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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Dec 12. 2017

결산 스물다섯

노란 방의 2017




그 어떤 때보다 많은 일이 있었던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보다 더 주관적일 순 없다. 

노란 방에서 너어무너무 개인적인 시상식이 펼쳐집니다. 손가락 고정!!!





2017년은 저에게 아주 많은 일이 있었던 한 해입니다. 신변의 변화도 있었고, 스스로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일 때도, 더 이상 혼자일 수 없을 만큼 혼자일 때도 있었고, 또 부지런히 곳곳을 다녔지만 인생에서 가장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진 때이기도 합니다. 이런 한 해를 기억하기 위해, 정말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무려 10개 분야에서 가장 많은 마음이 담긴 것들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정리해 보니 생각보다 후보가 가득했던 부분도, 이렇게 별로 없었나 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 기억을 믿지 않기 때문에 사진첩과 다이어리, 파일 자세히 보기, 카톡 검색 등을 통해 최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선정하고자 했습니다.       


시상은 가만히 부분, 뽈뽈 부분, 참가 부분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가만히 부분은 별명이 김가마니인 만큼, 가만히 앉아 겪은 것들에서 추려 보았고, 뽈뽈 부분은 두 발로 돌아다니며 체험한 것들로 꾸렸습니다. 그리고 꼽을 만큼 많이 경험하지 않았지만, 많은 영향을 준 참가 부분까지 있습니다. 아쉽게 빠진 항목도 많아서 다음 해에는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은 시상을 할 수 있길!          


문학, 비문학, 맛, 노래, 장소, 영화, 문건, 전시, tv 프로그램, 이벤트 각 분야에서 후보는 최대 3개까지로 제한하였고, 그중 최고를 뽑는 기준으로는 그 이전에 등장했을 지라도, 2017년 내 스물다섯에 새롭게 겪게 된 것일수록 더 높은 마음을 주었습니다. 또한 얼마나 많은 잔상을 남겼고, 나의 앞으로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을수록 가산점이 있었습니다. 그럼,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림만 쭉 보시다가 궁금한 내용만 골라 읽어 주세요. 





독서 부분은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눠 보았습니다. 책을 편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이전보다 문학 비율이 높아진 것을 보아 자체 실행 중인 캠페인이 잘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해 동안 읽고 적어둔 약 90여 권의 책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책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문학


우선 첫 번째로 가만히 부분의 문학 후보를 만나보시겠습니다. 문학 읽기 캠페인 덕분에 의외로 후보들이 각축을 벌였습니다. 6월에 읽은 랜섬 릭스의 <미스 패러그린의 이상한 아이들의 집> 시리즈, 7월부터 8월까지 읽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앤> 시리즈, 11월에 읽은 천명관의 <고래>가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중에서도 정말 사랑하는 동화 같은 분위기에, 토요일 날 도서관으로 뛰어가게 할 정도의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한, <미스 패러그린> 시리즈와 <앤> 시리즈가 경쟁을 벌였습니다. 



할머니가 된 내 책장에 꽂혀있을 책은? 어느 책이 더 많은 갈래의 감정을 남겼는지? 의 질문에서 <앤> 시리즈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최종 당선되었습니다. 자세한 감상은 이전에 브런치에 남겨둔 글에서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 https://brunch.co.kr/@chocowasun/17 )





비문학


두 번째는 가만히 부분의 비문학입니다. 에세이를 정말 좋아하는 만큼 후보에 드는 것이 국가대표 양궁선수 선발전만큼이나 치열했습니다. 후보로는 3월에 읽은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 5월에 읽은 박지현의 <나는 연필이다:영원을 꿈꾸는 연필의 재발견>, 10월에 읽은 전몽각의 <윤미네 집>이 올랐습니다. 세 후보 모두 일상의 당연한 부분을 새로운 시각으로 엮어내어 읽고 난 후에 나 또한 나의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외로운 도시> 같은 경우에는 도시에서 혼자 살 때의 제 모습이 겹쳐져서 많이 공감할 수 있었고, 섬세한 자료조사가 뒷받침되어 탄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연필이다>는 다큐멘터리의 제작기를 담은 책인데, 그 열정과 깊이에 놀랐고, 사물에 대한 시선을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종 수상은 <윤미네 집>입니다. 쉽게 감동받지 않을 만큼 딱딱해진 줄 알았던 제가 책을 보고 정말 오랜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이런 기록을 남기고 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 고민 없이 찰칵 버튼을 누르게 되는 핸드폰 사진기를 모두가 쓰는 요즘, 많은 분들이 이 책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집이에요. 글이 없어도 충분했습니다. 





