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아일랜드 사무직, LQA 테스터...다음 프로젝트는 언제?
더블린에서 일을 한 지 약 2주가 지났다. 오전 8시 59분에 더블린 남쪽으로 가는 루아스를 타고 약 20분 간 달린 이후 내려서 10분 동안 걸어서 기업 단지 가장 끝에 있는 건물까지 들어가면 출근 시간인 9시 30분까지 적당히 들어온다. 사실 출근 시간보다 조금 늦게 와도 아무도 뭐라고 안한다. 매우 유동적인 환경. 퇴근 시간만큼은 6시에 모두 칼퇴근. 출근 시간 만큼이나 유동적인 것이 내 업무 사이클이다. 오늘은 이 직종의 단점을 좀 써보려고 한다.
일단 내가 다니는 회사는 Keywords Studios라고 더블린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인디드(Indeed) 등 구직 사이트에서 자주 봤을 법한 회사다. 더블린에 터를 잡고 있는 아일랜드 게임 회사인데 주된 업무는 게임 개발이나 번역,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현지화 업무 등을 외주 받아서 처리하는 것. 그래도 유럽은 물론 북미, 아시아 등에도 지사가 있는 글로벌 게임 개발 외주업체다. 더블린에서는 번역과 현지화 작업을 하는 오피스만 있다고 한다.
LQA(Localisation Quality Assurance) 테스터는 풀어 쓰자면 '현지화 퀄리티 보장 테스터'. 거의 최종에 가까운 게임의 번역 상태와 함께 버그를 체크하고 보고하는 일을 한다. 타깃 국가의 언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하고 영어는 어느 정도 소통만 되면 되기 때문에 크게 요구하는 능력이 없다. 게임을 잘하거나 꼼꼼함 정도가 필요한 직종이다. 그만큼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계약직이 많다는 것.
이 회사의 3분의 2는 거의 테스터들로 이뤄져 있다. 정규직은 프로젝트 매니저, 팀 리더, 교육, 인사 정도. 물론 번역팀 같은 경우는 언어에 따라서 정규직이 있는데 한국어를 비롯한 아시안 언어는 연 단위 계약직으로 뽑더라. 즉, 한국인으로서 워크 퍼밋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굉장히 희박한 회사라는 뜻.
회사마다 QA 테스터 채용 방식은 다양하겠지만 일단 이 회사는 채용 시켜 놓고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연락을 해서 일을 맡긴다. 즉, 꾸준히 일을 계속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현재 프로젝트가 끝나면 언제 다시 프로젝트가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프로젝트 당일 혹은 시작 하루 전날 연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미리 일정을 잡기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여름 시즌에는 출시하는 게임이 많아서 프로젝트가 꾸준히 들어오는데 비수기가 되면 또 일이 떨어져서 수입에 구멍이 생긴다.
불규칙한 업무 환경 때문이라 그런지 같은 팀 내 사람들과 친해지기도 쉽지 않다. 몇 주간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에서 만나게 될지, 아니면 퇴사를 할지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도 오래 다닌 사람들을 보면 친하게 지낸 사람들도 있고 하는 것 같은데 일단 난 이 회사에 마음이 떠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많이 줄었다.
현재도 난 내 상태를 구직 중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워크 퍼밋을 받아야 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그게 참 힘들다. 내가 해외에서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경력이라고 해봐야 기자 5년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꼭 다녀보고 싶은 회사가 있었는데 결국 전화 면접에서 떨어졌다. 면접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아쉬운 마음에 그날 정말 많이 우울했다. 기자 경력 정말 하잘 쓰잘데기 없다고 생각했던 날...
일단, 7월에는 다른 회사로 옮길 예정이다. 이 회사도 계약직이고 테스터 업무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유명한 게임 회사고 계약을 맺은 기간 동안에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회사보다는 조금 조건이 낫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 회사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어서 워크 퍼밋을 받을 기대는 안하고 있다. 그래도 뭔가 나름 기회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를 해본다.
+덧)
오늘 수영장에 다녀왔는데 황당하지만 신기한 일이 있었다. 레인을 한 다섯 바퀴 돌고 들어오는데 갑자기 물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앞에 본인 애기와 함께 있던 여자가 "누가 똥 쌌나? 애기야, 네가 쌌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도 황급히 밖으로 나와서 상황을 지켜봤다. 이날 오후 3시쯤 갔으니까 반대편 풀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대거 수영을 하고 있었고 그쪽 물 색은 어른 풀보다 갈색이 더 많이 퍼져 있었다. 그쪽 풀장에서 무언가 더러운 행위로 추정되는 일이 발생했고 그게 어른 풀장까지 넘어온 것 같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누가 오줌 쌌을 때 물 색이 바로 바뀌는 그런 일을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시스템이 돼 있다는 것 자체로 재미있고 신기한 마음 반, 지금 수영 시작한 지 15분 밖에 안 됐고 몇 바퀴 더 달려야 성이 차겠는데 김이 확 새버려서 짜증나는 마음 반이 교차했다. 곧 물을 바꾸겠지 싶었으나 아일랜드를 과소평가했다. 로그인 기록도 몇 분이 지나야 알려주는 느린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물을 당장 바꾸겠나. 결국 사우나 들어가서 20분 정도 있다가 샤워하고 집에 갔다. 이날 소동으로 인해 수영장은 오늘 빠르게 문을 닫았다. 보상 따윈 없었다.
그런데 방금 짧은 구글링을 해봤는데 수영장에서 소변을 봤을 때 어떤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알려주는 Urine dye indicating pool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 소변을 본 것이 아니라면 뭔가 수도관에서 문제가 생겼거나 했던 것 같다. 앞으로 수영 다닐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