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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l Oct 27. 2023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문득 오늘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주제로 글을 쓰지 하며 생각하다가 브런치에 '아일랜드'라고 검색을 해봤다. 최근에 아일랜드에 학생비자나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입국한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일자리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부터 GP에 가서 비싼 약을 타왔다는 썰까지 마치 4년 전 아일랜드에 처음 떨어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통장 돈 걱정 안하고 소비할 수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며 나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더블린에 살 적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 며칠 전, 같은 팀 사람들이랑 술을 마시다가 내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술버릇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릴 때는 그런게 뭐가 중요한가. 그냥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실수하고 다음날 사과하고 이런 일을 반복하던 것이 한국에서의 내 생활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친구들도 아닌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가 술버릇이 발동됐다.


내가 술을 먹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상대방이 나를 제지하는 억센 손아귀에 정신이 들었고 그때부터 화내고 울고 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지우고 싶은 기억 중 하나. 진심 어린 편지로 사과를 했는데 사실 내가 술에 취해 뭘 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상대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있었다.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감정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었다. 연고 없는 땅에 떨어져서 본인 자리에서 사회 생활을 잘 하는 모습이 싫었던 거 같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고전하고 있을텐데 난 당시 내 눈에만 보이는 상대의 모습만으로 재단하고 비교하고 미움의 감정을 키워나갔다. 그게 술을 마시고 터져버린 것이다. 그 이후 난 하마처럼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다.


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사진으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세계를 다니며 사진을 찍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국 언론사에서 사진기자로 일을 하다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글로벌한 잡지사로 이직해 회사돈으로 세계 전역을 쏘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 언론사에서는 여자 사진기자를 잘 안 뽑는데다가 대우도 좋지 않다는 주변의 말에 결국 내 멋진 계획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사진기자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미디어 산업이 건재할 것이라는 희망도 없었을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최근 해고를 단행했다.


취미 생활로 사진 찍는 일을 이어갔으나 이도 결국 어느 순간 멈췄다. 내 카메라 가방에는 풀프레임 니콘 D750이 오래도록 잠들어 있다. 사진을 한창 찍던 대학생 시절 거금 70만원을 들여 산 크롭바디 D80을 쓰면서 풀프레임 바디를 그토록 원했는데 정작 D750으로 사진을 거의 찍은 적이 없다. 작동이나 제대로 할지 모르겠다. 확인하고 싶지도 않다. 요즘엔 DSLR을 안 쓴다더라.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들이 참 멋지더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Photographic Memory'에서 주인공은 젊은 시절 작은 필름 카메라 하나로 프랑스를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나도 그런 낭만을 원했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 같은 삶도 나쁘진 않다. 나쁘지 않은 월급 따박따박 나오며 후일을 위해 이직 공부를 한다. 내 능력을 못 알아봐주는 지금 회사 욕을 한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 회사를 그만 둘 '그날'만을 상상하며 산다. 내가 비록 회사에선 작은 부품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부품 하나의 부재로 얼마나 남은 기계들이 얼마나 불편해할지 상상하며 희열에 젖는다.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없다. 지갑은 가벼워도 낭만에 죽는 사진 작가도 없다.


반지하 술집, 추운 겨울, 처음 보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그 누런 조명의 술자리. 당신의 보드라운 겉옷 안에서 처음 잡은 그 손을 생각한다. 그 손은 어느덧 나를 떠나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악수하고 있을 생각에 행복해보기로 결심한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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