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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Jun 08. 2021

봄의 독서노트

봄에 읽은 22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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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독서노트 https://brunch.co.kr/@chocowasun/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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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개구리 소리가 크게 들린다. 애써 들으려 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이 소리가 오기까지, 4권의 소설, 1권의 시,  6권의 산문, 4권의 그림책, 7권의 만화를 읽었다. 그중 8권은 식물이나 그림과 관련된 책이라 따로 묶었다.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이자, 즐거움과 어려움. 인쇄된 글씨들이 주는 위안에 삶의 방향키를 맡겨왔다. 좀 더 깊이 있는 독서로 배우고 싶다, 그게 뭐든지. 때로는 그저 글자와 함께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도 즐겁길. 스스로 피고 진 꽃과 함께 한 봄의 독서노트를 시작합니다.







영원한 유산 _심윤경

유려한 문체가 펼쳐지다가, 중반부터는 빠른 속도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다시 꺼지는 불씨처럼 마무리된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언커크 건물의 생성과도 닮았다. 공간에 대한 관심과 민주화 시기의 보통 사람들.


초반에 다듬어진 문장들이 아주 아름답다. 처음 열 페이지만 읽어봐도 얼마나 잘 정돈된 글인지 알 수 있다. 오히려 글을 잘 쓰는 작가가 귀한 요즘,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아껴두었다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사물의 뒷모습 _안규철

우와, 6년 전에 전시를 보러 간 나
사랑스러운 스케치


국현의 전시인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알게  안규철 작가. 당시 빠져있던 마종기 시인의  제목이라 깊은 관심으로 관람했던 기억이 난다. 관객들의 참여가 있는 대형 작품들과 매달려있던 화분들이 인상 깊었는데, 한참이 지난  책에서  스케치를 마주했다.


무거운 화분이 모빌처럼 전시장의 천장을 유영하는 모습은, 상상과 분석이라는 공존하기 힘든 두 관계를 묘하게 균형 잡게 하는 작가의 글과 닮았다. 짧은 글과 연필로 그린 드로잉이 묶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성인데, 이런 종류의 묘사를 좋아한다면,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을 추천한다. 좀 더 좁고 날카롭다.


나와 생각의 사고가 비슷한 사람이다. 평소에 흘려보내는 수많은 상상들, 만약? 혹은 돋보기 같은 시선들이 닮았다. 어떠한 것은 내 머릿속을 술술 옮겨 적은 듯했다. 퇴임을 앞둔 남자 교수님이지만, 이사 온 지 오 년째 인 마당 있는 집에 산다는 점... 등을 빌어 일상의 패턴이 비슷하여 그리 와닿지 않았나 싶다.


특히 '말들의 폐허' 부분에서 사랑과 희망이 아주 부족한 곳이 오히려 희망 보육원, 사랑요양원이 된다는 점은 평소에 스스로를 체크할 때 쓰이는 주문과도 같은 법칙 같은 거라, 신기했다. 그 외에도 나무가 스스로 골라 가지를 떨어뜨린 다는 것, 씨앗에 관한 단상, 이른 새벽의 소리, 대성당의 보첼리를 보고, 같은 인간 군상의 결이 느껴졌다.


다 읽고 나니, 한 권을 두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필요해졌다. 하루 속에서도 이토록 섬세히 더듬이를 세우고, 발굴해내는 사람을 곁눈질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구가 풍부해진다.






불화하는 말들 _이성복

일기장을 뒤적이듯 책장에서 어떤 책을 고를지 서성이다가 골라, 삼 년 전 그었던 밑줄을 다시 읽는다. 그때의 불안함이 기억나고, 불안함은 여전하고 또 달라졌음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던 글을 통해 확인한다.


시를 읽게 되는 이유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엔 내가 들어갈 자리가 넉넉하다. 그걸 다시 한번 시인을 통해 배운다. 덧붙여, 다시 보니 엮어낸 사람들, 아마 제자들이겠지, 김수상, 박주연 두 분, 우주 고생하셨어요.



