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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l Apr 04. 2019

나이 서른에 시작하는 아일랜드 워홀

홍콩에서의 11시간 레이오버는 못할 짓

아일랜드에 온 지 오늘로서 일주일이 지났다. 홍콩에서의 레이오버까지 합쳐 총 27시간의 비행 시간을 지난 후 새벽 6시에 아일랜드에 도착한 그 날부터 이틀 빼고 매일 밖으로 나갔다 왔다. 아일랜드 날씨는 정말 듣던대로 변덕스럽고 타운 센터는 흥미진진하지만 오늘처럼 집안에만 있으면 재미있는 일이 생길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미루고 미루던 블로그를 쓰고 있다.

홈스테이 내 방에서 보이는 풍경. 처음 며칠은 햇빛이 쨍쨍했다. 오늘처럼 춥거나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 완연한 봄날씨였는데...


앞서 써놓은 일기를 보니 이튿날에 여러가지 경험을 한 것 같다. 립카드를 대고 목적지를 말했으나 나를 어린이로 취급한 버스 운전사가 1유로 밖에 청구를 하지 않았거나, 리피강 근처에서 잠깐 핸드폰을 열었던 순간 어린 청소년으로 보이는 애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와 두려움에 떨었다거나, 우연히 어떤 분과 연락이 닿아 기뻤다거나.


인천공항. 내가 탈 비행기는 아니지만 같은 회사의 캐세이퍼시픽.

But let us all start from the beginning. Layovering for more than 11 hours in Hong Kong wasn't such of a cheerful experience. 홍콩 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덥석 11시간 45분을 경유 하는 비행기표를 골랐으나 정말 너무 힘들었다. 일단 홍콩 물가가 결코 가벼운 수준이 아니었다. 날씨는 내가 예상했던 더운 날씨도 아니었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우중충충해지면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홍콩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없었는데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쇼핑에 흥미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너무 지겨웠다. 결국 미쉐린 별을 받았다는 거위다리국수만 한 그릇 말아 먹고 공항 가는 버스를 타고 출발 6시간도 훨씬 전에 공항에 와버렸다. 아, 잔돈이 마련되지 않아 탑승객들에게 100홍콩달러를 작은 돈으로 바꿔달라고 구걸 비슷한 것을 했다. 결국 마음씨 좋은 현지인 할머니께서 옆자리 할머니 지갑까지 털어서 돈을 바꿔주셨다. 이건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결국 내가 직접 나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작은 교훈을 준 경험이었달까. 어쩌면 나의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홍콩에서 딤섬을 먹고 싶었는데 이조차 하지 못했다. 아쉽지만 딤섬은 한국에서도 많이 먹었으니까 미련 없다. (정말?)


얏룩에서 먹은 거위다리국수. 거위다리가 일품이다. 뼈가 단단하기 때문에 먹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 국수는 별로다.

공항에 오니까 물가는 더더욱 비싸졌고 맛은 현저히 떨어졌다. 홍콩 공항에 분명 무료 샤워시설이 구비돼 있다고 해서 한 30분은 넘게 공항을 돌아다녔던 것 같다. 당시 신고 있던 신발이 오래 걷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발에 물집 잡히고 많이 아팠는데 이것도 홍콩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만든 요인 중 하나다. 결국 물어물어보니 무료 샤워시설은 도착지점에 있는 것이고 출국지점에는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유료 시설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홍콩 공항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보니 정말 arrival 이라고 떡하니 표시가 돼 있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더니. 허탈했지만 결국 250홍콩달러(한화 약 3만6000원)를 내고 1시간 동안 내 공간이 따로 마련된 라운지에서 샤워와 함께 휴식을 취했다. 곧 13시간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샤워를 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너무 싫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홍콩공항 35번 게이트 근처 Transit Resting Lounge.

라운지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샤워만 할 수 있는 시설은 없냐니까 16번 게이트 근처에 200홍콩달러를 내고 20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난 이미 35번 게이트인가 아무튼 멀리까지 왔기 때문에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판단, 50홍콩달러 더 내고 시간을 더 구입했다. 방에는 누울 수 있는 소파와 양변기, 샤워시설, 어메너티, 수건, 드라이기 등이 마련돼 있었다. 여행용 컨디셔너는 새 것으로 놓여 있길래 냉큼 챙겼다. 중국 제품인데 냄새가 나쁘지 않다. 홍콩에서 좋았던 것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프론트에 마련된 스낵바에서는 여러가지 간식과 바나나, 커피나 차 등 각종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그곳에서 간식을 즐기며 따뜻한 커피 한잔을 sip하는 내 모습이 창에 비쳤다. 돈 아깝다며 라운지는 누가 대주지 않는 이상 절대 들어가지 않는데 홍콩에서 이러고 있다니 마치 비즈니스차 홍콩에 온 사람인양 혼자 으스댔다.


