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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l Apr 17. 2019

인종차별이 단순히 유머? 아일랜드의 한 백인남성

인종차별에 무감각한 자칭 ‘비건 사회주의자’의 위선

아일랜드에 온 지 3주가 돼 간다. 처음 열흘 간은 더블린16의 2층 집에서 마음씨 좋은 Sean과 언제나 피곤하지만 quite talkative한 Maura와 함께 평온한 삶을 지냈고 이어 지금은 더블린1 Spencer Dock에 있는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이 글에 앞서 남긴 글에는 내가 현재 사는 아이리쉬 집주인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인 장문의 글을 썼는데 비공개로 돌렸다. 왜냐하면 이 위선자에게 그만큼 내 공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글을 올려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브런치를 켰다.


이 집은 정말 독특한 곳이다. 거실과 부엌이 함께 딸린 sit room, 방 2개, 화장실 2개, 베란다 2개 이렇게 구성됐다. 방 하나는 주인 방이고 나머지 하나는 벙크베드가 2개 있는 세입자를 위한 공간이다. 손님방 앞, 현관 옆에는 벙크베드가 하나 더 마련돼 있고 거실 겸 부엌에도 침대가 하나 더 있다. 현재 내가 지내는 공간이다.


듣기만 해도 상당히 북적거린다. 주인 포함 7명이 함께 한 집에서 사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처음에 이 집을 보러 왔을 때도 주인 불명의 물건들이 온 곳에 놓여있는 것을 보곤 서울에 있는 큰집을 생각했다. 정리되지 않고 온갖 물건이 제멋대로 놓여 있는 곳. 여기도 딱 그렇다. 그 점 때문에 '여긴 아니올시다'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을 정한 이유는 집주인 새끼 때문이다.


본인을 영어 선생이라고 소개하면서 말이 상당히 많고 해박한 지식과 함께 리버럴한 사람인 듯이 보이는 이 사람은 사실 탈세자인데다 마땅한 직업도 없고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는 많은데 실제 행동은 그렇게 못하는 위선자이자 대화 능력 불구자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만에 그게 다 scam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계기는 독일 기업인 호른바흐의 인종 차별 광고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사실 난 이 사람하고 호른바흐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백인 남성인데다 간혹 선을 넘는 발언을 농담이라는 천연덕스러운 매개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리호에게 "너는 막 피어난 아시안 꽃 같다"라고 말해서 리호에게 "do you like this description?"이라고 소리쳤다. 어린 일본인 리호는 똥 씹은 표정으로 지나갔고 나는 더 문제 삼지 않았다. 상당히 문제적인 발언이었지만 말이다. 처음 인상에서도 아시안 여성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백남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내 마음 속에 경고를 하나 그렸다.


며칠 뒤 난 레드카드를 들고 이 사람에 대한 선을 확실히 그었다. 어느날 유럽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호른바흐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호른바흐가 뭔지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에서 검색 조금만 하면 나올테니 찾아보시라. 호른바흐라는 기업이 백인 남성 소비자의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광고에서 아시안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희화화한 것이 인종 차별이라고 설명하자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지 검색을 하기 시작하더라.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실 호른바흐의 Horn은 성적 의미를 담고 있어"


...네? 아니 누가 그걸 모르나? 내가 그 정도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 그에 앞서 그 업체의 이름을 해석하는 것과 그 업체에서 내놓은 인종, 성 차별 광고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내가 어원찾기 하자 그랬나? 상대방의 말의 맥락도 모르고 본인 이야기만 하는 등신 같은 새끼. 지금 생각해도 머리에 똥만 찬 백인 남성의 전형이다. 본인은 그런 차별 받아보지 못한 '백인' '남성'이니까 하는 소리겠지. 이어진 이야기는 더욱 기가 찼다.


"얘네는 아시안 여성을 광고에 내세울 것이 아니라 독일 여성을 썼어야 한다"


네???? 이게 말이야 방구야. 호른바흐보다 더한 총체적 난국이 여기 있구나. 참고로 이 사람은 아침~낮 시간 동안 항상 보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는데 주제는 웬 남성 교수가 페미니즘, 퀴어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들은 레이시스트고 이런 광고를 만든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하니 "그들은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더 가관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너 아시아에서 여성들이 사용한 란제리를 자판기에서 파는 것을 알고 있어? 실제론 남성들이 그 물건을 구매하지만 이번 광고 같은 경우에는 남성의 옷을 여성이 구매하네. 이걸 풍자한거야"


와우. 나는 이런 자판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듣는다. 내 30년 아시안 인생에서 이런 자판기를 판매한 곳을 본 적도 없다. 일본에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같이 이야기를 듣던 리호는 "그런 자판기가 있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본 적 없다"고 했다. 참고로 이 아이리쉬 집주인은 한번도 동북아시아에 가 본 적이 없다.


