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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Oct 14. 2024

뜬금없이 결혼해야 하나?

나는 카오스(chaos,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여자 친구의 초임교사 발령!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었다.  

    


얼마 전까지 내가 현직교사임을 은근히 자랑질(?)했는데, 이젠 어림도 없다. 비록 근무하는 학교는 다르지만, 동일한 정교사로 학생들을 교육하게 되었다. 굳이 3년 먼저 근무했던 경험을 내세워 사사건건(事事件件) OT(orientation)를 자청하며 학교 부근에 셋방 얻는 일, 간단한 살림살이 도구를 갖추는 일, 새 학기를 준비하는 일 등에 일일이 간섭하였다. 마치 신혼부부가 새살림을 차리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이었다.

    

여자 친구의 발령지 학교는 장흥군의 남쪽에 위치하여 내가 근무하는 학교와는 42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1982년 당시에는 큰길은 포장도로였지만 이면도로는 주로 비포장도로였기에 버스를 타고 무려 3시간 정도 흙먼지 난무하며 달려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먼  거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주 만났다. 만날 때마다 압도적으로 시시콜콜한 학교 현장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지만, 우리의 장밋빛 미래(?)도 아프게 그려야만 했다. 오랜만에 여자 친구가 주도적으로 말했고, 나는 애써 실소(失笑)를 머금고 경청(?)했다. 그러다가 성의 없이 듣는다고 여지없이 타박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어느 날, 나의 근무지 학교 S 교장 선생님께서 여자친구인 J 선생님과 결혼하라고 권고하셨다. 사실 나 역시 얼른 결혼하고 싶기도 했다. 3년 여 연애 시절을 종결하고 싶었고, 여자 친구의 도움으로 하루빨리 숨 막히게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는 분명히 지나친 이기주의의 발현이리라. 그래서  카오스(chaos,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괜스레 애써서 '교장 선생님께서 여자 친구와 결혼하라니. 그럴 수 있나? 나의 사생활인데'라고 중얼거렸다.


    

하긴 1970, 80년대에는 그랬다.


권위주의가 팽배한 시기로 학교 관리자는 거의 제왕(帝王)이었다. 더군다나 그 당시 교육계에서는 ‘주 교사 사건’의 영향으로 교원의 윤리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었다. 실추된 교권의 회복이 중요하다며 교육자 스스로의 윤리적 자각을 바탕으로 한 교원윤리헌장을 제정했었다. 그래서 과민한 학교 관리자는 교사들의 사생활까지 감시·간섭했었다. 또한 교직원들은 출근하면 교장, 교감 선생님께 먼저 인사드리는 게 관행이었고, 학교장의 말씀에 토를 달기는커녕, 지시 사항이라도 떨어지면 개인 생활이나 주말·휴일을 반납하고 속전속결로 처리해야만 했다. 오죽했으면 ‘그 좋은 시절에 교장도 못해 보고’라는 교육계 은어(隱語)가 있었을까 싶다.

...     


하지만 뜬금없이 결혼하라니, 결혼해야 하나?
4월 5일은 셋째 형님(여자 친구의 오빠) 결혼일인데, 이를 어떡하지?     



1982년 3월 셋째 주 주일 예배를 드릴 때였다.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을 부르며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을 펑펑 흘렀다. 이런저런 상념(想念)들이 어느덧 심한 무게가 되어 내 어깨를 짓눌렀고 가슴 시리게 했다. 그때 문득 '목사님과 의논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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