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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l Jun 08. 2019

아일랜드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기

① 게임 회사 현지화 테스터, LQA Tester

일주일에 적어도 한 개의 브런치는 작성하자는 약속을 생각보다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처음 더블린에 왔을 때는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강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 삶에 익숙해지면서 편한 것을 찾으려다보니 요즘에는 쓰고 싶은 주제 메모도 안하고 있다. 다시 초심을 찾을 때다.

오늘 출근길 아침. 날씨가 맑았는데 오후 되니 다시 비오고 우중충해졌다.

아일랜드에서 지낸 지 두 달하고도 아홉일 만에 일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일을 그만둔 시기까지 합치면 3개월+9일인 것 같다. 처음에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대부분 워홀러들이 직종으로 선택하는 웨이터나 키친 포터(주방 청소), 커피숍 알바 등을 생각했는데 마음 한 켠에는 사무직으로 일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나는 아르바이트 경험이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없어서 나보다 어린, 이미 한국에서 각종 알바 경험이 있는 다른 워홀러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또 애초에 워홀 자체를 '탈한국'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워크 퍼밋을 받을 기회를 발굴하기 나은 사무직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선택하게 된 일은 한 게임 회사의 현지화 작업이다. 영어로는 Localisation Quality Assurance Tester. 줄여서 LQA Tester라고 부른다. 게임을 특정 국가에 런칭하기 전에 해당 국가의 언어로 번역된 작업과 전반적인 게임 퀄리티를 체크하고 오역이나 버그가 발생하는 지점을 바로 잡는 일을 한다.


아일랜드 워홀러가 사무직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보통 LQA 테스터다. 다만 다양한 상황에서의 영어 소통이 어느 정도 돼야 하고 한국어도 문법과 맞춤법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워홀러들에게 열려있는 기회는 아니다. 한국어 문법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수많은 한국인 중에서 맞춤법을 틀리는 경우를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특히 '대'와 '데'의 용법을 틀리는 경우가 많은데 볼 때마다 스트레스... 아 내 눈... 살려줘... 번역 작업과 번역 검수를 하는데 이런 기본적인 맞춤법 오류조차 잡지 못한다면 게임 플레이어가 받을 스트레스는 어마무시해지겠지. 혹은 잘못된 맞춤법이 시중에 확산돼 결국엔 잘못된 단어를 공중파에서도 볼 수 있게 되는 등 파국 같은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실제로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전문적인 기술 없이는 해외에서 사무직으로 취직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문과를 나온 나 같은 사람이 발굴할 수 있는 직종은 아무래도 한국어를 필요로 하는 포지션이다.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이중 언어 소지자로서 직업을 구하다가 LQA 테스터로 지원을 하게 됐다.


물론 아일랜드에서 사무직이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다. 사무직으로 일하면 세금도 많이 떼고 무엇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받을 수 있는 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알바보다 월급이 적을지도 모른다. 한국과 달리 직업에 귀천이 크게 구분돼 있지 않다는 점은 아일랜드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회사에서 밟은 내 구직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Indeed라는 구직 사이트에서 서류 접수 → 언어 테스트 → 화상 인터뷰 → 합격 통보 및 프로젝트 대기 → 프로젝트 수락 후 이틀 간 트레이닝 후 짧은 테스트 통과 → 작업 시작


이 회사 같은 경우는 서류 검토에서 통과하면 짧은 테스트를 진행한다. 인사 담당자와 메일로 언제 몇 시에 가능한지 이야기를 한 후 인사 담당자가 약속한 시간에 정확하게 메일을 보낸다. 나는 주어진 시간 내에 테스트를 완료한 후 답장을 보내면 된다. LQA 테스터는 통역사나 한국어 스페셜리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이미 번역된 문장 중 올바른 문장을 고르거나 동의어를 찾는 등의 테스트를 받는다.


