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E OF GREEN GABLES
인생의 좌표가 되는 새로운 것이 생겨 기쁘다.
과거보다 빼곡해진 대신 새로운 무언가에 설레는 일이 줄었다. 이십 대의 중턱에서, 이렇게 콧김이 나는 기분은 진심으로 오랜만이다. 요 몇 주간 손발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익숙해서 더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해지게 하는, 그런 것이다. 바로 <ANNE>이다.
서랍에 넣어둔 옛 공책이 보고 싶듯, 갑자기 앤이 떠올라 읽고 싶어 졌다.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기상천외한 장난을 치는 삐삐롱 스타킹과 뒤섞여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학교 도서관에서 많은 권수로 앤을 읽었던 게 생각났다. 동그랗게 꺾인 소파 뒷면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의 하얗고 초록색이었던 표지까지도 떠오르는데 너무 바래버린 기억에는 희부연 내용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앤을 읽고 있다. 언젠가 내가 좋아했던 것의 뒷모습이 이러했지. 어깨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는 아끼던 것을 차분하게 정리해내는 작업 같다. 벨벳으로 잘 덮여있는 안을 들여다보며, 그 먼지 냄새와 오래된 글씨체, 끝없는 묘사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다.
앤의 작가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로 캐나다 출생의 작가이다. 작가와 책의 내용을 동일시할 순 없지만, 작가가 자신의 많은 조각을 앤에게 나눠준 것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앤의 초록지붕 집이 있는 애번리는 작가의 실제 고향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모델로 한 것이고, 작가가 되고 싶은 어린 시절의 꿈과 당시엔 흔하지 않았던 대학에 가는 여자아이 등 그 애정이 묻어난다. 후에 작가 스스로 인생의 역작이자 자전적인 캐릭터라 불린 에밀리라는 새로운 인물을 써내지만, 앤 또한 작가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다. 동서문화사의 <앤>에는 이와 같은 작가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어 지금은 낯선 그때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다. 집필한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에 상세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총 10권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앤의 내용은 2권 분량뿐이다. 다이애너, 길버트, 매슈와 머릴러가 등장하고 고아였다가 학교에 다니게 되는 어린 시절의 앤은 기억보다 빨리 끝난다. 캔디에서 앤소니가 1권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 것처럼(역시 드라마도 1화에 모든 게 다 나온다) 길버트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어서 놀랐다. 길버트와 투닥거리던 두 사람이 흐뭇했던 것이 강렬해서 그런지 길버트가 다이애너보다 조금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신기했다.
만약 앤이 길버트와 러브라인이라는 전 세계적 강력한 스포일러가 없었다면, 중간에 등장한 다정한 약혼자를 나 혼자 응원할 뻔했다. 사람의 기억은 너무 말랑거려서 찰흙처럼 그 형태가 마음대로 바뀌나 보다. 그 이후로는 대학을 다니고,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는 한 사람의 일생이 그려져 있다.
비록 약간의 사족 같은 이야기들도 많지만, 그 또한 앤의 분위기인 것이다. 출간 후, 앤이 너무 인기가 많아지자 작가는 제발 앤에게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지만 다음 이야기를 바라는 팬레터가 전 세계에서 쏟아졌다고 한다. 그에 대한 답장으로 써 내려간 소소한 이야기들이, 지금의 나와 같이, 또 다른 앤을 궁금해 한 팬들에게는 달갑다.
또한 중간중간 지금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걸리는 것들이 있다. (남자아이를 선호하거나 프랑스 인들을 무시한다거나 허영 있는 캐릭터는 여자뿐이라던가) 그래도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진보적 성향을 가진 소설이었을 것이다. 여성작가의 작품이고 너무도 소소한 이야기여서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 속에 이렇게 흘러, 나에게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앤 시리즈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점은 주변 사람들이다. 각 권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심인물들이 있다. 앤에 대해 대충이라도 알고 있다면 꼭 모든 권을 읽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몇몇의 고정된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매 편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를 풍요롭게 한다. 기억에 남는 인물은 앤과 머릴러가 함께 키운 쌍둥이 중 장난이 많은 데이빗, 같은 영혼의 결을 가진 폴, 처연한 매력이 있는 레슬리 등이 있다. 우리의 일상이 그렇듯 앤을 웃기고 울리며 함께 살아간다.
또한 앤 시리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선명한 풍경 묘사이다. 상상력이 많은 앤처럼 작가는 매번 다른 비유로 그 풍경을 그려낸다. 끝없이 반복되는 풍경들이 앤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가을 무렵 애번리의 과수원 모습, 방에서 바라보는 노을과 구름, 기숙사 창문에 흐르는 빗방울처럼 그 표현이 다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예쁜 구슬 같다. 풍경이 너무도 자주 등장해서 조금은 지루할 수 있겠으나, 마치 <스트레이트 스토리>에서 끝없이 펼쳐지던 옥수수 밭이 나오는 장면의 역할처럼, 앤에 퍽 어울린다.
