으로는 울며 에라 모르겠다, 하고 첫선을 그린다. 내가 그린 것 아니에요 하고 연필을 던지고 종이를 접어버리고 싶을 때쯤, 나름 괜찮은 게 나온다.
두 번째로 도망가고 싶을 때는, 그림이 반 정도 완성됐을 때다. 미쳤다, 지금이라도 이 쓰레기를 버리자. 분리수거 통에 넣어도 덜 죄책감이 들 만큼의 시간이 든 지금이라도 그만두자 싶다. 보통 영원한 미완성으로 벽에 기대진 캔버스는 이 상태에서 탄생한다. 다시는 그것을 마주 보고 새로 붓을 들 기분이 들지 않는 그림들이 있다.
그러나 그 고비만 넘어가면 흥이 난다. 그리고 심지어 꽤 봐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의 벽을 뚫고 나면 그러다 마지막엔 ‘아니, 이걸 내가 그렸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벽에 걸거나 서랍에 넣어둔 후에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두려움에 떨며 빈 화면과 마주하는, 그 과정을 반복한다.
이것이 나뿐 아니라 보통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겪는 과정이다. 망했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는 것도 습관이다. 쓸어 담다 보면 괜찮아진다는 사실을 체감해야 한다. 그걸 연습하기엔 그리기만 한 게 없다.
이런 이유로 그리기를 함께 할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괜찮아요’다. 계속하다 보면 괜찮아진다는 걸 나는 이미 겪었기 때문이다. 듣다 보니 진짜 괜찮아진 것 같다는 간증이 쏟아진다. 그리고 금지어는 ‘망했다’. 망했다고 말하면 2억 내야 한다.
지난주에 한 분이 말하길, 그리기를 배우며 지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했다. 틀릴 때마다 없애고 싶고, 지워야만 다음으로 넘어간다 생각한다. 하지만 맞지 않은 선이 있어야 제 자리에 있는 선을 가늠할 수 있다. 괜찮으며 지우지 않아도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더 나아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취향이 생기고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 비슷하게라도 말과 그림으로 옮겨지며 스스로가 선명해질 테다.
내가 한 이야기들은 그리기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일상도 마찬가지다.
작년 한 해도 짚어보면 소란했다. 영상 제작과 탈잉 수업에도 도전했었고, 한국 미술사 특강을 진행했고, 외부에서 서양미술사 특강도 열었다. 볕 좋은 봄에는 뒤뜰에서 전시회도 있었다. 5번의 계절 사이마다 소식지를 5번 냈고, 4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도 보냈다.
또 다른 일은 운전에 도전했었고(무려 외곽도로 탐)(2주 운전하고 2주 몸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백패킹에도 도전했다(폭우 속에 떠내려갈 뻔했지만).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의 장점을 알게 된 소름 돋는 일도 있었다. 필름 값이 올라 요새는 시들하지만, 필름 사진도 많이 남겼다. 잔잔한 도전과 포기들도 있었다. 이렇게 말하니 복작복작해 보이지만 게으르고 느린 호흡이었다. 작은 사부작거림에 가깝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막연하게 슬펐던 날들은 지났다. 혼란스러울 땐 글씨를 좀 읽고 잠을 자면 괜찮아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새해에는 바라는 게 없다. 그저 지금과 비슷하길. 그것만으로 지난 일 년 잘 보냈다. 봄의 두릅과 원추리 된장국, 여름의 그늘, 가을의 하릴없는 산책, 겨울의 황량함. 사랑하는 것들을 기다리며, 스물일곱을 조금 느리게 닫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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