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마침내 나에게 주어진 시간
평생을 바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퇴직 후 시간이 비로소 나를 위한 삶의 시작이라는 걸 말이다.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는 출근길 전쟁, 쏟아지는 서류, 울려대는 전화, 숨 가쁜 회의 속에서 하루를 보내던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매일을 반복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퇴직’이라는 단어가 가까워졌다.
불현듯 멈춰 선 삶의 흐름 속에서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조용히 묻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시간’이었다.
치열한 전쟁터를 벗어나고 나니, 하루가 낯설 정도로 길어졌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곧 알게 됐다.
이제는 내가 나의 시간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
남의 시선과 바쁨에 떠밀려 살아온 날들을 뒤로하고, 불필요한 것부터 정리하자.
조금은 느슨하게, 나다운 호흡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건강'.
한때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몸이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이제는 날마다 걷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상쾌한 공기와 바람, 햇살이 전하는 온기, 거친 숨소리와 땀내를 느끼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규칙적인 식사, 여유로운 생활, 충분한 쉼.
이 단순함 속에 깊은 안락함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낀다.
예전엔 타인의 기분에 민감했다.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며 내 마음을 뒤로 감췄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나’라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나를 배려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따뜻할 수 없다.
나는 나를 가장 먼저 돌봐야 한다.
남에게 희생하다가 한이 맺힌다.
나이 들었다고 주저할 이유는 없다.
이 나이에 뭘 시작하느냐는 말 대신,
‘이 나이니까 더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하고 싶었던 것들, 그동안 미뤄두었던 것들.
과연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까.
오늘은 내가 살아가는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이다.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자.
마지막으로,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억지로 이어온 인연은 천천히 놓아주자.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를 끌어안느라 정작 중요한 나를 잃을 수는 없다.
비워내야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혼자가 외롭지 않은 건, 내 안에 단단한 마음의 평화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 주도적 삶을 살아가자.
퇴직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침내 나를 마주하게 된 새로운 시작이었다.
조금 늦게 찾아온 자유지만, 이 자유가 너무도 귀하고 감사하다.
이제 나는, 내 삶의 진짜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온 나,
이제는 자신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위한 시간은 지금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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