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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Oct 14. 2024

여친이 초등교사로 발령받다

나는 무척 행복했다

1982년 2월 16일, 내 여친은 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식장에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영화 필름처럼 휙휙 지나간다.


3개월여 짧은 수험 준비, 가슴 졸이다가 드디어 함께 기뻐했던 대학 합격, 하지만 몹시 안타깝고 가슴 시렸던 대학생활, 하필이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서 내 여자 친구는 치열한 대학생활을 했다. 나는 잘 안다. 내 여친은 엉덩이 짓물러가며 혼신(渾身)의 힘을 다 쏟았던 것을. 그러한 각고의 노력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여친에게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또 다른 걱정을 했다.     


‘이제 3.1. 자 초임교사 발령받아야 할 텐데, 발령 못 받으면 어쩌지?
똑똑한 내 여친은 성적이 좋으니 당연히 발령받지 않을까?
내 근무지, 장흥군으로 발령 나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들, 어느덧 생각의 꼬리들은 아주 작은 파편 되어 밤하늘에 둥둥 떠다녔다. 


        

하지만 기우(杞憂)였다.      


1982.03.01. 내 여자 친구는 장흥군 OO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우리 두 사람은 뛸뜻이 기뻤다. 새가슴처럼 파닥파닥 뛰며 함께 꿈꾸었던 소망을 이루어준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한껏 고무되었던 나는 직접 여친을 데리고 발령지 학교를 방문했다.


교장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드렸다.

“정O자 선생님, 우리 학교로 발령 나심을 축하합니다.”

...

교장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더니, 정색하며 말씀하셨다.

“정 선생님과는 어떤 사이 이신가요”

“저는 남자친구로 결혼할 사이입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말했다.

순간 깜짝 놀랐던 지O수 교장 선생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1980년대 그 당시에는 그랬다. 


서울에서 발생한 ‘주 교사 사건’의 파장으로 교사들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신규교사의 초임 발령에 동참해서 ‘결혼할 사이’라고 강변했던 어린 청년의 도발(挑發)? 에 학교장은 아연실색(啞然失色), 어이없었을 것이다. 내가 학교장이었더라도 무척 황당했을 것을.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미인인 내 여자 친구를 얻기 위해 용감했다. 내 여자 친구의 초임교사 발령이 너무 좋아서 근거 없는 자신감을 한껏 내뿜은 것 같다. ‘지금도 그럴 수 있을까? 암, 당연히 그래야지.’


          

1982년 그해, 2월의 나는 무척 행복했다.
내 여자 친구가 당당히 초등교사로 발령받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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