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내가 나를 보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당신 진짜 ‘마이너스의 손’이야. 손만 대면 다 고장 나거나 망하잖아!”웃어넘기려 했지만, 그 말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생각해 보니 내 손이 닿은 곳에서 일이 잘못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식이나 펀드 같은 투자에서는 번번이 적자를 기록했다. 화분을 가꾸면 이상하게도 금세 시들었고 키우던 물고기는 수없이 생명을 잃었다. 가전제품을 건드리면 멀쩡히 작동하던 것도 갑자기 고장 나기 일쑤였다. 어쩌면 정말로 '마이너스의 손'을 가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실패를 자주 할까?
실패의 무게
내가 처음 주식에 발을 들인 건 유행처럼 번진 '닷컴 투자 열풍' 때문이었다. 모두가 돈을 벌겠다며 들떠 있었고, 나도 늦지 않게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은행창구 직원이 권유한 개인펀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 투자 계좌는 마치 밑 빠진 독 같았다. 무엇을 사든,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든 결과는 늘 같았다. 손실뿐이었다. 이때부터 적자인생이 시작되었다. 오죽하면 지금도 내 꿈이 흑자인생일까?
일상에서도 난 '고장 전문가'로 통했다. 멀쩡하던 컴퓨터가 갑자기 먹통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물건을 조립하려다 애꿎은 나사 구멍을 망쳐놓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웃으며 "넌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나를 점점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전환점 찾기
그러던 어느 날, 책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마이다스의 손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한참 그 문장을 곱씹어 보았다. 성공하는 사람들 역시 처음부터 완벽했던 건 아니었다. 그들도 실수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지금의 능력을 쌓아 올린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너스의 손을 마이다스의 손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는 실패의 원인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주식과 펀드에서는 내가 충분히 공부하지 않은 채 유행만 따라 투자한 것이 문제였다. 항상 소문에 부화뇌동하여 남들이 다 사는 고점에서 사고, 내리막길에서 매도했다. 그러니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트와 재무제표 읽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시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손을 대지 않는 것' 대신 '손을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고장 난 물건이나 먹통인 컴퓨터는 구글이나 네이버 박사에게 물어보았다. 스마트폰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IT에 친해지고자 노력했다. 놀랍게도 나사를 하나하나 끼우고 선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뭔가를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생겼다. 컴퓨터도 인간이 만든 것이라 혼자서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게 중요했다. 예전엔 만지면 망가질까 봐 두려웠지만 지금은 아니다. 연습과 시간이 쌓이니 점점 더 나아졌다.
마이너스의 손에서 얻은 선물
물론 지금도 내 손이 닿은 곳에서 실패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패를 선생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성공의 과정으로 여기게 되었다.
또, 실수는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실수는 경험이 쌓이는 과정일 뿐이다.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은 아직도 가끔 내 귀에 들려온다. 하지만 그 말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맞아, 하지만 마이너스에 마이너스를 더하면 결국 플러스가 되잖아. 언젠가 나도 마이다스가 될 거야.”
마이너스의 손에서 마이다스의 손으로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잘되기만 하는 마이다스의 손을 가졌다고 한다. 이 참에 나와는 반대인 아내의 소소한 마이다스 손 사례를 열거해 본다.
아내가 결혼 전 다니던 회사의 사장님이 은행에서 즉석복권 50만 원어치를 구매하였다. 아마도 그런 복권이 처음 나왔던 시절이라 주거래은행을 도와주러 대량구입 하였나 보다. 직원들을 모아놓고 10장씩 긁어 보자고 했는데 아내가 긁은 것에서 덜컥 500만 원짜리가 당첨되었다. 50만 원을 투자했는데 총당첨금이 550여 만 원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사장님은 통 크게 100만 원을 결혼 자금으로 찬조하였다.
마이다스 손의 역사는 신혼여행지에서도 이루어졌다. 교토로 여행을 간 우리는 어느 슈퍼마켓에서 개장기념행사를보았다. 물건을 사고 아내가 경품 추첨 상자를 돌린 결과 2등 상에 당첨되어 부상으로 기꼬망 간장 세트를 선물로 받았다. 여행하는 하루 내내 그것을 들고 다녀야 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해,태어나서 처음으로 아파트 청약 통장을 넣었는데 한 방에 당첨되어 신도시로 이사 오는 경사를 누리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매년 주민을 위한 가을축제를 여는데 당연히 사은품이 걸려 있었다. 아내는 경품 추첨에 나가기만 하면 항상 뭔가를 들고 왔다. 라면 한 박스 같은 자질구래 한 행운상은 부지기수였다. 최근 성적을 열거하면, 작년에 5 등상으로 10kg 쌀 한 포대에 당첨되었다. 금년에는 4 등상으로 죽 제조기에 당첨되었다. 한집당 1표의 기회였는데 1,200세대 가운데 당첨된 놀라운 마이다스의 손을 입증하였다.
나 역시 결혼 2년 만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분당의 아파트에 당첨되었다. 무엇보다 아내와 결혼한 것은 당시의 신부 후보자 100만 명 중에서 단 한 명이 당첨된 높은 경쟁률을 이겨낸 결과이지 않은가? 그나마 이 정도 사는 것도 다 아내를 잘 만난 복이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마이더스 손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고 물품이 내 손에 들어오면 반짝반짝한 새 물건으로 바뀌는 경우도 허다했다. 조직생활에서는 재능이 있어도 발휘하지 못했던 직원들을 새로 받아들여 그들이 인재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다. 또 아직 날 것에 가까운 미성숙한 대학생들 대상으로 정성껏 멘토링에 임하여 반년 사이에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변모하게끔 도와준 이력도 있다. 투자에 있어서도 혜안을 갖기 위해 노력하여 많은 정보와 조언을 바탕으로 과감히 베팅하여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아내가 나를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말하는 것은 경제관념이 부족하고 물건을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 아내에게 내 모습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진면목이 100% 아내에게 보이지 않았거나 또는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아내의 말이 맞다고 맞장구쳐 주다가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사실은 나도 마이너스가 아닌 부분도 있어, 라며 미소 짓는다.
이러한 무시 못할 힘을 등에 업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어느 순간부터 내 손이 닿는 곳마다 작지만 성공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이다스의 손처럼 무엇이든 금으로 바꾸는 절대적인 힘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발전시키는 능력이 생겼다.
이제는 실패가 두렵지 않다. 손대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지 않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이 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의 손과 마이다스의 손의 차이는 단순히 운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일 뿐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성공을 좇기보다는 배움을 좇는 자세.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손을 금빛으로 물들일 수 있다.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시 손을 내민다. 이번에는 무엇을 배우고, 어떤 금빛을 더할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마이다스의 손은 단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패라는 마이너스를 겹쳐가며 플러스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게 내가 꿈꾸는 진짜 성공의 마이다스 손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