1시간은 삽시간처럼 지나갔다. 프론트에 있던 직원이 1시간 지나면 연락 준댔는데 연락은 따로 오지 않았다. 그냥 내 발로 10시 딱 돼서 나왔다. 좀 더 있을걸... 아쉽다. 나가서 또 새벽 1시까지 3시간을 더 기다렸다. 지겨운 시간들이었다. B가 번역 작업에 참여한 '성 시장에 대한 페미니즘의 관점들'을 읽었다. 명확한 결론은 내리지 않는 책이었지만 여러가지 의미로 흥미로웠다. 금방 읽으니까 나중에 다시 읽어도 될 거 같았다.


새벽 1시까지는 정말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심지어 비행기가 몇 분 가량 연착됐다.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리쉬들은 00시40분에 비행기를 타지 못하자 컴플레인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나만 힘든게 아니었다.


하늘에서 먹는 라면은 꿀맛.

나는 한국에서 출발할 당시 홍콩에서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표까지 발급받았기 때문에 홍콩 공항에서 금방 체크인을 했다. 좌석도 이코노미석 중 제일 앞 좌석으로 주셨다. 편하게 오긴 했으나 누워서 올 수는 없었다.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는 꽉 차지 않았고 내 옆과 뒤에 있던 분은 비행기가 이륙한 후 안정권에 들어오자 본인들의 양 옆 의자 팔걸이를 위로 올리곤 바로 누워서 가더라. 나는 가장 앞 자리여서 팔걸이를 올릴 수 없었다. 내 건너편 옆 자리에는 다른 백인 남성이 있었는데 13시간 비행 중 딱 한 번 화장실을 간 후 본인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만 한 세 번은 간 것 같은데 저러면 변비 걸리지 않나...


비행기에서 콜레트를 본 것이 가장 좋았다. 사실 키이라 나이틀리 육성을 자장가 삼아 잠에 들기 위해 튼 것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끝까지 봤다. 키이라 나이틀리의 레즈 연기라니 너무 완벽해... 키이라 나이틀리의 상대역으로 나온 데니스 고프도 눈여겨 봤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아이리쉬였다. 그리고 블랙스완과 더 페이보릿을 봤다. 더 페이보릿은 다시 봐야 될 거 같았다. 예상보다 별로였기 때문이다. 다시 보면 달라질지도.

이코노미석 제일 앞 좌석. 내 앞으로는 비즈니스석으로 향하는 복도가 훤히 보인다. 이제 곧 착륙을 앞두고 있다. 평소에는 커튼을 쳐둔다.


내 건너편에 한국인 여성 두 분도 있었다. 간혹 나를 보는 것 같았으나 어쩌면 내가 살폈기 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그들은 아일랜드에서 뭘 하고 있을까. 화장실 갔다오는 길에 인도계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컵라면을 먹길래 나도 냉큼 시켰다. 이어 한국인 여성분도 시키더라. 그렇게 더블린으로 향하는 캐빈은 유럽식 컵라면 냄새로 가득찼다. 하늘 위에서 라면을 먹어보고 싶었으니 소원 성취!


그리고 새벽 6시.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나는 Non-EU 국민으로서 처음으로 입국 심사를 받았는데 금방 진행됐다. 왜 왔냐고 물었고 아일랜드 와 본 적 있냐고 물었다. 그냥 형식적인 질문 같았으나 나는 정말 쓸데없이 상세하게 내가 93년도에 스코틀랜드에서 2년 있었고 그때 여행차 더블린에 온 기억이 있는데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얼마나 지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고 혼자 말했으나 심사관은 듣지도 않는 것 같았다. 살 곳 있냐고 물어보고 그렇다고 하니까 3개월 찍어주면서 IRP 발급 받기 위해 사이트에 들어가서 신청하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물론 나는 한국에서 다 진행하고 왔지만 이를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심사가 끝난 후 가방을 기다리는데 정말 10분 만에 나왔다. 못해도 1시간은 걸릴 줄 알았던 아일랜드 입국 절차는 30분도 채 안돼 끝났으며 나는 오전 8시에 픽업을 나오기로 한 홈스테이 주인 Sean을 기다려야만 했다. 또 다시 기다림의 연속. 공항에서 vodafone 유심칩을 샀다. Three를 사고 싶었는데 매장 직원 왈 "공항에서는 보다폰 밖에 안 판다"라고. 거짓말이었을 수 있으나 보다폰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후회하지 않고 있다. 이어 8시가 조금 지난 시각, 유선상 연결이 된 Sean을 만났고 그는 나를 살짝 안아주었다. 까칠까칠한 수염이 난 Sean의 목덜미 부분이 내 뺨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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