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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Dec 09. 2020

가을의 독서노트

가을에 읽은 22권의 책

겨울의 독서노트 https://brunch.co.kr/@chocowasun/79     
봄의 독서노트 https://brunch.co.kr/@chocowasun/87
여름의 독서노트 https://brunch.co.kr/@chocowasun/91


여름에 읽은 21권의 책


여름에 읽은 21권의 책


소설          



어른들의 거짓된 삶 _엘레나 페란테


책은 영상과 경쟁해야 한다. 드라마도 영화도 형태를 바꿔야 하는 시점에 책이 취할 포지션이란 생각이 든다. 상상으로 붙들어 매 놓고는, 대체할 수 없는 흡입력으로 집중하게 한다. 두 시간 정도 기대 누워 한 숨에 내달렸다. 그러한 면에서도 좋고, 주인공에 이입이 되는 점에서도 좋다. 반항하고 싶고, 예쁨 받고 싶으면서도 삐죽거리게 되는. "저는 제가 못생기고 못된 것 같아요, 그런데도 사랑받고 싶어요."는 한 때 모두가 가졌던 마음이다.


가족 안에는 소음이 있기 마련이다. 소설의 보편성과 특별함이 여기서 나온다. 그러면서도 결국 가족을 찢고 사랑에 뛰어든 고모의 삶을, 야윈 엄마의 삶을, 연약하지만 잠시 빛이 나는 아버지의 삶을, 답습하는 주인공이 제목 그대로 거짓말을 하며 어른의 삶에 편입되는 과정을 담았다. 나폴리의 이 대가족을 보며 어디서든 짠내가 불었던 피란이 생각났다. 대가족의 식사에 순서가 밀려 한참 기다렸다 먹게 된 생선 스테이크. 고개를 돌릴 때마다 바다가 보이던 북적이는 시골집.


 고모에서 팔찌로, 첫사랑으로, 다시 자신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성장 서사와도 닮았다. 빠져서 기꺼이 누렸던 어떤 이야기들처럼 주인공들의 소식이 끊긴 건 여기에서 뿐이고, 분명 지속될 것이라고 믿게 되는 마법이 있다. 나폴리에 가보고 싶다. 그리고 열병을 앓을 까 두려운 페란테의 4부작도 꼭,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언젠가 읽어 볼 다짐을 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_델리아 오언스

진짜 재밌는 소설은 이렇게 한 숨에 읽게 된다. 읽는 내내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약간 시달렸지만, 잊을 만큼 집중했다.  덮을 수 없었고, 아름다웠고 눈물을 조금 흘렸다. 자신이 살아온 곳을 이렇게 그려내는 게 자연에게 돌려주는 길일지도 모른다. 날씨와 풍경 묘사는 앤이 떠올랐고, 외롭고 단단한 소녀는 어른들의 거짓된 삶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모든 부분이 구구절절 좋다기 보단 오랜만에 이런 식으로 좋은 소설을 만나 행복하다. 책을 읽고 난 다음 누우면 뭔가 해냈다는 기쁨에 잠이 늦게 온다. 책의 종이 두께만큼 좀 더 나은 버전의 내가 되고 만 기분도 든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데 아직 한국어 번역본이 없는 모양이다. 영어가 안되네 영어가...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_수잔 콜린스

헝거 게임 시리즈답게 흡입력이 역시 좋았다. 화장실 때문에 끊기는 시간도 아까웠다. 내리 네 시간을 달리게 하는 속도감이 후회 없는 읽는 재미를 준다. 조금씩 흘렸던 이야기들을 주워 담는 프리퀄 느낌으로는 충분했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과 영화 화이가 생각났다. 스노우는 원래 스노우였나, 아니면 스노우가 되어버렸나. 길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으나 소설의 맛이란 이런 것! 흡족하게 책을 덮었다.






돌이킬 수 있는 _문목하

영화 마녀와 무간도, 서던 리치를 잘 섞어서 k-맛을 한 스푼 첨가. 강력한 힘과 탄생의 비밀이 있는 구자영(마녀)이 조직에 들어가는 언더커버 경찰(무간도)인데 탑으로 불리는 구덩이로 들어가는 요원(서던 리치)이 되었다.  마지막은 시점을 바꿔가며 너무 설명 위주라 싱겁다.






보건교사 안은영 _정세랑

뭐 먹고 싶냐 물으면, 항상 상큼한 게 먹고 싶다는 대답뿐이 나오지 않는다. 이게 바로 상큼이다. '지구에서 한아뿐'보다 더 좋았고 다음 편을 기다린다. 정세랑 작가의 성장을 응원합니다, 오래오래 써주세요.


