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el Nov 09. 2019

두 달 걸린 프로세스 끝에 해외 취직 성공하다

아일랜드 생활 2막을 앞에 두고

취직했다. 지금도 회사 다니고 있지만 비자 서포트를 받기는 어려운 곳이라서 취직이라는 카테고리에 분류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정말 취직했다. 이 말을 얼마나 쓰고 싶었던지, 방금 계약서에 사인하고 전송하니까 드디어 이 말을 하고 싶어졌다. 취직했다. 외국에서 취직했다!


얼마나 걸린 프로세스인지 보려고 지난 이메일을 뒤져보니 곧 다니게 될 회사의 HR팀에서 온 첫 메일이 9월 17일이었다. 근로 계약서 날짜는 11월 5일로 찍혀 있으니 내가 최초에 회사에 지원한 날부터 따지면 거의 두 달이 걸렸다.


프로세스는 서류-온라인 테스트-전화 면접-대면 최종 면접으로 이뤄졌다. 온라인 테스트 때 문항 하나가 접속이 안 돼서 상호 간 이메일로 소통하느라 시간이 더 걸린 것 같다. 이메일로 소통하다보니까 한 단계가 끝난 후 결과가 적힌 메일을 볼 때마다 긴장했다. We are sorry to inform you...로 시작하는 형식의 문장을 읽고 싶지 않아서. 다른 회사 지원할 적에 온라인 테스트에서 떨어진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많이 걱정했는데 테스트를 본 이후 일주일 뒤, 테스트 합격 메일을 받곤 많이 기뻤다.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합격 메일을 클릭하기까지 생각보다 꽤 오래 걸렸다. 혹시나 떨어졌을까봐.


내가 다니게 될 회사는 더블린이 아닌 코크에 있는 한 IT회사다. 데이터 스페셜리스트로 일을 하게 될 예정인데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모르겠다. 12월초 입사 후 3주간의 트레이닝을 거친다.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팀에 합류해 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마지막 최종 면접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지금 더블린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면접을 보기 위해 코크로 가야 했다. 더블린에서 코크까지는 버스로 3시간이 걸린다. 서울에서 대전 정도까지 거리라고 보면 되는데 내 느낌으로는 서울-대전보다 더 걸렸다. 서울-대전 고속도로는 길게 쭉 뻗어있지만 아일랜드 고속도로는 약간 굽이진 곳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규정 속도를 준수해서 다니기 때문에 훨씬 길게 느껴졌다. 휴게소가 발달하지 않아서 버스 내에 화장실이 마련된 것이 신기했다. 사용하진 않았지만.


코크로 출발하기 전 날 면접 준비를 거의 하지 못해서 버스 안에서 졸린 눈으로 연습을 하긴 했는데 그러다 결국 잠에 들었다. 버스 안에서 본 아일랜드 풍경은 초록빛으로 파랬다. 간간히 농장이 있었고 양과 소들은 들판에서 비를 맞으며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3시간이 걸려 도착한 코크, 코크에 들어서기 전 버스가 언덕 중턱에 들어서며 코크 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보였는데 정말 작은 어촌 동네였다. 난 항상 더블린이 정말 작은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코크를 보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더블린은 다른 세계적인 도시에 비해 작지만 코크와 비교하니 더블린은 정말 수도가 맞긴 했다.


첫 인상은 여수나 목포 같은 느낌이었다. 더블린에 비해서 언덕진 곳이 많았고 그 언덕 위로 층층마다 주택들이 있었다. 그날의 코크는 비가 많이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근처 코스타 커피에 가선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으로 요기를 떼우곤 면접을 볼 장소로 향하는 시내 버스에 올라탔다.


메일에 적힌대로 건물 프론트에서 매니저를 호출하려고 했는데 기업 단지 정문에서부터 경비에게 출입 자체를 제지당했다. 회사 출입증이 없고 처음 온 사람이라는 티가 많이 났나보다. 면접 보러 왔다고 하니 출입 예약이 돼 있을 것이라고 해서 검색했는데 없었다. 정말 이때 당황했다. 면접은 3시로 예정돼 있었는데 벌써 2시50분을 넘어갔고 혹시나 늦어서 면접을 못 보게 되면 어쩌나 걱정했다. 내가 컨택해야 되는 사람의 성함을 알려주곤 경비가 그 분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받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면접 중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날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면접을 본 것 같았다.)


다행히 어떻게 연락이 돼서 출입 허가를 받았다. 들어서는 길에 회사 건물 지하에 헬스장이 있었던 것을 봤다. 그 헬스장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또 다른 경비가 출입 메모를 작성할 것을 요구했고 이어 임시 출입증을 줬다. 출입문 앞에는 내가 오늘 만나야 할 사람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인사를 하곤 나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냐고 물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들어선 회의실에는 다른 두 명의 사람과 화상 모니터 속에 다른 여성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분은 HR 담당자인데 다른 나라에 있어서 화상 면접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4명의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서 면접을 봤다. 면접이라고 해서 딱딱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그냥 네모난 책상에 둘러 앉아 마치 회의하는 것처럼 면접을 봤다. 면접관들이 앞에 일렬로 앉아 진행하는 한국식 딱딱한 면접이 아니었다. 물론 그래도 난 여전히 떨렸지만. 누가 면접 보는데 안 떨까. 그래도 마음을 차분히하기 위해 나는 농담 섞힌 말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프리한 분위기였다.


기억나는 질문이라면 나에 대한 짧은 소개, 내가 일할 수도 있게 될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요즘 관심사, 우리가 왜 당신을 뽑아야 하는지, 한국 콘텐츠에 대한 질문, 기자로서 일했을 때 경험, 이 포지션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는지 등. 난 사실 이 분야에서 일을 한 경험이 없어서 내가 이 포지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왜 우리가 당신을 뽑아야 하느냐는 질문에서 해당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 포지션이 가지는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그 때문에 내가 왜 이 포지션에 적합한지를 설명했다. 그렇게 탈탈 털리고 면접관들과 악수를 하고 건물을 나오는데 정말 진이 다 빠졌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처음에는 망쳤다고 생각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라는 심정으로 코크 구경도 하지 않고 바로 더블린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6시30분차를 예약했는데 그냥 버스에 올라타서 예약 시간 바꿀 수 있냐니까 운전사는 흔쾌히 그렇게 해줬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가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노래를 들으며 조금 눈물도 훔쳤던 것 같다. 계속 인터뷰 상황을 되뇌였고 좀 더 정교하게 말하지 못한 후회도 했다. 떨어져도 괜찮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오랜만에 미국식 영어를 들어서 시원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더블린으로 향하는 3시간 동안 한숨도 자지 않았다. 더블린은 그날 하루 종일 비가 오지 않았다.


면접을 본 후 일주일 뒤 메일이 왔다. 최종 합격. 그리고 애초에 들었던 임금 수준보다 소폭 인상된 연봉도 제시했다. 기뻤다. 정말. 하지만 정든 더블린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과 사오리와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도 함께 몰려왔다. 내 아일랜드 인생 2막이 곧 열린다. 곧 코크로 이사도 가야 한다. 방도 새로 구해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매거진의 이전글 더블린 생활 반년, 다시 바삐 움직이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