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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l Apr 12. 2019

아일랜드에서 병원 가기

웬만하면 아프지 말기

해외 생활을 하면서 가장 슬플 때는 외로울 때 그리고 아플 때다. 오늘로서 아일랜드에 온 지 15일이 됐다. 열흘 간은 Rathfarnham에 있는 한적하고 조용한 주거지에서 홈스테이를 했고 이번주 월요일에 더블린1으로 이사를 왔다. 여기 지낸 지 이제 나흘째다.


지금 지내는 곳의 가장 큰 장점은 저녁에 외로울 틈이 없다는 점이다. 군중 속의 외로움이 있을 순 있겠지만 일단 저녁 시간에는 다들 학교와 일을 마치고 들어와 sit room에서 각자 밥을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이나 서로의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와 공감이 이어지는 그런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제는 정말 재미있었다. 게이 시어터 페스티벌 봉사활동 오티를 마친 후 밤 9시경 도착하니 벌써 sit room과 kitchen은 번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본 문화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스페인에서 온 팔로마와 레이아스가 도라에몽을 묻자 일본에서 온 마야와 리호는 갑자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모두들 각자 언어로 도라에몽 오프닝송을 부르면서 도라에몽 하나로 모두 대동단결했다. 나는 사실 도라에몽 애니메이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으나 도라에몽 오프닝송 앞부분을 스페인어로는 "도오라에몽"이라고 말하는 것과 일본어로는 "도라에에에몽"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문화 차이를 살피는 것이 재미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나이대에 도라에몽을 함께 공유한 그 친구들은 이질감 속에서도 끈끈한 동질감을 느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시간 이후에는 팔로마가 스페인의 군주제에 대해 비판하며 "IT의 발달과 전통(corrupted한 군주제를 말하는 것 같다)은 상존할 수 없다. 전통은 IT의 발전 앞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간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점이 있는데 이어진 대화에서 팔로마는 스페인의 남다른 카톨릭 문화를 자랑스럽게 알려주면서 다음주부터 이어지는 성주간(Semana Santam, Holy Week)을 설명하더라. 성주간도 전통인데 팔로마의 주장에 따르면 IT의 발전과 함께 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일단 본인의 세금이 왕족에게 돌아가는 것을 부당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IDGTF 자원봉사자 오티를 마친 후 돌아오는 길 리피강 전경. 이날 랭귀지 배리어와 외로움에 대한 일기를 썼다.


말이 많이 샜는데 이를 이렇게 설명한 이유는 바로 이 집의 번잡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이게 병원을 가게 된 모든 발단이었다. 함께 대화를 하고 즐기게 되면 이 번잡함이 재미가 되지만 내가 피곤한 상태면 아무리 재미있는 소재여도 소음에 불과하다. 그게 바로 딱 화요일 밤이었다. 팔로마가 오후 7~8시 사이에 갑자기 본인 친구를 집에 데려오더니 9시가 넘어서까지 sit room에서 시끄럽게 스페인어로 떠드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마야가 있는 현관 앞 벙크베드로 가서 마야한테 쟤네 너무 시끄럽다고 말했다. 마야도 시끄러워서 자기 침대로 돌아온 것이라고. 문제는 그날 밤 12시가 다 돼 가는 시각, 뒤늦은 귀가를 한 레이아스가 팔로마와 함께 내가 누워있는 침대로 와 속삭이며 자기 배고파서 부엌 좀 쓰면 안되겠냐고 했다. I don't mind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소리를 키우고 불을 다 켜더니 밥을 하곤 식탁에 앉아서 또 그 빠르고 높은 톤의 스페인어로 재잘재잘 거리는 것이다. 이게 시끄러워서 결국 잠깐 일어나 마야에게 갔는데 마야가 나에게 본인이 갖고 있는 실리콘 귀마개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게 뭔지 몰라서 보여나 달라고 했는데 결국 하나를 얻게 됐다.