여전히 좋았던 부분

항상 막막함을 앞에다 두세요.
접혀있던 것들을 펼치는 것 외에 다른 발견은 없어요.
그렇지만 귀한 건 다 어렵게 얻어져요.  
좋은 것은 언제나 말할 수 없는 것이에요.
항상 평범한 걸 귀하게 생각하세요.





도움받는 기분 _백은선

사려고 캡쳐해뒀다가 삼

전하고 싶은걸 잘게 잘라 모자이크로 붙여 만든 시들. 우연에 기댄 데칼코마니 같은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연극의 장면, 글씨로 지은 무드 보드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실험에 가까운, 많이 읽던 종류의 것은 아니었으나 가끔은 이런 것도 좋다. (이 시집을 읽고 나면 래원의 랩 스타일이 고도의 문학? 무려 시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놀라운 사실)


좋았던 시

히시 / 콜미 바이 유어 네임 / 모든 것과 없는 것과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 / 중심을 향해 다가가기 색의 방식으로 도피하기



폭풍의 언덕 _에밀리 브론테

어릴 때 책의 삽화를 보고 무서워서 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도 무섭군. 잔인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뭔가 미녀와 야수 세트장 같은 홀의 벽난로 앞에서 드레스를 입고 읽어야 할 것 같다. 당연히 저녁 먹고 커다란 개와 함께 모닥불을 쐬는 중이어야 함. 현실은 곰돌이 무늬 이불 위에서 코끼리 바지를 입고 옆으로 누운 자세 ㅎ





에이번리의 앤 _루시 모드 몽고메리

넷플릭스에서 앤을 봤는데, 한 화마다 꼭 눈물이 나서 밥을 먹으며 보기 힘들었다. 매슈 아저씨가 나의 눈물 버튼. 앤은 이야기 속에 살다가 영상으로 나온 듯 앤 그 자체였다. 마릴라 연기는 어떻고... 브로치 때문에 앤 쫓아내고 불안해서 마루 닦을 때 미치는 줄 알았다.


엄마랑 눈물 닦고 코 풀며 종영한 후, 그 여운에 책을 샀다. 내가 봤던 동서문화사의 10권짜리가 아닌, 축약본이지만 그림이 함께 있는 시공주니어의 3권짜리 세트다. 지도나 도면 보는 거 환장하는 데, 너무 예쁜 그림이 앞쪽 페이지에 있다. 좋아하는 부분을 글로 복습할 때 만족스러웠다. 에이번리의 앤에서는 천방지축 삼인방 데이비와 도라, 폴까지 등장한다. 사고 치는 것만 내용의 반 정도 될 듯하다. 앤도 그랬듯, 그럼에도 사랑스럽다.


덧붙여, 길버트와의 사랑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앤의 성장이 중심이고, 길버트는 양념 같은 거다. 그래서 조금 나온다. 그걸 드라마에 욱여넣다 보니 시즌이 거듭될수록 사족이 많았다. 마릴라와 매슈와 이루게 된 가족이라는 울타리, 다이애나와의 우정, 친구들과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중심이다. 상처 입은 어린 영혼이 한 어른으로 자라나는 감동 어린 모습을 책과 영상으로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시즌 4 내놔 ㅠㅠㅠ



드라마의 여운에 폰 배경화면 해뒀다





산책자를 위한 자연 수업 2 _트리스탄 굴리

웅덩이에 대해 9장을 떠든다. 웅덩이에 대해 이 만큼 생각해 낼 수가 있나? 웅덩이.. 덩이 웅... 스르르... 이 작가의 변태 같은 집요함에 빠져들게 된다.  


자연 수업 1은 산과 들에 관한 이야기였고, 2는 물이다. 1이 더 좋았다. 나는 수영도 못하며 세수할 때도 숨을 참는 사람이니까(무상관). 비슷한 책으로는 중학교 때 학교를 강타했던 시크릿 키친이 떠오른다.  






좋아하면 울리는 _천계영

앤 처럼, 드라마를 보고 예전에 읽었던 기억에 중고로 샀다. 만화를 폰으로 못 보는 구시대 사람이라, 책이 더 편하다. 좋알람이라는 설정이 이미 천재인데, 그걸 풀어내는 방식으로 천재 만재 지니어스인걸 증명한다.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 작가님 쾌차하세요.