+) 넷플릭스 안 봤지만 캐스팅 찰떡이다. 유미 여신이 아닌 안은영은 상상이 안된다







시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_허수경

고향을 그리워하고 진주 말로 바꾼 어투. 타국에서 그곳이 있지 않지 않은 것에 대해 부른다는 점에서 백석을 느꼈다. 번역하듯 앞의 시를 사투리 혹은 본인 말로 반복해서 나온다. 그래서 '거울 들판'으로 시집이 시작됐나 싶다. 전체적으로 시의 배경이 과거의 어느 한 시대에서 쓰인 듯했다. 돌아가고 싶기도 두렵기도 한 마음(저 물 밀려오면). 그럼에도 느껴지는 한 줄기 희망이 고인이 된 시인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다해 기억하려는 이유다.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_김희준

몽환적인 불행. 일부러 모호한 성별을 의도한 듯하다.


+) 자궁을 문학의 소재로 삼는 건 영 내키지 않는다. 그냥 장기 중 하나일 뿐이라고.






가을 떡갈나무숲 _이준관

'눈을 뭉치며'와 '꽃에게'가 좋았다. 조선시대 동화 속 머무른 한 장면 같다. (그만큼 맑기도 하고, 처녀 누이 아낙 등이 많이 나온다는 뜻). 한자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몇 년 만에 들었다.






바람은 그냥 바람이게 구름은 그냥 구름이게 하고 _김시현

배곫고 궁한 시절에도 사람 살이는 같다. 끓는 마음과 회한이 묻어있는 짧은 어조가, 시집에선 드물게 사진과 함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예전 단어들이 많다. (다른 책들도 그렇듯 옛날 남자가 썼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함)

좋았던 시 <성묘길에서> <우산> <흙> <여름 별곡 2> <자화상> <삶>






눈사람 여관 _이병률

겨울이면 다시 읽어야겠다고 다짐만 했던 책. 왜인지 긴 심호흡 끝에 망설이다 읽게 된다. 너무 날카롭게 갈린  몇몇 문장들은 얇은 종이 같아서, 가늘게 베인 손처럼 은근하게 따끔거린다. 여전히 좋다니. 아직 괜찮다고 안심하게 되는 어린 마음.







비문학



그을린 예술_심보선

3년 전 빌려 읽고, 이번 기회에 소장했다. 작가의 매니페스토가 담긴 책으로 서문과 마지막이 연결이 된다. 5부 예술과 민주주의를 먼저 읽고 중간을 읽길 추천한다. 소원을 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읊조리는 말은 '창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힘을 주세요'인데, 이에 대한 대답에 가까운 책이 아닐까 싶다. 필사하면 글 실력이 늘 듯하다. 밑줄 치며 공부하듯 읽었다. 실천하는 예술. 삶과 예술.  일상과 맞닿은 지점에 불을 질러 그 속살을 해부한다. 그을리고 만 일상에서 예술이 나온다.


읽고 덜 해소된 마음에 다시 보고 싶었던 책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 가오싱 젠의 <창작에 대하여>, 김사과 <0 이하의 날들>에서 힙스터는 어디에 있는가,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반딧불의 잔존>.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_호프 자런     

지구를 나눠 쓰는 인류들은 풍요로워졌지만 여전히 곪는 구석이 있다. 왜일까? 에 대한 접근을 좀 더 다각도에서 과학자의 이성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책이다. 인구, 농업, 축산업, 어업을 넘어 설탕과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풍요로워졌고, 얼마나 잔인하게 파괴해 왔는지도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코 끝이 매워지는 슬픔도 있다.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익숙한 비교도 풍부하다. 1부셸은 비행기 체크인할 때 들고 탈 수 있는 최대 트렁크의 무게. 도심의 빛은 신경세포의 가지 돌기와 같고, 고속도로는 축삭 골기라는 점.  마트로 향한 일곱 대의 트럭 중 한 트럭은 결국 버려진다는 점. 자신의 삶에서 시작해서 공감하고 다가오게 설명해서, 과학적 지식이 없는 나와 같은 사람들도 머리 아프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현재 상황을 두려워 말고 이해하고 싶게 한다. 내 방 침대에서 이렇게 양질의 수업을 듣고 싶을 때 그저 꺼내어 읽는 것만으로 들을 수 있다니.


나의 작은 행동이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환경 공부를 시작한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산에 커다란 불이 났는데, 비웃음 속에서도 벌새들이 부리에 물을 담아 불을 껐다고 한다.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_이본 쉬나드

친구 책을 빌려 읽느냐고 다 읽지 못했지만 사서 다시 읽을 예정이다. 신념이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지점이 배울 점이다. 의류 염색 중 주황색이 가장 오염이 심하다는 점. 옷장의 주황색을 체크하게 된다.






매거진 B THE HOME

   

자연이 럭셔리다. 서사가 있는 사람.     


 




개인주의자 선언 _문유석

 이 또한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리감이고, 그러기 때문에 써야 하는 건가. 대장금을 인상 깊게 봤나 보다.      





