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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Apr 06. 2021

겨울의 독서노트

겨울에 읽은 20권의 책

겨울의 독서노트 https://brunch.co.kr/@chocowasun/79     
봄의 독서노트 https://brunch.co.kr/@chocowasun/87
여름의 독서노트 https://brunch.co.kr/@chocowasun/91
가을의 독서노트 https://brunch.co.kr/@chocowasun/93





사고, 빌리고, 친구 것도 보고 한 스무 권의 늦겨울부터 초봄까지의 독서노트. 추려보니, 책을 빌려오는 엄마의 취향과 그리운 초록 덕분에 환경과 식물에 관한 책이 대부분이다. 정원이 애처로울 정도로 휑한 계절을 보내기에 적절한 처방전이었다. 눈이 많이 왔고, 유난히 추웠던 겨울. 길게만 느껴지던 추위도 서서히 멎더니 어느새 벚꽃잎이 파도 대신 넘실댄다. 책을 직접 빌려올 수 없어 끝까지 보지 못한 것도 많지만, 다 읽은 것만 정리해 남긴다. 목요일 오전에 도서관에서 보내던 평화가 다시 주어지길.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_캐럴라인 줍

좋아하는 걸 섬세하게 알아내는 행복이 여기에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정원으로 되짚어 보는 신선한 관점의 책이다. 언제나 삶에 깃들었던 정원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거니와, 작가가 보낸 삶의 한 부분에 초대받을 수 있다. 


방대한 양을 아우르는 꼼꼼한 조사와 그걸 엮어내는 모습이 <외로운 도시>를 떠올리게 했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사람이 가진 이야기도 워낙 강렬하여 여러 글로 다시 쓰이곤 했는데, 이 책에서 만큼은 불행이 앞서지 않는다. 끝내 휘몰아 빠뜨린 감정, 남편과 나눈 우정과 사랑은 여러 색의 장미에 가려져있다. 그저 지나온 시간들에 있었던 정원의 모습만이 기억될 뿐이다. 작가가 집을 구매하기 전의 모습과 살 때의 모습과 현재 모두 관통하며 나무 한 그루, 꽃 더미가 어떻게 그 공간을 지켰는지 알 수 있다. 촘촘한 설명에 최소한 내가 그 집의 돌계단이라도 되었던 듯한 착각 속에 몰입된다. 마치 예전에 다녀왔던 여행지처럼 사과나무와 부엌의 창가, 오두막 작업실을 머릿속으로 거닐 수 있다. 


정원이 있는 집에 살게 되며  땅과 식물이 주는 기쁨에 그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었던 충만함을 배웠다. 버지니아 울프보단 대부분 남편이 심취하여 꾸린 정원이다. 부모님의 정원일에 감탄과 매가리 없는 호미질 정도 얹는 나이기에 공통점을 찾았다. 마침 비슷한 때에 타샤 튜더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삼십 년 간 가꿔온 그 세월이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여겨진다. 아직 오 년 차는 무릎 꿇어요.  


엄마와 함께 보았는데, 날씨가 이곳과 비슷해서 눈에 익은 식물군이 많았다. 아름답고 부러워 침을 줄줄 흘리며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언젠가 함께할 식물 리스트'에 들어간 애들을 소개한다. 올리브 나무와 개나리 자스민에 이어, 금사슬 나무, 고광나무, 블루벨이 추가되었다. 또한! 지금의 정원 모습을 자수로 남겨보아야겠다는 다짐도 얹어본다. 이런 소중한 책을 알게 되어 기쁘다. 



로드멜에서 좋은 주말을 보내고 돌아오다 - 침묵, 책 속으로 깊고 안전하게 가라앉기, 그러곤 밖에서 산사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마치 파도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맑고 투명한 낮잠, 정원의 모든 초록 터널과 둔덕들. 깨어나니 덥고 고요한 낮. 보이는 사람도 없고, 방해가 되는 것도 없다. 우리만의 장소, 천천히 가는 시간. -1932년 6월 13일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이런 규칙적인 일상은 버지니아에게 안정과 만족감의 원천이어서, 몽크스 하우스에서 보낸 어느 날에 대해 그는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다며 "마치 아름다운 서랍들이 딱 맞물리도록 조립해 만든 완벽한 장식장 같았다"라고 적는다. 



자수 만큼이나 아름답게 짜여진 문장들







사계절 생태놀이 봄 여름 가을 겨울 _붉나무

가족이 함께 만든 생태 책이다. 소름 돋게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다. 


물새는 조금이라도 체온을 아끼려고 한 다리로 서서 잔다. 
물새는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 몸통과 다리가 이어지는 혈관에 혈액을 식히거나 데우는 기능이 있어서 혈액이 몸통으로 들어갈 때는 데워서 들어가고 몸통에서 나올 때는 열을 빼앗기면서 다리로 흘러들어 가기 때문. 
새들은 나무줄기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법을 모른다. 나무줄기를 거꾸로 오르내리는 유일한 새는 동고비.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는 앞다리 종아리마디 위쪽에 있다. 무릎에 귀가 있음!
물총새는 물고기를 잡아 나뭇가지에 부딪혀 죽인 다음 먹는다. 
물방개는 아가미가 없지만 몸통 사이에 공기를 모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 
생강나무는 작은 꽃송이를 덮고 있는 꽃자루가 짧고 꽃 전체를 달고 있는 자루도 거의 없어 꽃이 가지 끝에 바짝 붙어 있다. 산수유는 꽃자루가 길고 꽃송이가 작다. 줄기 연결이 너덜너덜 벗겨져 있으면 산수유. 