식물과 그림에 관한 책들


정원가의 열두 달

순둥이가 있던 서점에서 샀다
작가의 형이 그린 그림. 완전 나잖아!


호스랑 춤추다 물 뒤집어쓰는 거, 뿌리 뽑다가 돌아버리는 거, 겨울에 실내 정원 실패하면서 다시 거듭하는 거... 다 나다. 웃음과 진지함이 함께 있어 좋았다. '공부란 무엇인가'를 쓴 김영민이 정원을 가꾸면 이런 글 쓸 거 같다.  


착한 눈망울의 개가 있던 조용한 서점의 사장님이 계산하는 1분간 이 책을 요약해서 들려주셨는데, 어쩜 그렇게 요약 달인이신지 기가 막힌다. 책 읽기 귀찮은 사람들은 사장님한테 들으면 다 읽은 거랑 똑같다. 마당이 허전한 겨울에 담요 덮고 킥킥거리며 다시 볼 예정이다.






높은 산의 모험, 바다 이야기 _질 바클렘

정말 '닳을' 만큼 많이 본 책이 있다. 질 바클렘의 찔레꽃 울타리 시리즈다. 수원의 어느 책방에서 그 책을 처음 본 날, 너무 흥분해서 침을 줄줄 흘리며 그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 덕분에 엄마가 양장본 4권 세트를 사준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곁을 지켜온 책인데, 문득 생각나 찾아보니 작가의 다른 책이 있어 떨리는 마음으로 주문하고, 손꼽아 기다리다가 아껴 읽었다. 익숙한 그림체에 새로운 그림이라 속으로 비명 지르며 봤다. 사계절 시리즈만큼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아름답다. 이야기를 집중해서 보면 머위 너무 민폐라 스트레스받는다. 바닷가 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_김두엽

따뜻한 작품들과 보편적이지만 고단한 사연.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게 한다. 선물 받은 책인데, 나눠 보라고 주신 그 마음만큼이나 좋았다. 마음에 드는 그림 몇 개와 보고 떠올랐던 로즈 와일리 전시에서 찍은 사진, 그리고 찾아본 인터뷰.








씨앗 빌려주는 도서관 _미셸 멀더, 그림 설은정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 마음이 찡하다.

그림책을 몇 권 샀더니, 알라딘의 추천 알고리즘이 나를 어린이 도서로 이끌었다. 수채화 그림이 끌려 샀다. 다 읽으니 제목이 아쉽다. 외로운 아이와 부족한 부모, 나를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곁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입체적인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인생은 원래 혼자고 외롭단다 친구야. 그래도 식물에게 위로를 받아 다행이다. 아예 다른 이야기인데, 정말 옛날에 본 영화 비투스가 생각났다. 천재 피아니스트와 유일한 위로의 존재인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할아버지에 대한 반전은 페란테의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떠올리게 했다.







빨강머리 앤의 정원 _박미나

마음이 따뜻해진 두 선물. 클로버 화관과 앤. 앤 드라마에 빠져 허덕일 때쯤 어떻게 알고,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선물 받아 신기하고 고마웠다.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_임이랑

앤에서 표현하는 영혼의 친구처럼 나와 결이 같은 사람임이 느껴졌다. 실내에서 화분에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일상을 볼 수 있다. 딱 식물에게 필요한 햇살의 온도만큼 따뜻하고, 식물이 내는 소리만큼 평화롭고, 식물이 가진 잎만큼의 무게로 읽혀서 좋았다.





수채화로 그리는 아름다운 꽃 _패트리샤 샐리먼

오래전, 엄마가 사놓은 책을 이제야 본다. 실패와 성취, 망설임이 차곡차곡 누적된 스케치북은 아주 내밀한 곳이다. 김연수가 다 벗고 사람들 사이를 걷는 것과 같다고 고백한 소설가의 초안과 유사하다. 그림에 대한 이성적 접근으로 정리해낸 분석, 창작하는 즐거움, 관찰과 기록의 중요성,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작품들이 같이 녹아있다. 책 자체로도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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