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el Mar 21. 2023

퀴어, 외노자, 여성...어떻게 늙을 것인가

런던 BFI Flare에서 관람한 다큐멘터리 '두 사람'

동시대의 많은 퀴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아무래도 노후일 것이다. 노후가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퀴어의 경우, 특히 한국 퀴어들에게는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나이 든 퀴어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노후 준비에 대한 부담은 더욱 크다. 파트너십이나 결혼 제도 등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 조차 없으니 어느 지점에서는 현실적인 이유로 탈반을 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런던 BFI Flare 2023에서 다큐멘터리 '두 사람' 상영 이후 GV


이런 점에서 런던 BFI Flare 2023에서 본 다큐멘터리 '두 사람(Life Unrehearsed)'은 퀴어의 나이듦에 대한 사고꺼리를 던져줬다. 1980년대 파독 간호사로 해외에서 생활을 시작한 김인선 씨와 이수현 씨는 서로에게 사랑에 빠져 30년 간 인생을 함께 해왔다. 이제는 70대 할머니가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한국으로 두 달 간 떠나는 김인선 씨는 그동안 혼자 있게 될 이수현 씨를 걱정하고, 자궁에 혹이 있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받은 김인선 씨의 병동에는 이수현 씨가 보호자로서 지켜준다.


영화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잔잔하게 2019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이들의 삶을 조명한다. 두 사람의 삶에 개입하지 않은 채 그저 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종종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각자의 한국 혈육들이 느끼는 감정과 갈등을 두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주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파고 들지 않는다. 한국을 방문한 김인선 씨는 2019년 한국 퀴어문화축제에서 무지개 색 천을 두른 십자가를 들고 참석하고 영화는 행사를 '반대'하는 기독교 혐오 세력의 모습도 잠시 보여주지만 이 또한 잠시 스쳐 지나간다.


퀴어라는 정체성 이외에도 해외 이주 여성으로서 겪었던 혹은 겪는 어려움도 영화는 함께 짚는다. 2019년 독일의 호른바르라는 한 DIY 업체의 여성 인종 차별 광고를 두고 김인선 씨는 30년 간 독일서 살며 지낸 자신의 삶을 녹여낸 자유 발언을 한다. 젊은 시절 간호사로 일할 때 주사를 맞히기 위해 팔을 주라고 하면 백인 남성들은 내 가슴까지 팔을 뻗었다며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하지만 이게 어디 쉽게 웃으며 건너갈 문제겠나. 백인 여성 간호사는 겪지 않은 성추행.


그래서 두 사람은 외국인을 위한 호스피스를 운영한다. 타국에서 다양한 문화 차이와 차별을 겪는 외국인들이 더 편하게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해서다. 간호사로 일한 본인들의 경험을 살리기도 했을 것이다. 작은 처방이 필요한 이웃에게도 성심 성의껏 아낌없이 두 사람의 집에서 치료를 해준다.


사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은 영화를 본 후 따로 찾아본 기사에서다.

파독 간호사, 호스피스, 동성결혼…“다시 태어나도 같은 선택”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64765.html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여운이 남는 것 같다. 정말 관찰자의 시점에서 멀리서 조망해서. 수많은 정치 논리가 섞힌 개인의 삶을 따라가면서 이토록 단조롭게 보여줄 수 있다니. 요즘 인기 있다는 다큐멘터리들을 보면 모두 자극적인데 그렇지 않아서 더 신선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두 편의 영화를 생각했다. 하나는 퍼플레이에서 관람한 '채민이에게'라는 실험 영화와 다른 하나는 작년에 한국서 본 다큐멘터리 '홈그라운드'. '채민이에게'는 단편 영화인데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 코로나 시기에 동양인으로서 네덜란드에서 사는 본인의 삶을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로 풀어낸다. 편지 속 내용이 실제로 감독이 겪은 일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영화 푸티지들 또한 연결된 내용인지 중요하지 않다. 모두 실제로 누군가는 겪고 있는 일이고 동시대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중요할 뿐. 이를 풀어낸 형식이 파격적이다.


또 다른 다큐멘터리 '홈그라운드'는 한국의 나이든 퀴어를 조망한다. '레스보스'라는 한국 첫 레즈비언 술집을 운영하는 사장 명우형의 과거와 현재를 따라간다. 본인의 정체성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절연하고 지금까지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온 명우형은 '우리들이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인 레스보스를 만든다. 남들처럼 안정적으로 살아오지 못했고 그래서 나이 든 지금까지도 가난하다. 카메라는 명우형의 많은 곳을 따라가지만 본인의 반지하 방만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명절이 찾아오면 집 없이 떠도는 10대 퀴어들을 위해 시장에서 장바구니 한아름 장을 봐 잡채를 볶고 밥을 지어 레스보스에서 밥 한 끼를 제공한다. 가족이란 무엇이고 제도란 무엇일까. 가난은 어디서 오고 왜 누구는 벗어나지 못하는가.


그렇게 나의 노후도 생각한다. 외노자로서 아일랜드에 산 지 이제 정식 햇수로 3년차. 올해 8월이면 4년차다. 워홀 기간을 합치면 5년. 2025년이면 워크 퍼밋 없이도 아일랜드 내에서 일하고 거주할 수 있는 비자로 바꿀 수 있다. 이 와중에 한국 정부는 해외 영주권자의 한국 건강보험 접근권을 더욱 낮췄다. 일할 인구는 줄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한국 국민연금에 매달 돈을 붓고 있다. 이직 준비와 고민을 하고 아일랜드와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사는 상상도 한다. 퀴어로서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도 생각한다. 아프지 않기 위해 매일 운동을 하고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 한국에 있는 내 혈육도 생각한다. 가끔 눈물도 난다. 하지만 항상 툴툴 털어내고 잘하고 있다고 내 자신을 다독인다. 잘하고 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아일랜드서 본격 여자 축구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