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방의 2018
홀로봄_안예은
점점 뒤쳐지고 있는 것 같아
맞게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점점 뒤쳐지고만 있는 것 같아
두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어른을 위한 동요, 왈츠 선율과 영롱한 목소리, 쓸쓸한 가사.
누구에게나 스무 살은 의미롭다. 나의 스무 살엔 온전히 혼자라는 감각을 느끼며 미뤄두었던 성장통을 앓았었다. 유난히 느리게 소화된 2018년, 스물여섯의 일 년을 곱씹어본다. 팔딱거리던 스무 살도 희미하고, 혼란스러웠던 다른 스물몇 살의 해도 아득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잔잔하고 큰일 없이 커왔다. 항상 그래 왔던 것 같다. 애매하고 조용하게. 애매한 나이에 애매한 내가 서 있다. 아직 완전히 굳지 않아서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는지, 많이 허덕였다. 덕분에 어떤 방향으로든 성장했다는 게 피부에 와 닿는다. 그러나 충분히 불안했다. 행복한 눈물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활기차면서도 고요했고 생생하면서도 뻣뻣했다. 안온함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고 여기려 한다. 불안도 같이 껴안을 수 있는 넓어진 마음을 둘러본다. 멀리서 보면 내 생에 이렇게 평온함이 깃들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나날들이다. 모자란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한 살이 더 쌓여간다.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몇 장의 일기, 2권의 다이어리와 세 개의 서류봉투, 1권의 가계부, 그리고 수십 장의 이면지, 수십 장의 그림...으로 내가 남긴 부산물이 정리가 되려나. 할 말이 남지 않을 만큼 편지를 실컷 쓰기도 했고. 세상에 두 권뿐인 책도 만들었고. 가을과 겨울 사이의 소식지도 펴냈고, 미술사 책도 만들었다. 듣는 노래와 책을 매달 적어두었고, 하루의 점수를 매겼다. 지금 세어보니 올 한 해 읽은 책 중 적어둔 것은 98권. 딱 한 권만 꼽자면 호프 자런의 <랩 걸>을 고르겠다. 작년에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올해의 영화로 선정하며, 만약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다른 심심한 영화를 100편 봐야 했다 해도, 기꺼이 다시 그러할 영화라고 했다. 랩 걸 또한 올해에 읽은 모든 책이 아깝지 않을 만큼 좋았다. 여성 식물학자의 이야기이고, '나도 이런 걸 해보고 싶다'의 좋음을 줬다. 치열했던 시간이, 글로 담아낸 노고를 엿볼 수 있어 고맙고 또 부럽다. 1월 1일이 되면 다시 읽어보려고 책을 사 왔다. 신나게 밑줄 치면서 봐야지.
작년과 비교해 바뀐 나의 모습 중 마음에 드는 건, 거울을 덜 보게 되었다는 점과 커피를 좀 더 잘 내리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답지 않은 일들을 많이 했다는 점이다. 운동, 펀드, 사진, 철학책, 한국사, 혼자 한 여행.. 같은 게 떠오른다.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은 할머니 혹은 개미이다. 항상 힘이 없고 주로 누워있으며 낑낑거리며 뭔가를 하는 모습 때문인 것 같다. 처음 본 사람은 내가 달리기를 잘할 거라고 오해하곤 한다. 까무잡잡하거니와 잘 걷지도 않는데, 왜 있는지 모르겠는 다리 근육 때문이다. 가끔 내가 봐도 달리기 잘하게 생겼다. 껍데기만 운동인이었던 개미 할머니가 곧 1년이 다 되어 가게 운동을 하고 있다. 벼락 맞을 일이다. 시작은 너무 아파서였다. 척추측만증으로 인해, 어깨와 날개뼈, 골반과 때론 다리까지 만성 통증이 있었고, 헛구역질을 하게 되는 강력한 편두통까지 난리도 난리가 아녔다. 한의원 가느니 운동을 해보자 해서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너무 미뤄서 새해 목표가 운동 시작하기였는데, 하니까 또 잘 다녀서 어느새 다시 새해가 온다. 비틀린 몸을 되돌리기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통증 완화가 목표였다. 기초 체력과 근육이 부족해서 선생님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지금도 가면 꽥꽥거리나 끙끙거리는 게 전부고, 게으르고 쉽게 방전되는 학생이지만 하길 잘했다. 거북목과 오른쪽 날개뼈 교정, 돌아간 골반 방향이 많이 좋아진 걸 사진으로 확인하고 나니 앞으로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을 육체적으로도 돌보는 일이 왜 중요한지 체감한다.