노래


다음은 노래 부분입니다. 저는 가요, 인디, 팝을 골고루 듣는 편입니다. 올 한 해는 제가 좋아해 온 가수들이 다량 신곡을 들고 나오기도 했고, 친구들의 추천곡도 많아서, 유난히 노래가 마르지 않은 풍년이었습니다. 그만큼 후보를 꼽기 어려웠는데요, 안타깝게도 참깨와 솜사탕의 신보가 후보에서 탈락하였습니다. 정리하다 보니 밴드 음악이 제 취향인가 봐요, 새롭게 느낀 사실. 의외로 가장 각축을 벌였고, 가장 쉽게 정해진 노래 부분의 수상자는 검정치마의 <BIG LOVE>입니다. 선정 기준에서 새롭게 겪게 된 것에 더 많은 마음을 주었다고 했는데, 이 노래 또한 그런 기준에서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사랑은 자로 잰 듯이 반듯해 한 번도 틀리지 않아 실처럼 가늘 때에도 절대로 엉키지 않아


검정치마의 TEAM BABY 앨범 전체를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무려 콘서트도 다녀왔는데, 정말 열정적인 팬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같은 앨범의 Diamond, 내 고향 서울엔, 나랑 아니면 노래 모두 좋았습니다. 제가 쓰는 음악 어플이 1000곡까지 밖에 추가되지가 않아서 뜻하지 않게 매번 낡은 노래들을 지우고 있는데,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 같은 노래입니다.  





영화

가만히 부분의 마지막인 영화입니다. 이 부분 또한, 작년의 저였다면 없었을 듯합니다. 난생처음으로 생각이란 것을 하며 영화를 본 한 해였습니다. 다니던 회사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주에 한번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를 비롯하여 태어나 처음 영화 시사회도 가보고, 영화에 대한 감상 글도 처음 써보고, 혼자 영화도 많이 봤네요.      


영화 또한 가장 많은 감정을 들게 했고,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오래 기억되었던 것을 기준으로 꼽아보았습니다. 2017년에 감상한 약 20여 편의 영화 중 드니 빌뇌브의 <컨텍트>와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라는 매체에 처음 휘둘린 나를 보는 게 낯설었고, 그래서 몇 달간 괴로웠습니다. 기억에 오래 남을 영화라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관련된 글을 써둔 것이 있어서 더 보시고 싶으신 분은 읽어주시길. ( https://brunch.co.kr/@chocowasun/14 )   







장소

뽈뽈 부분의 장소는 먹점 마을이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집을 제외하고 고르려고 하였고, 해외와 국내 방방곡곡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신선한 기쁨을 여러 번 맛본 곡성과 재생이란 것이 실현되는 마포문화기축기지도 꼽혔으나, 매화가 흐드러질 무렵 머리가 띵하게 꽃향기가 흐르고 처음 은하수를 본 먹점 마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섬진강의 매실 마을 중 하나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때도 피해를 보지 않았을 정도의 오지입니다. 방문하게 된 이유가 회사에서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가보고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이런 곳을 오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느낄 정도로 새로운 체험이었기 때문에 선정하였습니다.      





다음 부분은 맛입니다. 스물다섯 살, 내 혀를 놀라게 한 것들을 모아보았는데, 이쯤 되면 먹어볼 수 있는 것은 다 먹어본 줄 알았습니다. 여전히 새로 접한 맛도 많았고, 이게 이런 맛이었네, 깨달은 것도 있습니다. 귀촌 생활인 만큼 주변에서 자주 조달되는 원재료로 인해 풍부한 식탁을 매일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밭에서 방금 캐서 잎 째로 먹는 아기 당근은 제가 알던 당근의 맛을 재정의 하게 만들었습니다. 싱그러운 흙냄새가 충격적이게 좋아요. 덕분에 근처 밭의 아저씨께서는 다선이가 좋아하는 써니 당근이라고 하며 비닐봉지 가득 가져다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먹어본 맛을 더듬어, 무화과라는 새로운 과일과도 거래를 터서 치즈와 함께 만든 샐러드건 생과일이건 실컷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강식을 뒤엎고 수상한 올해의 맛은 베이컨 도넛입니다. 이렇게 강렬하고 양심 없는 음식이라니! 설탕물을 덮은 도넛에 베이컨 가루를 묻혀 튀긴 다음, 치즈와 고기를 넣은 햄버거입니다. 그리고 음료는 밀크셰이크. 사악하게 맛있는 조합이었고, 내 혀가 영원히 잊지 못할 맛이었습니다. 역시 맛의 단위는 칼로리임을 증명하게 되네요.      





물건


뽈뽈 부분의 물건입니다. 저를 놀라게 했고, 일상을 새롭게 만들 물건들을 모아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겠고, 아직도 너무 신기한 언더 레인지가 후보에 올랐습니다. 어느 식당에서 처음 써보고 구매하고 싶어 업체에 알아봤으나 비싸서 포기하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 우리처럼 저녁 식사를 두 시간 씩 하는 집이라면 유용할 수밖에 없네요. 그리고 부다페스트에 놀러 갔을 적에 마법처럼 발견하게 된 작은 가게에서 사 온 노트를 잊지 못해 인터넷을 통해 올해 새로 구매하였는데, 너무 아까워서 아껴 쓰고 있어요. 앞으로도 매년 그 행복을 잊지 않고 싶어 후보에 올렸습니다. 



