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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제주 여행

4박 5일 이야기

by 글사랑이 조동표


제주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자연의 보고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이라는 '3관왕' 타이틀을 가진 섬. 이 특별한 섬에서 대학 시절 의형제를 맺은 삼 형제 부부가 함께한 4박 5일 여정을 기록해 본다.


첫째 날 : 설렘의 시작, 삼 형제의 재회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김포공항은 인산인해였다. 라운지는 만석, 탑승한 항공기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렌터카를 찾아 송당파크로 이동해 빵과 식자재를 구입한 후, 우리의 민박집으로 향했다.



민박집에 도착하자마자, 따로 계약한 옆방까지 침구를 살피며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이번 여행은 선후배 부부 두 쌍과 동행하는 특별한 자리였다. 통영 여행 이후 다시 모인 삼 형제 부부가 의기투합하는 만남이다.


두 부부는 비행기 연착으로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야 입실하였다. 일단 한잔 술을 권하며 이번 여행의 시작을 축하했다. 지난 통영 나들이의 추억을 소환하며, 다시 한번 형제애를 다지느라 훌쩍 자정을 넘겼다.


둘째 날 : 성산일출봉, 꽃 향기 가득한 하루


아내가 준비한 간단한 조식(요구르트, 커피, 빵, 과일)으로 아침을 든든히 채운 후, 성산일출봉으로 향했다. 성산일출봉은 약 5천 년 전 해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분화구로, 제주를 대표하는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이다. 약간의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올라 바라본 푸른 태평양과 거대한 분화구는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점심은 표선으로 이동해 지역 특산물인 보말(고둥) 칼국수를 맛보았다. 식후에는 '표선하다' 카페에서 백사장을 내려다보며 여유를 즐겼다. 나는 구좌읍 특산물인 당근으로 만든 주스를 선택해 눈 건강을 챙겼다.


오후에는 휴애리 자연생활공원을 방문했다. 늦은 동백꽃부터 철쭉, 수선화, 온실 속 이른 수국, 분홍빛 꽃잔디, 겹벚꽃, 자목련, 그리고 유채꽃물결까지... 봄꽃 향연이 절정이었다. 특히, 윤기 나는 건강한 흑돼지들의 재롱잔치가 인상 깊었다.



저녁은 송당파크의 정육식당에서 차돌박이와 삼겹살로 배를 채웠다. 식후에 공원을 돌아보며 엄청난 양의 돌조형물과 수국동산, 국내 최대 좌석(360석)을 자랑하는 스타벅스 등 면적과 숫자로 압도하는 시설물을 구경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이날 밤은 대학 시절의 추억, 부부의 삶, 자녀의 미래 걱정까지, 세 부부가 양주와 함께 선배님이 가져온 일본 소주 '刀(Katana)'를 기울이며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병 주둥이가 한쪽으로 치우쳐 독특했던 소주병처럼, 우리 인생도 정형화되지 않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음을 실감했다.



셋째 날 : 삼나무 숲과 해무 속 미스터리


남자들은 아침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고, 여자들은 '블루보틀'에서 브런치를 즐겼다. 나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입 안을 정화했다.



오전에는 절물(절의 물)오름으로 향했다. 절물휴양림의 삼나무 숲길로 들어서며 이어지는 원시림과 다양한 수종, 들꽃(현호색과 복수초)을 마음껏 감상했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에 심신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점심은 '교래퐁낭' 식당에서 멜조림과 수육을 든든히 먹고, 오후에는 송악산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송악산 정상에는 짙은 해무가 끼어 형제바위조차 보이지 않았다. 작년에는 마라도, 가파도까지 뚜렷했는데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해안가를 따라 곰솔로 이어진 올레 10코스를 트레킹 하며 백마, 황마의 여유로움과 마주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저녁은 제주 시내 '어부도' 식당으로 향했다. 강풍으로 결항된 항공편 덕분에 20명 단체석이 취소되어 운 좋게 예약에 성공했다. 맛난 해산물 식재료를 푸짐하게 즐겼다. 참돔 활어회, 담백한 지리, 진한 맛의 돔새끼 조림까지, 완벽한 제주 바다의 맛을 만끽했다.

식사 후 선후배 부부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밤늦은 항공편으로 귀경하였다.



이곳까지 운전하며 지나온 중산간도로의 짙은 농무는 마치 신선 세계인 무릉도원을 거니는 듯한 신비로운 체험이어서 화제에 올랐다. 게다가 내가 몬 차는 송악산에서 후배 차보다 늦게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5분이나 빨리 식당에 도착하여 해무만큼이나 짙은 미스터리를 느꼈다. 1시간 반 코스로 긴 거리이긴 했지만 어차피 똑같은 길안내를 받고 운전했는데도 이런 시간차가 났을까, 의문이었다.



넷째 날 : 거문오름의 신비와 고사리 채취


아침 일찍 예약해 둔 거문오름을 찾았다. 거문오름은 제주 368개의 오름 중 유일하게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친절한 해설사의 안내를 들으며 1970년대에 조림된 삼나무 숲 속으로 깊숙이 들어섰다. 거문오름은 약 7천 년 전 분화한 거대한 용암 터널의 발원지로, 위에서 내려다본 분화구는 태고의 신비로움이 대단했다.



점심은 4년째 제주에 정착 중인 친구 부부와 함께 '오름나그네' 식당에서 보말국수, 들깨국수, 파전으로 해결했다. 근처 카페에서 오랜만에 환담을 나누었다. 건강하고 즐거운 노년을 위해 운동과 여행, 친구와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 친구가 늘 만나는 70대에 접어든 선배들은 골프와 여행, 이웃과의 교류와 함께 고사리 채취로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봄철 고사리 철이 시작되면 들판 곳곳이 원주민들과 채취객으로 붐빈다.



우리도 오후 늦게 장화를 신고 들판에 뛰어들었다.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는 고사리를 찾아 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저녁은 친구가 선물해 준 달래로 부침개를 부치고 채취한 고사리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곁들였다.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식탁이었다.



다섯째 날 : 런던 베이글과 이별의 시간


여행 마지막 아침은 '런던 베이글 뮤지엄'에서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베이글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오픈런을 걱정하며 9시 이전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대기줄이 길었다. 80% 넘게 동남아 관광객이었고, 젊은이들의 인기 덕분에 활기가 넘쳤다. 고급스러운 베이글, 신선한 수프, 세련된 매장 분위기...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6개 매장에서 연 매출 천억 원, 방문객 천만 명을 이루어낸 여사장이 대단하다.



치즈, 트러플, 올리브 맛 베이글의 쫀득한 식감은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 주었다.



옆의 '블루 엘리펀트' 안경점까지 대기손님들이 몰리며 자연스러운 낙수효과를 보고 있었다. 요즘은 세련되고 감성적인 트렌디 매장이 인기가 높다.



성읍 부근은 비가 내렸지만 구좌읍 동복리는 청명한 하늘, 공항은 안개 자욱한 흐린 날씨, 제주 날씨는 이렇게 한 날에도 변화무쌍하다.


아내는 오늘 입도하는 친구와 해후하여 고사리 캐러 사흘 더 남기로 했다. 나는 아쉬운 작별을 뒤로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 제주 여행은 6월 수국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 낚시를 즐기기 위해 다시 계획해보려 한다.


[마치며]


자연과 사람, 추억이 가득한 이번 제주 여행.

형제애와 우정을 다지고,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친구 권유에 따라 6월에는 수국과 낚시를 즐기러 오자. 의형제들과는 가을에 억새를 보러 다시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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