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언제나 고독의 계절이다. 바람이 차갑게 뺨을 스치고, 눈발이 허공에 흩날릴 때, 마음 한구석에도 서늘한 그리움이 스며든다. 이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그중에서도 보리수(Die Lindenbaum)는 나의 심정을 깊이 대변한다.
길을 떠나는 나그네는 한 그루 보리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 나무는 그에게 쉼터였고, 젊음과 사랑, 평온한 날들을 상징한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 나무를 뒤로 하고 떠나야만 한다. 멀어지는 나무는 이제 그저 기억의 흔적으로 남을 뿐이다.
나는 어쩌면 그 나그네와 닮았다. 삶이란 끝없는 여정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뒤돌아보게 하는 긴 여행 같다. 어린 시절, 나도 내가 앉아 쉬었던 나만의 보리수를 가지고 있었다. 고향의 오래된 골목길, 그곳에서 들려오던 부모님의 목소리, 친구들과의 웃음소리.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것은 멀어졌다. 삶이 나를 다른 방향으로 떠밀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의 곡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속에도 한 줄기 겨울바람이 분다. 어쩌면 나그네가 느꼈던 그 쓸쓸함과 두려움, 그리고 그리움은 모두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일 것이다. 보리수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지만, 그 기억의 흔적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나는 보리수 아래에서 머물던 순간을 더 간절히 떠올리게 된다. 그때의 따뜻함이 그립지만, 결국 나는 나그네처럼 앞으로 걸어가야만 한다. 삶은 뒤돌아보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언젠가 내가 다시 그 보리수 아래에 설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니면 그 나무는 이미 영영 사라져버린 것일까?
겨울의 바람이 불어오고, 보리수의 선율이 나를 감싼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마음속 나무 아래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