처음으로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고, 비록 내려간 화살표에 슬퍼하지만, 펀드도 몇 개 들었다. 방학 숙제로 내야 해서 적던 용돈 기입장 이후로 다시 가계부를 적기 시작했다.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를 확인하니, 왜 버는지, 얼마를 일 해야 적당한지, 어디에 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쓸데없는 소비만큼 줄여야 하는 게 넘치는 노동이다. 불필요한 일을 줄일 것. 해야 한다면 그냥 해버릴 것. 돈은 배우는 데 쓸 것.
또 1년이나 같은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고,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철학책들을 재미 붙여 보았고, 싫어했던 선생님이 국사 선생님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멀리했던 한국사를 다시 공부했다. 그리고 혼자 여행을 처음 가봤다. 올봄과 여름 사이는 정말 극도의 노잼 시기였다. 펑펑 울며 보았던 올림픽도 끝나고, 한참 의욕을 가지고 빼곡하게 진행하던 프로젝트도 방치되었다. 모든 게 지겨웠다. 그래서 처음으로 혼자 떠났다. 열심히 걷고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지난날, 부지런히 다닌 탓에 가보고 싶었던 곳은 거의 다 가봤다고 느낄 만큼 많은 여행을 했다. 과거를 미루어보아, 삼십 대의 나는 영원히 떠돌아다니며 살 줄 알았다. 지겨울 때 그만두고 떠나도 다시 돌아오면 할 수 있는 게 좋은 직업의 기준이라고 생각할 만큼, 언제든 떠나고 싶어 했다. 나도 그 도시도, 서로 모르는 곳에 머물다 또 훌쩍 떠나는 게 좋았다. 비행기 티켓을 끊을 때 토할 것 같은 떨림, 공항에 내리면 맡아지는 공기, 계획을 그려두는 다이어리의 첫 장 같은 종류의 설렘에는 영원히 면역되지 않을 거라 믿었는데, 굳은 믿음이 무색하다. 여행이 시큰둥하고 심지어 소모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매일을 보내는 장소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익숙함을 사랑하게 되어서 그런가 보다, 추측할 뿐이다. 소모적인 일시 정지, 그다음으로 넘어가야 할 때가 와버렸다. 좋아하던 것이 바래는 모습이 애처롭고 아프다.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올해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많이 배웠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이 아이들이 나에게 퀘스트를 주는 게 분명하다. 다른 사랑의 형태도 그러하듯, 어쩔 땐 아이들의 마음이 무섭기도 하다. "선생님은 어른이에요?" 물어오는 친구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다가 이주 만에 연필을 들고 그리기 시작한 친구도, 심하던 틱도 잊고 집중하는 사랑스러운 친구도, 모두 나에게 넘치게 많은 배움을 준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이 얼마나 큰 노력과 마음을 필요로 하는지 어렵고 또 어렵다. 알고 있는 게, 알려줄 게 아무것도 없고, 그나마 쥐고 있는 건 너무 별것 아니다. 갈 길이 아득히 멀다.
습관처럼 '사랑해 다선아'라고 맺는 일기의 끝이, 진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 많이 울기도 했다. 뻔함 500%의 이야기지만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는 걸 알고, 깊게 실망하고 나는 왜 이럴까 지치기도 했다. 안 좋은 마음들을 이기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습관이 되었으면 싶은 마음으로 하루들을 보냈고 지금도 그러고자 노력한다. 예술을 해야 가난한 예술가라도 되므로, 여전히 모든 일을 지속하기로 한다. 부디 떠오른 마음보단 가벼운 글들로 되짚어보길 바랐는데, 정리가 더 안 되는 것만 같다. 차분하게 또 내년을 걸어 나가길. 고생했고, 내년에도 잘 부탁해.
작년에 쓴 결산 스물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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