나무를 닮아가다 _린다이링, 잔야란

나무로 만드는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4년을 함께하고 4년이 지난 후에야 하는 말이지만 어쩐지 나무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다듬어 쓰기엔 까다로웠고, 나 같은 나부랭이가 부산물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쓰는 게 낭비와 소모라는 생각에 나무야 미안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종이 가방을 줄이기 위해 나온 비닐봉지를 다시 줄이는 것처럼, 나무도 값싼 플라스틱 가구나 장마철이 지나면 휘어지는 엠디에프 가구를 대신하기 위해 귀찮아도 오래 가꿔 써야 하는 원목으로 다시 돌아가려나. 영국 맛 교수님 이르길, 자신이 써야 할 가구를 만드는 게 가장 어려웠다 했다. 평생 쓸 가구는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우리네 삶이 그렇듯 얼레벌레 만든 가구와 급하게 산 가구를 몇 년 쓰게 되는 결말. 제대로 된 가구를 만들어 대대 손손 물려주는 꿈을 꿔 본다. 최근에 본 가장 감명 깊은 작품은 그림 그리러 온 친구가 나뭇가지를 즉석에서 깎아 만든 이젤.


책은 대만의 나무와 목공예에 대해 다뤘고, 대만은 우기가 길어 바닥에 화로를 둔다. 일본을 참 좋아한다 느꼈는데, 이 바보들. 온돌 짱짱인데. 한국 목공의 수준도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필라테스 바이블 _조셉 필라테스

강한 어조로 몸과 마음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한다. 굳이 사서 볼 필요는 없을 듯.      






그 좋았던 시간에 _김소연

관광지가 고향인 작가의 여행기라니. 여행지에서 썼던 평소의 일기와 시와 사진을 합쳐서 낸 책이다. 시간의 조각을 뭉텅 떼어 고무 찰흙 붙이 듯 연결해뒀다. 순서를 꾸리는 게 까다로웠겠다. 이 시기에 보았기에 좋았다. 달에서 나올법한 책이지만, <끌림>보단  허수경 시인의 <가기 전에 쓰는 글들>에 가깝겠다. 무늬의 뒷모습, 기념품, 마지막 공기 부분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김소연의 첨예하며 둥그스룸한 뉘앙스가 가득 있다.


어떠한 일도 재료가 되는 작가의 여행. 장소에 상관없는 삶이 아니라 매번 다르게 살아내고 그게 재료가 되는 시선이 부러웠던 것일까. 가장 비현실적인 건, 담아내는 부지런함이다. 책을 덮고, 벌써 3년 전에 쓴 보홀 여행기를 뒤적였다. 생경한 걸 보니 모쪼록 많이 쓰고 찍고 남겨야겠다. 먼지가 쌓이던 사진기를 다시 집어 든다. 이런 기분을 주는 소중한 사람. 꾸준히 책을 내줘서 고마운 팬의 마음이다. 계속 오래 써주세요.







동화책




귀 기울이면 들리는 새 관찰 사전 _나탈리 토르주만, 쥐디트 게피에, 쥘리앵 노르우드


얼마 전, 전봇대 줄에 뜬금없이 아름답게 앉아 있던 노란 새가 박새였다. 과수원과 낮은 산이 있는 이곳에서는 온갖 새들이 마당을 오간다. 협동하는 물까치들, 고양이들에게 잡혀온 꿩과 참새 비둘기 등등... 몰랐던 식물도 이름을 알면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집 근처에서 항상 우는 새도 이름이 알고 싶었다. 이런 걸 잘 아는 사람이 일상을 섬세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겠지.


얼마 전 본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 때문에 읽었다. 깃털을 볼 때마다 아름답고 슬픈 그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이들 책이 정말 알찰 때가 많다. 어릴 때 어른들 책에 틈틈이 도전해 보듯 가끔은 아이들의 그림책 보는 시도도 멈추지 말아야지.       






고사리손 요리책 _배영희, 정유정

어릴 때 엄마가 나를 위해 책을 베껴 파일에 넣어주던 기억이 난다. 연필로 그린 섬세한 그림과 엄마 글씨로 써진 책은 비닐이 닳을까 아껴봤다. 그 책을 만들 던 엄마의 마음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요리 이름을 지어준 언어학자인 아빠도 함께.  미지의 세계였던 요리가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요리사를 꿈꾸며 각종 요리 책과 요리 채널을 섭렵하던 때도 떠올리게 한다. 책을 다 읽고 올 겨울엔 수정과를 만들기로 했다.






한이네 동네 시장 이야기 _강전희

한국판 윌리를 찾아서. 장날을 기다려 시장을 갈 때마다 느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이 여기에 있다.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_권윤덕

정말 좋아하는 책인 '만희네 집'을 그린 작가의 작품이다. 모르고 사 왔는데 같은 작가다. 만희네 집에 비해 선이 두껍고 과감한 분위기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그림 그리러 와서 이 책을 보고 침을 줄줄 흘린다. '저 이거 그려보고 싶어요, 이거요! 아니 이거요 이거!'


사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이제는 고양이 별로 떠난 나의 첫 길냥, 얼룩이가 생각나 아닌 밤중에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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