참고로 다른 회사에서 한국어 스페셜리스트를 뽑기에 지원을 한 후 90분가량 이어지는 번역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상당히 까다로웠고 결국 떨어졌다. LQA 테스터와 언어 스페셜리스트 간의 차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테스트는 4월 중순에 진행했으며 며칠 안 돼 테스트에 통과했다는 메일과 함께 화상 면접을 봤다. 면접에서는 자기 소개와 함께 왜 이 직종에서 일을 하고 싶은지, 특정 상황을 제시한 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본인의 근무 스타일은 어떤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어떤 일이었는지 등을 물어본다. 30분가량 진행했고 나는 미리 준비를 하지 않아서 사실 그룹으로 일할 때 직면했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라는 질문에서 전혀 생각이 안 나서 나름 improvising(임기응변)을 하기도 했다.


합격을 해도 당장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 이 직종이 프로젝트성 기간 근무제이기 때문에 언제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을 못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면접에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은 것이 4월 25일이었고 6월 6일부터 출근을 했으니 43일 간의 대기 시간이 있었다. 그 동안 뭘 했냐고? 놀고 또 놀고 운동하고 다른 회사 찾아보고의 반복이었다.


지금 일을 받긴 했지만 이 작업은 일주일짜리 프로젝트에 불과하다. 그 이후에는 또 다시 백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다리거나 다른 회사에 지원을 해 안정적인 일을 찾거나 해야 한다. 기간 근무제이기 때문에 워크 퍼밋을 받기는 쉽지 않고 회사 입장에서도 이 노동자가 특출난 능력이 있지 않고는 워크 퍼밋을 줄 이유가 없다. 그래도 잠깐이라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다.


더블린에 있는 대부분 회사는 시내 중심부에 없다. 있어도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더블린 항구(Dock) 쪽이 대부분이다. 밋업에서 만난 아이리쉬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말을 했다. "더블린은 런던이나 파리처럼 세계 대전 도중에 대규모 폭격을 받은 적이 없어서 건물이나 도로가 다 구식이다. 신식으로 바꿀 이유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이 때문에 대규모 부지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은 근교로 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영국은 고건물을 최대한 유지하는 정책을 갖고 있지만 더블린은 그냥 애초부터 건물이 무너질 이유가 없어서 그대로 유지되는 것 같다.


더블린에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경기도 판교처럼 따로 조성된 기업 단지 내에 입주해 있다.


로고가 잘 안 보이지만 가운데 멀리 있는 건물이 마이크로소프트다.


지난 이틀 동안 회사 투어를 했고 테스터로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등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다. 교육 기간 마지막 날인 오늘, 최종 테스트도 합격해서 다음주 월요일부터 바로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될 예정이다. IT회사라서 그런지 보안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무실 내에서는 핸드폰을 비롯한 개인 IT 기기를 쓰지 못한다. 단순한 충전도 할 수 없고 책상 위에 핸드폰을 두지도 못한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서 두어 차례 핸드폰을 집어 넣으라는 지적을 받았다. 전화를 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는 등의 작업은 휴게실이나 사무실 바깥 공간에서만 허용된다.


1층에 식당이 있는데 직접 사먹어야 하고 카드를 받지 않는다(!?). IT회사인데도 컴퓨터가 느린 점은 엄청난 단점. 컴퓨터마다 차이가 있는데 빠르지 않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점이다.


아, 오늘 아침 휴게실에서 누가 인사하길래 봤는데 게이 시어터 페스티벌에서 같이 일했던 Sjaak였다. 사실 엄청 끼순이라서 친해질 구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회사에서 만나다니 신기했다. 그런데 동시에 오늘이 이 회사에서 근무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역시 맞는 사람은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했다. 구글로 이직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그동안 해왔던 일이 아닌, 버그 잡는 일이라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것 같지만 나에겐 또 다른 도전이다. 회사에 대해서 더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비밀계약 유지서(Non-Disclosure Agreement)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에서 한국어로 서칭까지 하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회사 이름과 구체적인 직무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중 언어 실력으로 아일랜드에서 직장을 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팁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번 브런치를 작성해봤다. 차후 재미있는 일이 생길 때까지 Slán(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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