궁금하자나요 신기하자나요
너무 귀여운 그림들. 도깨비 풀이 붙은 모습과 진달래를 많이 먹어 입이 다 벌개진 아이들. 그리고 이제는 구면인 붉나무 베이비들. 잘 컸으려나.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_헤르만 헤세

마음이 정화되는 글. 사 년 전쯤 봤을 땐 이렇게 좋지 않았다. 당연히 글씨는 그대로 있었을 테니, 그 사이에 내가 변한 거겠지. 


모든 문장들이 감동으로 다가와 어느 한 부분을 잘라낼 수 없을 만큼 통으로 좋다. 그래도 골라보자면, 테라스 앞에 크게 자라서 그늘을 드리우는 여름 목련 나무가 기억에 남는다. 어찌나 유려하고 섬세한 설명인지 햇살에 비쳐 생긴 그물 무늬 그림자가 종이를 지나 나에게까지 넘어온다.   


식물과 함께하는 일상과 깊은 사유. 이 시간들을 감사히 누려야겠다. 






질문하는 환경 사전 _자크 아장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과 어린이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짧은 내용마다 간단한 그림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다.  유럽을 기준으로 했지만, 한국 버전도 꼭 같이 표시되어 있어 좋았다. 





생태 부엌 _김미수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꼭 있고 그 덕분에 나아가는 것. 숟가락을 얹는 입장에서는 중간이라도 가자 다짐할 뿐이다. 변기와 냉장고가 없음(당연히 가스레인지, 세탁기, 선풍기 등등... 도 없음, 세상에!) 직접 만든 정화 시스템으로 퇴비를 만들고, 태양열로 정말 필요한 전기만 쓴다. 모든 채소들은 제철일 때 병조림을 만들어 저장한다. 병조림이 있는 벽 사진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부부를 보고 배울 점이 많았다. 기록의 소중함을 느꼈다. 





착한 소비는 없다 _최원형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환경책. 다양한 분야에서 경각심을 일으킨다. 짧은 기사들을 모은 형태.





홀로 서지 않기로 했다 _조수희

친환경 공동체를 공부를 위해 다녀온 솔직한 여행기. 좋은 건 좋았던 대로, 안 좋은 건 별로였던 그대로 서술했다. 뭐든 함께 한다는 건 어렵다. 결심한 나와도 매일 충돌하며 지키지 않곤 하는데, 같은 약속을 여러 명이 지키는 건 더욱 어렵다. 그리고 뭐든 과해지면 광신도 집단과 성질이 같아진다. 역시 인생은 혼자라는 멋진 결론? 


- 더 읽어보고 싶은 책

캐런 리트핀 교수의 <지구 공동체, 에코 빌리지를 꿈꾸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시골의 발견, 정원 생활자의 열두 달 _오경아

그림과 정원을 이렇게 연결해보고 싶다. 생각의 확장에 디딤판이 되었다. 세세한 정보도 많이 들어있다.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_박록담 

엄마와 이모가 모아둔 시집들 중에 가끔 고른다. 지금에 비해 정열적이고 연극 같은 분위기가 보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낯간지러운 낭만, 멋쩍게 간지러워진 말들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마음. (예전 시집이라 처녀 여가수 젖가슴 주의... ) 


+) 지금 찾아보니 시인은 전통주 연구가가 되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_박완서

나에게 할머니가 있었다면 




살아남은 그림들 _조상인
<사과밭>을 그리는 오지호를 그린 김주경의 <오지호>

교과서로 배운 한국 근대 소설에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서양 미술사만 줄줄 외워 시험을 치던 나에게 한국 근대 미술은 낯선 영역이었다. 어렴풋하게 알던 작가들을 압축적으로 훑어볼 수 있어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지호 작가의 '사과밭'은 우리 집과 바로 붙어 있는 사과 과수원을 떠올리게했다. 곧 있으면 사과꽃이 피고, 그럼 또 기쁨의 하얀 길을 통과하는 앤의 이 보고싶을 텐데, 그때 엮어 이 그림도 함께 생각해야겠다.  


화집의 작가노트에 따르면 오지호의 대표작품인 <사과밭(林擒園)>(1937)은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한 5월 8일 토요일부터 작가가 과수원을 방문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꽃이 지는 3일 동안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복숭아꽃과 사과꽃의 섬세한 차이와 자칫 놓치기 쉬운 봄날의 정취를 섬세하게 기록하였으며, 이러한 오지호를 관찰한 김주경은 <오지호(吳之湖)>(1937)라는 작품을 남기면서, 계절의 변화에 상대적으로 무심한 자신에게 친구는 일종의 ‘경종’을 울리는 존재이며, 봄볕에 그을은 친구의 얼굴과 봄 동안 온종일 세심한 노력으로 제작한 그의 꽃 그림은 동족(同族)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http://www.daljin.com/column/11297





수학이 필요한 순간

숫자가 아니라 논리 오히려 철학에 가까운 수학 이야기. 과거에 어려웠던 내용이 지금은 상용화되어 모두가 당연히 아는 상식이 되는 게 흥미로웠다. 







도토리 계절 그림책 봄 여름 가을 겨울 _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


밭을 일구는 봄, 비가 내리는 여름, 수확하는 가을, 동물들이 주인공인 겨울. 시간이 흘러도 좋은 책이다. 봄의 모든 페이지가 아름답지만 마음속 최고의 컷은 여름 이야기가 다 끝나고 마지막 종이에 있는 비 오는 장면. (배추밭을 뛰는 소도 압도적 속도감) 화실의 책장에 두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야겠다.  







+)

궁 만화책 정주행

이제는 이 고딩들이...란 생각이 먼저 드는 거진 실버. 후반부 이야기가 꽤 길다. 초딩 시절 새로운 권이 나오면 친구들과 설레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옷은 여전히 예쁘고 그림도 정말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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