아쉽게 후보에서 탈락한 나보다 1살 많은 전자 피아노까지 제치고 수상을 하게 된 물은 바로 블루투스 스피커입니다. 원래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게 좋거나 비싼 제품도 아니었고, 불편해서 자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의 저라면 기계도 잘 모르거니와, 절대 이십 얼마를 주고 스피커를 살 생각이 없었겠지만, 이모가 덜컥 용돈을 주셔서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눈에 보이는 물건을 사게 되었습니다. 전자제품이라면 뭐가 좋은지 알아보는 것도 스트레스였지만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가격대에 맞는 상품을 구매하였습니다.  그리고 스피커가 온 날 밤, 우리 가족은 세 시간 정도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래를 듣고 불렀습니다. 여기는 그런 걸로 민원 넣을 사람도 집도 없어서 다행입니다. 크게 노래를 듣는 기쁨을 새로 배웠고, 제가 산 것이 엄청 좋은 스피커는 아니지만, 이래서 스피커로 가산탕진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가을 내 엄마의 밭일에 웅장한 가곡을 틀어주었고 겨울이 되고는 제 방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올해의 물건에 당선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전시


뽈뽈의 마지막 부분인 전시입니다. 주류의 장소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서울에 살 때보다 더 많은 전시를 보았습니다. 그림, 가구, 사진부터 공예 비엔날레까지 장소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약 15개의 전시를 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후보에 오른 전시는 한가람 미술관의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꼬르뷔지에>, 국립현대미술관의 <미각의 미감>, <보이드> 전입니다. 르 꼬르뷔지에 전은 건축가의 미술 작품이라는 시각과 전시 자체의 완성도가 만족스러웠습니다. 미각의 미감은 마침 먹거리, 지역 마켓 등 그 당시의 관심사와 맞물려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감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성이 산뜻했습니다. 전시를 보고 스스로에게 던져진 질문이 다채로워서 비옥한 전시로 느껴졌습니다. 보이드는 미술관이라는 건축물 자체를 주제로 하여 꾸며낸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건축과 그를 재해석하는 작품들을 볼 수 있어 다채로웠습니다.      



전시 부분도 마찬가지로 감상 후에 많은 잔상, 감정, 질문을 남긴 것을 기준으로 하였고, 전시는 특별히 체험할 때 마음을 건드린 횟수가 많은 순서로 꼽았습니다. 미각의 미감과 보이드 중 특별히 고르기 어려웠지만, 실제 공간을 걸어 보며 빈 공간, 보이드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을 볼 수 있었던 전시인 <보이드>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미술관이기에, 그리고 현대미술관이기에 할 수 있었던 전시였던 것 같습니다. 가구를 공부하고 살 집을 지으며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무것도 모를 때가 제일 용감합니다. 그리고 가장 존경하는 김소현 가구 디자이너의 개인전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항상 많이 배웁니다.






참가상


그리고 많은 후보를 올릴 수 없어서 수상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올 한 해 활약한 부분에 수상을 하고 싶어 만든 참가상입니다. 그 누구보다 티브이를 좋아하지만 올 한 해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네요. 드라마로는 연기와 구성이 한국에서 나올 수 없는 하나의 시도로 남겨질 비밀의 숲을 꼽았고, 홀린 듯 투표를 했던 프로듀스 101이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벤트 부분은 각종 콘서트와 페스티벌, 경기를 총망라하여 정리해 보았는데, 명곡들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던 파스텔 뮤직의 <사랑의 단상 chapter 6>, 고척에서 있었던 방탄소년단의 <the wings tour the final>이 후보에 올랐으나, 인생에 최초로 경험한 배구경기가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막을 걷고 장충체육관으로 들어선 순간, 태어나 그런 세상이 있다는 자체를 처음 경험했습니다. 배구라는 스포츠에 눈을 뜬 계기가 되어, 이벤트 부분에서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10개 분야에서 수상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스물다섯의 제가 겪은 것, 배운 것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스물여섯의 다선아, 기대할게! 이상 시상식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수상내역


가만히 부분

문학:  ANNE siries _루시 모드 몽고메리

비문학: 윤미네 집 _정몽각

노래: BIG LOVE _검정치마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_압델라티프 케시시     


뽈뽈 부분

장소: 먹점마을

맛: 베이컨 도넛 _올마이티 치즈버거

물건: 블루투스 스피커 _BOSE soundlink mini2

전시: VOID _현대미술관     


참가상

tv 프로그램: PRODUCE 101 _Mnet

이벤트: 배구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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