실리콘 형태로 만들어진, 손으로 조물조물하게 해서 귀에 꽂는 것인데 사실 처음 써보는거고 해서 처음에는 소음이 생각만큼 잘 가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왼쪽 귀에 붙인 귀마개를 빼서 다시 끼웠더니 뭔가 공기가 완벽하게 차단된 느낌을 받았다. 그대로 끼우고 돌아가서 누운 뒤 12시 20분경까지 대화가 계속 되길래 불이라도 꺼달라고 하니까 일어나서 방에 들어가더라.


다음날 아침. 맑은 햇살을 받으며 어제 꽂은 귀마개를 뺐다. 오른쪽 쏙 왼쪽 쏙 빼는데 왼쪽이 느낌이 정말 이상했다. 분명히 귀마개를 뺐는데도 여전히 뭔가 찬 느낌이 가득했다. 마치 수영장에서 귀에 물 들어간 느낌. 괜찮아지겠거니 했지만 1시간, 2시간이 지나도 호전될 기미가 없었다. 여러가지 서칭을 하면서 누군가는 귀가 들리지 않게 됐다는 무서운 말까지 하자 병원을 생각하게 됐다.


다행히 나는 출발 전 어시스트카드에서 워킹홀리데이 보험을 가입하고 왔다. 내 나이가 만 30살이라 그런지 다른 어린 친구들이 10만~20만원대에 가입하는 보험을 나는 34만원인가에 가입했다. 그 상품이 가장 저렴했다... 보험을 가입하면서 한 다짐은 '그래도 병원은 가지 않겠다'였다. 그런데 온 지 2주만에 병원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외국에서 병원은 정말 가기 싫은 곳 중 하나다.

병원 앞 대기실. 건물에 들어서니 앞서 온 세 명이 자리에 앉아있길래 나도 그냥 앉아있었는데 안쪽 복도에 리셉션 데스크가 있었다.


아일랜드 병원 시스템은 한국처럼 편하지 않다. 일단 우리나라 보건소급인 GP에 먼저 방문한 후 여기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그때서야 가정의학과, 내과, 외과 등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 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GP도 그냥 가면 안된다. 예약을 해야 한다.


다른 보험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어시스트카드 같은 경우에는 직접 예약을 진행해준다. 24시간 운영하는 어시스트카드 상담사에 연락을 하거나 메일을 보내면 된다. 나는 전화로 처음에 예약을 진행했는데 국제전화라서 그런지 크레딧을 전부 소진해버리는 바람에 중간에 전화가 끊겼다. 이런 경우에도 다행히 보험사에서 회신을 바로 하기 때문에 크레딧 걱정을 할 필요는 크게 없다. 아니면 그냥 메일을 보내도 된다. 정말 빠름빠름 국가답게 메일 회신을 몇 분 만에 받을 수 있다. 마치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수준...


그렇게 병원 예약을 진행하고 오늘 병원에 다녀왔다. 사실 내부는 한국 보건소보다도 못하다. 내 귀 안에 있는 이물질을 만져보기 위해 도구를 찾는데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더라. 결국 간호사가 들어와서 같이 서랍 뒤져서 찾은 뒤 여러가지 꺼내놓고 쓰더라... 물론 새 제품이었다. 아픈 곳이 있는 것은 아닌데 내 귀 안에 있는 무언가 알 수 없는(귀지 같은데...) 것을 만지니 매우 아팠고 의사는 inflammation(염증)으로 진단을 내렸다. 귀에 넣는 약을 처방해줬다. 16유로가 조금 넘었다. 약값이 정말 비싸다. 약값은 당장 돈을 지불했지만 처방전과 영수증 등을 모두 지참하고 어시스트카드에 보내면 금액을 보존해준다.


사실 염증이 맞는지 약간 미덥지 않은 구석이 있지만 그 사람은 의사고 내 귀 내부를 직접 살폈으니 본인이 더 잘 알겠지... 토요일에 다시 오라고 했고 보험사 통해서 예약 잡으랬으나 토요일 예약은 모두 차있는 바람에 다음주 월요일에 재방문하기로 했다. 그냥 귀지가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귀지를 파내줬으면 했는데 그게 아닌가보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겠는데 이런 상태의 왼쪽 귀가 이젠 적응을 해버려서 예전에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아질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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