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저널리즘의 샛별, 레즈비언 활동가 리라 맥키
최근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사고라면 지난 19일 밤 북아일랜드 데리 지역에서 발생한 반체제 공화주의자의 테러다. 요즘 내 가장 큰 목표는 새로운 집을 찾는 것인 만큼 뉴스나 일기, 브런치에 마음을 둘 여유가 없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것은 한국에 있는 친구가 괜찮냐고 오랜만에 연락이 오면서다. 북아일랜드 폭동 뉴스를 봤다며 걱정됐는지 내 생각이 났었나보다.
북아일랜드 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으로 800년 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때부터 시작한다. 당시 아이리쉬들은 독립을 위해 꾸준히 투쟁했고 마침내 1922년 독립을 맞았다. 하지만 문제는 아일랜드가 영국령일 당시 영국이 북아일랜드 지역에 상당수의 신교도 주민을 이주시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국은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일랜드에 속하길 원하는 원주민과 영국에서 넘어온 주민들 간의 싸움은 일상 생활에서의 차별로 이어졌고 이 때문에 무력 분쟁이 꾸준히 일어났다. 무력 항쟁과 테러는 1998년 굿프라이데이 협정과 함께 종결을 지었지만 여전히 무력 항쟁을 자행하는 세력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를 신 IRA(아일랜드공화국군)라고 부른다.
지난 19일 북아일랜드 폭동이 큰 사건으로 기록되는 이유는 이를 취재하던 북아일랜드의 한 언론인이 총격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리라 맥키(Lyra Mckee). 고작 29살의 나이다. 이 사망 소식은 더블린 내에 있는 LGBT 커뮤니티에도 큰 충격이었다. 맥키는 언론인인 동시에 레즈비언 활동가였기 때문이다. 맥키는 지난 2014년에는 성소수자로서 힘들었던 본인의 삶에 기반한 'a letter to my 14-year-old self'(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9/apr/19/lyra-mckee-letter-gay-journalism-northern-ireland)이라는 칼럼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2017년에는 테드(TED) 연단(https://www.ted.com/talks/lyra_mckee_in_memory_of)에 서서 교회와 모스크 등 성소수자에게 부정적인 종교계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종교가 약자를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만큼 성소수자를 보듬고 위로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역설한다. 향후 책 두 권도 출간할 계획으로 계약서까지 작성했다고 한다. 허망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맥키의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한국과 아일랜드가 사뭇 달랐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언론에서는 모두 맥키가 어떤 언론인이었고 그가 레즈비언 활동가로서 본인의 성적 정체성 때문에 자살까지 고민하는 10대 청소년들에게 늘 힘이 돼 주는 존재였다고 적었다. 한국 언론에서는 "여기자 사망"이 전부였다. 그녀가 레즈비언 활동가였다는 사실은 적시되지 않았다. 물론 먼 나라 타국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주목해서 쓸 필요가 없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녀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지 않아서 참 한국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와중에도 잊지 않는 '여'기자라는 타이틀은 특유의 한국스러움을 배가시킨다.
현재 더블린 내의 한 공원인 St. Stephen's Green 에서는 맥키의 추모의식이 이어지고 있다. 추모 의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22일이 뱅크홀리데이인 만큼 가볼 예정이다.
맥키의 테드 영상을 보면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
It gets better for some of us,
for those of us who live long enough to see it gets better.
북아일랜드의 평화 독립을 못 보고 먼저 간 그가 안타깝다. 출간 작업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유고작으로 책이 빛을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