하지만 아무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통틀어 이 세계 속에서, 주인공 앤을 가장 깊이 좋아하게 되었다. 시리즈의 반을 넘게 읽은 지금, 아직 이야기의 끝을 모르지만 매슈의 마차를 타고 흰 사과꽃이 흐드러지게 핀 과수원길을 지나던 소녀 앤을 가장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처음 다이애건 앨리에 가던 해리와 떨리는 마음으로 마법모자를 쓰던 해리를 잊을 수 없듯이. 온 마음을 다해 기뻐하는 그때의 앤 또한 애틋하게 아껴서 잘 닦아두는 보석이 되었다.
어린 앤은 실제로 있었다면 조금은 짜증 나고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하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었겠지. 잘 웃고, 잘 울고, 상상에 빠져 엉뚱한 일을 저지르지만,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앤이 좋다. 사랑하는 것을 자신의 울타리 안에 예쁘게 넣을 줄 아는 앤의 모습에서 어린 내가 보였다. 잊고 지냈던 수많은 기억중 하나지만, 아파트에 살 적에 101동 앞의 놀이터는 해적 놀이터, 진달래나무로 둘러 쌓여있던 아지트는 비밀의 숲, 친구네 집 앞의 정자는 농부 놀이하는 곳처럼 이름을 붙여 불렀었다. 앤이 요정의 샘, 환희의 길, 연인의 오솔길로 애번리를 사랑하던 그 방식과 꼭 닮아 있다. 무언가를 잘 사랑하는 법을 앤을 통해 다시 기억해낸다.
보통 오래 기억되는 책들은 보편적인 매력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앤은 보통의 상황에서 일어날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쳐나간다. 주인공이 그저 히어로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이지만 실패하며 무언가를 이뤄낼 때, 많은 사람들은 매력을 느낀다. 나조차 실제 앤 같은 사람이 있다면 마음을 흠뻑 주었을 것만 같기 때문에, 왜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첫 만남부터 큰 실수를 저지른 할머니를 조잘거리는 수다로 영원한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앤을 천대하고 배척하는 오래된 가문의 사람을 식인종이라고 밝혀서 순순하게 말을 듣게 한 것처럼, 납득할만한 상황과 적당한 웃음이 양념이 되어 매력이 더 배가 된다.
방종하고 무절제한 사회에서 순진함은 늘 조금 우습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_테리 이글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순진함은 가볍게 소비되고, 사람을 믿는 순수함이 날로 우스워져 가는 때에,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하든지 내 세계를 지켜낼 줄 알아야 한다. 딱 앤처럼 말이다. 꿋꿋하게 순수하고 지켜내고, 또 그렇게 살아내는, 나름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앤을 보다 보면, 정말이지. 나도 앤처럼 살고 싶다.
작년부터 진득하게 소설을 읽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어찌 보면, 소설은 정말로 귀찮다. 작가가 흩뿌려놓은 단서들을 주워서 꿰어야 이해할 수 있다. 솔직하게, 환상의 세계가 더 이상 그립지 않게 된 걸까 문득 오싹했다. 더 이상 나니아에 갈 수 없는 피터와 수잔이 되어버린 무서운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앤은 나에게 남아있는 한 톨의 감성을 깨워주었다. 볕이 오래 스미어 바랜 냄새가 폴폴 나는 기억의 상자를 뒤적이며, 잊고 있던 내가 화르륵 타올랐다. 그 기분은 방학숙제로 억지로 써낸 일기장을 보는 것보다 어느 정도 강력해서, 잠깐 동안 다른 시간대에, 그 둥그런 책장에서 다음 권을 빼내던 나로 돌아가게 했다.
무릇 덕후란 남아있는 떡밥이 있으면 행복한 법. 당분간은 앤과의 여정을 아껴서 꼭꼭 씹으며 음미한 후에, 그 여운이 가셔 아쉬울 때쯤, tv시리즈와 애니메이션도 챙겨보고, 애밀리 시리즈도 읽어보려 한다. 특별히 온 마음에 새겨질 만큼 좋았던 그림을 그려주신 ‘계창훈’ 작가님, 쉽지 않았을 10권의 책을 내준 ‘동서 출판사’, 그리고 무엇보다 앤을 지겨워하며 이만큼이나 키워낸(이 정도면 실제로 키운 셈 치자) 캐나다에 누워 있을 작가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십 년 동안 쭉 좋아할 만한 밴드의 노래를 우리가 지금 들을 수는 없다. 그들이 이십 년 동안 나와 더불어 성장하면서 고르게 활동할지 예측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들을 수 있는 건 지금 좋은 노래뿐이다_김연수 <소설가의 일>
시상식 소감처럼 끝을 맺게 되었지만, 다시 한번, 인생의 좌표가 되는 새로운 것이 생겨 기쁘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잠깐 흐릿해질 때, 꺼내들 수 있는 것의 목록에 앤이 함께하게 되었다. 언제 읽어도 새롭게 읽힐 나의 보물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모두들, 할머니가 된 내 책장에서 나란히 오래도록 늙었으면 좋겠다. 그 책장이 지금보다 더 촘촘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보고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몇 년 후에, 앤을 다시 읽게 될 내가 지금의 글을 읽고 ‘지금이 그때보다 낫네, 김다선’ 생각하길 바라며. 이 마음을 잊기 싫어 남겨둔 감상문은, 이만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