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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제주 오름 여행기 제2편

노꼬메오름, 그리고 중문의 노을

by 글사랑이 조동표

둘째 날 아침, 창문을 여니 안개가 자욱했다. 어제보다 흐릿한 하늘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예정대로 오름을 오르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전반부는 아내와 함께하는 오름 탐방이었다.

아내는 “나흘 동안 오름만 오르겠다”라고 선언했다. 그 말이 왠지 든든했다. 함께 걸을 수 있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절반은 완성된 것이었다.


- 노꼬메오름, 짧지만 깊은 오름길


오늘의 목적지는 노꼬메오름.

이틀 뒤 오를 다랑쉬오름보다 짧지만, 돌길이 많아 오르기가 쉽지 않다.

길은 울퉁불퉁했고, 군데군데 손으로 짚어야 했다. 그래서 오름의 풍경보다 발밑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중턱에 오르니 숨이 트였다. 바람이 불고, 억새가 흔들렸다.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 있었지만, 그 자리를 아는 이라면 그곳에 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이 된다.


오름길과 억새. 억새 뒤로 보이는 한라산

내려올 때는 돌길의 경사가 더 가파르게 느껴졌다. 오름의 매력은 언제나 “짧지만 깊은 체험”이다.

오르는 시간은 30분 남짓, 그러나 마음속의 울림은 오래 남았다.


- 초밥으로 향한 점심


오름에서 내려와 근처 식당을 찾았다.

노꼬스시(초밥)’. 도쿄에서 맛본 스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정갈한 가락국수와 사시미가 나왔다.

주인은 제주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는 도시의 세련됨과 섬의 느림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노꼬스시 메뉴

우리는 본래 해삼 전문집에 가려 했지만, 오늘따라 휴무였다. 제주에서는 주인이 피곤하면 가게를 닫는단다. ‘영업 중’이란 말보다 ‘쉬는 날’이 훨씬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 느긋함이 제주다.


- JW 메리어트, 댄싱 두루미 카페의 오후


오후엔 중문단지로 향했다.

아내가 가보고 싶다던 JW 메리어트 호텔의 '댄싱 두루미 카페'.

호텔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대리석 바닥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바다 쪽 테라스에는 여유로운 음악이 흘렀다.

4시면 영업을 마친다고 해서, 서둘러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 입구의 인테리어가 특징적이다.

커피 향이 입안에 머무는 동안, 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멀리서 들리는 파도소리, 수영장에서 젊은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커피잔을 사이에 둔 아내의 미소.


리조트호텔 전경
카페 안내문과 와인셀러
바다 곁의 수영장에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이런 건 돈으로 살 수 없지.”


그 한마디에 하루의 피로가 사라졌다.

JW 메리어트의 럭셔리함이 아니라, 그 순간의 평화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 노을의 시간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하늘이 천천히 붉게 변해갔다.

누군가 말했듯, 썬라이즈보다 선셋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루의 무게’가 들어 있어서다.

아침의 햇살은 새로움이지만, 저녁의 노을은 살아낸 시간의 흔적이다.


오후 4시가 넘어서자 보이는 노을

우리는 커피잔을 비우고 호텔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멀리서 보이는 바다는 주황빛과 보랏빛이 섞인 하나의 거대한 수채화 같았다.

그 순간, 여행이 완성되었다.


- 딱새우라면의 밤


돌아오는 길은 피곤했다. 운전대를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어느새 숙소였다.

저녁은 간단히 딱새우라면.

송당슈퍼에서 산 제주 특산 라면이었다.

약간 느끼하면서도 해물의 깔끔한 향이 입안을 맴돌았다. 라면을 후루룩 먹으며 생각했다.

제주는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다.


- 하루의 끝에서


둘째 날의 제주는, 노꼬메오름의 바람과 메리어트 카페의 노을, 그리고 딱새우라면의 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내와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바라본 하루.

그 하루가 내게는 가장 완벽한 여행이었다.


노꼬메오름 안내판
노꼬스시
바다가 보이는 호텔의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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