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사라지고 결국 기억만 남게 되나 봅니다. 그 기억이 악몽이든 추억이든 때나 상황이 맞으면 불쑥불쑥 튀어나와 억지 감정이라도 만들어내곤 합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고아원 아이들 돕기, 찹쌀떡 파는 소년의 외침, 손수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고 그 카드를 팔러 시내를 누볐던 생각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남녀 4~5명씩 짝을 지어 교복 위에 '불우이웃 돕기' 어깨띠를 두르고 캐럴이 흐르는 경원동, 중앙동을 걸었던 추억이...
그러다 눈이라도 내리면 여학생들의 갈래머리, 단발머리와 교복 어깨 위로 쌓인 눈을 털어주며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누구였는지, 얼마를 모았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고, 그저 까만 통나무 전봇대에 매달린 가로등 불빛과 유난히 자주 내렸던 함박눈...
후문집이라는 막걸릿집은, 연애보다는 개똥철학을 선택한 남학생들의 토론장이었고, 미원탑과 전신전화국 앞은 가난한 젊은이들의 약속장소였습니다.
뿌연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앉아있던 대호다방, 신라다방, 임금님다방, 설다방, 불새다방...
신라 당구장,
풍년제과, 고려제과,
포그니,
홍콩반점,
빈센트 반 고흐 커피숍,
호가, 호호 커피숍...
동문 사거리부터 다가동까지 빙판 도로를 뒤엉켜 걸으며 미끄러졌던 친구들 모습이 반복적으로 떠오릅니다.
올해 크리스마스 즈음엔 그 길을 다시 한번 걸어보고 싶습니다.
눈이 내려준다면 교복은 아니지만 맘껏 내려 쌓이라고 어깨를 내어주기도 하며, 길거리 전파사에서 흐르는 캐럴은 아니어도 이어폰으로 볼륨 업해서 충분히 그 시절 추억을 소환해 보렵니다.
너무 멀리 와버린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 저만 그런 거 아니겠죠?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그때를 아십니까?
대학시절의 향수도 살짝 덧붙여 봅니다.
청바지 입고 도끼빗으로 멋 내던 시절.
다방에 죽치고 앉아 음악 디제이 훔쳐보며 러브미 텐더 러브미 스위트~~~
엘비스프레슬리, 스모키, 보니엠, 아바, 시카고, 탐존스, 앤머레이...
구석자리 테이블의 여학생들을 흘끔흘끔 쫒는 음흉한 시선들...
너구리 잡는 자욱한 안개 연기.
눈썹을 덮는 긴 머리 위로 도넛이 떠오르고, 양희은과 송창식은 사랑과 젊음을 시국에 비유하였지...
최루가스에 대자보, 화염병과 구호는 일상생활이었습니다. 막걸리에 라면 안주는 반드시 다음날 전봇대 밑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솔과 거북선, 태양 담배가 비싸서 까치담배 사서 피우고 한산도나 은하수도 비싸서 청자나 환희까지 성경책 종이에 말아피던 그 시절.
여름방학,
농활 간다는 핑계 대고 떠난 지리산 뱀사골 야영. 불어난 급류와 폭우 속을 헤매고... 목숨 걸고 내려오다 미끄러지며 자빠지고...
겨울방학,
미원탑 밑에 큰 대자로 누워 하늘에서 날려오는 눈을 입 벌리고 받아먹던 시절...
통금이 다가왔다는 사이렌 소리에 서둘러 귀가하자는 그녀와의 아쉬운 헤어짐... 그리고 따뜻한 손...
중간고사,
책상 가득히 적어놓은 예상 답안은 문제랑 너무 동떨어져 있고...
기말고사,
땡땡이치느라 포트란 알고리즘이 이해가 안 돼 답안지는 허옇기만 하고... 낙서만 끄적끄적... 교수님 찾아 경고만 받지 않게 해 달라는 비굴한 아부를 하고...
나의 대학시절 방황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생생함으로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공부를 등한시 한 냉정한 결과를 오늘도 일상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이 피워댄 담배 연기와 걸쭉한 막걸리 속에 인생과 사랑과 우정과 병역과...
그리고 취업...
자취방은 날마다 찾아오는 빈대들 덕분에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차고...
한 달은 먹어야 될 통일벼 쌀은 언제나 보름이면 바닥을 드러내고...
방안 가득히 절은 담배 냄새, 신김치 냄새,
그리고 수컷 냄새...
매일 나눴던 언어의 유희들은 민들레 홀씨되어 지금쯤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차곡차곡 쌓아온 소년의 감수성은 상아탑의 최루연기에 어두운 현실과 맞닥뜨렸고...
이제는 추억 속의 그리움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좁다란 그녀의 어깨 위에 앨범이 얹혀 있습니다.
또다시 겨울입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