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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l Jul 10. 2021

외로움에 대하여

외로움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사랑을 알지 못했던 대학생 때 혼자 가슴 아파하던 새벽녘 자취방에서 혼자 펑펑 울다가 부모님께 전화를 해선 아이처럼 "엄마, 너무 외로워!"라고 울부짖었다. 엄마랑 아빠는 자는 통에 자식이 난데없이 전화해선 울고 있으니 얼마나 놀라고 마음이 아팠을까.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집에 내려가서 한동안 쉬었던 것 같다. 철없던 어린아이.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항상 누군가를 찾았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전화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N이랑은 정말 자주 통화했다. 한번 통화하고 나면 한 시간 이상씩 통화할 정도로 주변에서는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N은 나에게 있어서 혈육 같은 친구다. 사회생활 하면서는 자주 통화를 못했지만 그래도 친구들끼리 종종 만났고 여행도 같이 다녔던 터라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정도였다. N 덕분에 외로움을 많이 이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내 이야기만 털어놓았나 싶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이 나를 잠식하는 것이 항상 무서웠고 불안했다. 그래서 외롭고 싶지 않으려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철은 없고 감성이 지나쳤던 대학생 때는 '내 자신의 한숨을 보려고 담배를 피운다'는 어쭙잖은 소리를 흘리고 다녔다. 찾아오는 것은 두통 뿐인데.


아일랜드에 온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여기에선 내가 외롭다고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담배는 끊은 지 꽤 됐고 피우고 싶은 마음도 전혀 들지 않는다. 한 번 마시면 하마처럼 마셔댔던 술도 요즘에는 입에 대지 않는다. 나의 가장 큰 친구는 스마트폰이고 운동이고 플레이스테이션이고 요즘에는 책도 추가됐다. 종종 여기서 사귄 친구들을 만나지만 외로움을 해소하려고 만나기보단 코로나 시대에 조금이라도 사람을 만나야 된다는 생각에서 오는 외출이다. 외로움은 나의 동반자가 된 지 꽤 됐다. 그래선지 이젠 누구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연락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외로움은 인간의 필연적인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에 지쳤나, 자꾸 옛날 생각들이 난다. K, 단 한 번 뿐이었던 사랑, 다시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너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지금 생각해보면 K 이후에 만났던 사람들은 내가 진심을 다해 사랑하지 않았고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오래 만날 수도 없었다. 육체만을 바란 관계도 있었고 착각 속에서 만난 사람도 있었다.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만났던 사람을 안았을 때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덮친 적도 있다. 언제까지 만나야 하나 하며 마음 속으로 날짜를 세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달려든 사람에게 금방 지친 적도 있다. 너와 나의 급을 마음 속으로 재며 '나 같은 인재가?'라며 내가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지금 벌 받나보다. 


그래도 K에 대한 생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어제는 K 꿈을 꿨다. 자꾸 생각하다보니 꿈 속에 나온 것이니 크게 의미부여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시 그 꿈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느 사막처럼 황량한 길 가운데서 K를 만났다. K는 작은 벤을 몰고 있었고 우린 같이 어딘가로 갔다. 하얀 배경,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은 사람들, 알 수 없는 모임, 작은 차량. 지금은 기억의 단편만 남아 있지만 꿈 속에서라도 놀아줘서 고마워. 그저 내가 잠을 편하게 못 자서 꿈을 꾼 탓일테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살아가게 될까? 삶이란 과거를 추억하는 연속일까. 


정신 차리고 현실에 집중해야지. 요즘에는 내 포지션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다음 글은 회사 생활에 대해서 쓰겠다. 재택 근무가 permanent가 되기도 해서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놓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현실을 생각할 꺼리가 넘친다. 과거에 얽매이는 것은 여기까지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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