결국 나는 대화를 멈췄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난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들은 레이시스트가 맞다. 그들이 과연 이 광고를 만들 때 흑인 여성을 쓸 생각을 했을까? 흑인 여성을 썼다면 과연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지 그들은 모를까?"


이 말에 대해 이 위선자는 "그건 네 추정에 불과하다"고 했다. 참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다.


그날 이후로 간단한 인사 이외에 나는 이 위선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내고 있지 않으며 저놈도 내가 거리 두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대화를 더 하지 않더라.


처음에는 정말 괘씸한 새끼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발언에 대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못할 뿐더러 남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본인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 생각해보니 참 Pathetic한 새끼라는 생각이다.


일단 강약약강 스타일로 사람을 가려서 대화를 하는 이 사람의 방식 때문이다. 이 집에는 일본인 여성 2명과 스페인 여성 2명이 함께 산다. 모두 20대 초반이다. 그런데 이 새끼는 만만하다고 생각하는지 일본인 아이들에게는 여과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반면 스페인 애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스페인 애들이 빠르고 높은 음의 스페인어로 재잘재잘거리면 본인은 자리에서 도망친다. 본인이 집 주인이면서 말이다. 반면 일본인 애들이 일본어로 대화하고 있으면 끼어들려고 한다. 이 얼마나 전형적인 파렴치한의 모습인가.


두 번째, 나는 이 사람이 밖에 나가서 하루 종일 있거나 아이리쉬 혹은 유럽인과 통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 새끼의 일상은 일단 아침 6시 30분경 기상과 함께 시작한다. 부엌을 정리하고 본인이 항상 앉는 소파 자리에 앉아 맨날 듣는 클래식 음악을 틀고 본인의 10인치 될까 말까 한 에이서 노트북 화면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 이후 브렉퍼스트 티에 콘푸레이크를 대충 쳐 말아서 쳐 먹은 뒤에 맨날 보는 무슨 교수의 강의 영상을 튼다. 이게 이 사람의 하루 일상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이어 오후 5시가 되면 방에 들어가서 낮잠을 쳐 주무신 후에 일어나 본인이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뇌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남의 인생에 온갖 참견을 하는 아무 말을 시전한다. 그러면서 본인이 영어 강사라고 한다. 나는 본인이 말을 주도하고 본인만 말을 꺼내려는 영어 강사를 본 적이 없다.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의 기본은 상대방이 더 많이 말을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사람은 내가 말을 하려고 하면 끼어들지 못하게 하면서 내가 말을 하는 중에는 마음대로 끼어든다. 정말 무례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호른바흐 이야기를 한 이후로 대화를 전혀 하지 않는다. 정말 편하다. 이 등신 새끼의 아무 말을 내가 들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또 나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것 같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이 사람은 친구가 없고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본인의 아무 말이나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50대가 되도록 능력도 없어, 직업도 없어 운이 좋게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 집이 하나 있네? 테넌시 등록을 하지 않고 탈세를 하며 본인보다 어린 외국인들을 상대로 월 600유로씩 받아가며 살아간다. 참 하늘은 야속하기도 하지 집 있는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 불로소득을 이렇게 누릴 수 있도록 하다니. 동시에 더블린 노숙자가 1만명을 넘어서면서 사상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는 뉴스는 큰 역설이다.


난 이 집에서 한 달만 지내고 나갈 예정이다. 어림짐작으로 32평 정도 돼 보이는 집에 7명이 북적이며 살아가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인데도 다양한 정보를 얻고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집주인 새끼가 엄청난 위선자인데다 한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의 미심쩍은 느낌을 무심코 지나치면 안된다.


짧게 쳐내려고 했던 글은 거의 4000자에 가까워졌다. 이 새끼는 나한테 항상 뭐를 기사로 써봐라, 소설을 쓰면 본인이 도움을 주겠노라고 하지만 그렇게 잘났으면 본인이 하지 여러모로 안타깝다. 약자에게 기댄 인생, 거기에서 찾아오는 우월감이 이 새끼의 삶의 전부라는 생각을 하니 참 불쌍하다. 누구든 한국에서 오시는 분은 꼭 이 집에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확한 집 주소는 쓰지 않겠지만 더블린1 Spencer Dock에 있는 아파트 4층(23)이다. 여성이면 꼭 피했으면 좋겠다. 영어를 미끼로 아시아 여성들을 본인 집에 머물게 하지만 영어는 이렇게 배우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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